1. 5층 새댁
“시연아, 시연아, 안에 있어?"
또 언니를 불러내는 5층 아줌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벽에 걸린 뻐꾸기시계를 보니 밤 10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언니가 주섬주섬 일어나 현관으로 나가더니 은지를 데리고 들어왔다. 은지는 5층 아줌마의 딸로 올해 갓 세 돌이 된 아기였다.
“걔는 또 데리고 왔어? 아유, 미친년 밤마다 애 떼놓고 어딜 가는지 정말. 너 담부터 얘 봐주지 마. 저년 그러다 진짜 애 놓고 집 나갈 거 같아.”
“엄마는 애 듣는데 좀 그러지 마.”
언니가 은지의 귀를 막으며 엄마를 나무랐다. 5층 아줌마는 오늘도 밤 외출을 하는 모양이었다. 은지가 내 베개를 베고 누워서 엄지손가락을 빨기 시작했다. 은지의 엄지손가락은 너무 빨아서 손톱이 없었고 굳은살이 박여있었다. 손만 보면 아기의 손이 아닌 공장 노동자의 엄지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언니가 작은 새우 같은 은지의 등에 손을 넣어 쓸어주기 시작했다.
“은지야, 자장자장 해줄까?”
은지가 대답 대신 눈을 감았다. 언니가 나지막이 자장가를 부르며 은지의 등을 쓸어주었다. 나도 언니를 따라 은지의 등에 손을 넣어 언니처럼 손을 왔다 갔다 했다. 언니가 힐끔 나를 째려보았고 나는 메롱하고 혀를 내밀었다.
“나한테도 이렇게 잘해줘 봐. 만날 구박만 하면서. 언니 동생은 은지가 아니라 나야 나.”
“너도 엄마랑 똑같아. 아기 앞에서 별소릴.”
“그 영화 알아? 톰 행크스가 어린아이로 나오는 영화.”
“빅?”
“응. 엄청 재밌대, 내 짝이 자기 언니랑 보고 왔다고 자랑하더라. 나도 그거 보여 줘. 내 친구들은 대학생 언니 오빠랑 영화도 보러 가고 그런다는데 언니는 나 한 번도 안 데리고 가고.”
“그래. 알았어.”
“진짜? 진짜지? 우와!”
“은지 깬다, 쉿!”
은지가 잠이 폭 들었는지 입안에 물고 있던 손가락이 슬그머니 빠졌다. 하지만 은지의 입은 손가락을 빨던 모습 그대로 동그랗게 말려 있었다. 처음으로 은지의 모습이 안쓰럽게 느껴졌다. 넌 이런 언니도 없고, 만날 밖에만 나가는 엄마랑 사는구나. 불쌍하다. 중학생인 내 마음이 처음으로 이 아기보다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네 아기를 잘 봐주는 예쁘고 착한 아이로 유명했던 언니는 실은 알고 보면 그리 착한 아이가 아니었다. 늘 악기공장 블루칼라였던 아빠를 부끄러워했고 성공해서 집을 떠나는 게 가장 큰 꿈이었다. 아빠에게 받지 못하는 사랑을 아들에게 쏟아냈던 엄마 때문에 오빠와 언니는 늘 사이가 좋지 못했다.
언니는 아들이란 이유로 온갖 맛있는 것과 용돈, 비싼 점퍼를 차지하는 오빠를 미워했다. ‘쓸모없는 인간, 우리 집 돈만 축내는 놈’이라고 언니의 일기장에 쓴 글자를 나는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나에게 언니는 조금 관대한 편이었다. 늘 심부름을 시키기는 했지만, 대부분 경우 나의 행동이나 이래라저래라 참견하는 법이 없었고 가끔 사탕이나 초콜릿 같은 게 생기면 꼭 나와 나누어 먹기도 했으니까. 그런데 5층 아기 은지가 집에 자주 오기 시작하면서 언니의 그 좁쌀만 한 사랑이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해 나는 짜증이 났다.
언니가 늘 바라며 이야기 했던 것들이 있었다. 아늑한 소파가 있는 집, 방 안에는 16bit 컴퓨터가 있고 아빠가 자상하게 자식들의 학교생활을 물어보는 풍경과 엄마가 우아한 긴 드레스를 입고서 크로켓을 튀겨주는 모습. 공부를 잘하고 반듯한 오빠가 있고 공주님이 살 것 같은 분홍색의 공단으로 된 커튼이 봉긋한 모습으로 주름잡아 매달린 방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세계 문학 전집을 읽는 것이었다. 언니가 제일 좋아하던 동화책은 ‘소공녀’였다.
그러나 언니가 꿈을 꾸었던 80년대의 낭만은 열네 평의 좁은 우리 집엔 존재하지 않았다. 아빠의 월급은 늘 밀려있었고 엄마의 미간에는 생활의 고충과 짜증이 묻어나는 깊은 주름이 마치 문신인 듯 배어 있었다.
언니가 열심히 공부했던 이유는 어린 내 눈에 보아도 딱 한 가지의 이유밖엔 없었다. 안정적이면서 자신에게 맞는 직업을 가진 어른이 되어 이 시궁창을 탈출하는 것. 공부를 꽤 잘했던 언니는 바람대로 교대에 입학했고 나름의 대학 생활을 즐기고 있었다.
하지만 언니에게 대학은 또 하나의 현실이었다. 빨간색 프라이드를 몰고 다니는 또래의 잘 사는 집 친구, 대기업에 다니는 아빠가 보내주는 어학연수를 가려고 휴학을 결심한 동기, 자신은 스스로 노력하는 것 외에는 누군가에게 얻을 것이 없었다. 그런 언니에게 동생의 존재는 그저 귀찮거나 자신이 또 돌보아야 하는 대상, 혹은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또 다른 모습이거나 했을지도 모르겠다.
세 살배기 은지에게도 그때는 살아가기 힘든 나날이었을 것이다. 막 이십 대 초반을 벗어난 은지 엄마는 딸이 버거워 죽을 지경으로 보였다. 내가 학교에 갔다 돌아오는 길이면 시장 어귀를 서성거리는 모녀를 볼 수 있었는데 은지의 식사는 언제나 시장에서 산 핫도그, 쑥 개떡, 옥수수 같은 것들이었다. 태어나서 한 번도 이를 닦아본 적이 없는 아이처럼, 은지는 입을 벌려 무언가를 먹거나 말을 하거나 아주 가끔 나와 언니와 놀며 간지럼을 태울 때마다 다 썩어 문드러진 앞니를 보이며 웃었다. 남루한 아이의 모습에 비해 은지 엄마는 늘 옷을 잘 차려입었다. 당시 유행하던 디스코 바지를 허리춤에 올려 입고서 빨간색 스웨터에 각이 진 체크 재킷을 걸쳐 입고 다녔다. 입술은 늘 자줏빛으로 물들어있었고 그녀가 말을 할 때면 립스틱이 앞니 사이에 묻어있기도 했다.
“은지야, 시연이 언니다, 시연이 언니!”
어쩌다 시장에서 우리를 마주치면 빨갛게 물이 든 이를 드러내 웃으며 시연이 엄마가 반갑게 웃던 모습이 아직도 떠오른다. 그녀는 늘 우리 자매를 만날 때마다 구세주를 본 듯 환하게 반기며 은지의 손을 우리 자매에게 쥐어주고는 어디론가 가버렸다가 밤이 늦어서야 돌아오곤 했으니까.
게다가 금요일이면 은지 엄마는 늘 우리 집에 아이를 맡겼다. 쿠웨이트에 가서 돈을 번다는 은지 아빠는 모녀에겐 없는 사람이었다. 은지 엄마가 우리 집에 아이를 맡길 때 건네주던 양과자, 뿔 모양의 흰 앙금이 든 그 과자를 받는 것으로 언니의 아기 보모 노릇은 대가를 치렀다. 어느 날은 새벽에 애들 데려가면 그나마 다행이었고 금요일 밤에 아이를 맡기고 토요일 저녁에 데려가는 날도 있었다. 우리 엄마는 은지가 오는 날이면 욕을 하면서도 은지를 씻기고 옷을 빨아 입혔다.
어느 날, 은지 엄마가 우리 엄마의 주머니에 쥐어주던 만 원짜리 지폐를 본 후론 난 엄마가 은근히 은지를 반긴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어쩌면 은지도 자기 집에 있는 것보다 우리 집에 있는 시간을 더 좋아했는지 모르겠다. 그나마 우리 집에 오는 날이면 된장찌개나 김치찌개에 밥이라도 먹을 수 있었고 푸짐한 고기에 밥을 먹는 것은 아니었어도 온 가족이 모인 따스한 식사시간에 마치 우리 집의 막내인 양 함께할 수가 있었으니까.
우리 집에만 애를 맡기는 것이 미안한 모양이었는지 은지 엄마는 가끔 2층이나 3층에 사는 집에도 은지를 맡겼지만, 은지는 홀로 문을 열고 내려와 우리 집으로 늘 와서 언니 품을 파고들었다. 가끔은 난 우리 언니를 은지에게 빼앗긴 것만 같아 은지의 등을 긁어주는 척하다 옆구리 살을 짚어 꼬집기도 했는데 은지가 아프다고 징징대고 울면 언니는 더욱 은지를 안아주며 가여워했고, 그게 더 보기가 싫어진 나는 은지를 괴롭히는 일도 그만두었다.
하루는 학교에 다녀오는 길에 은지가 집 앞 화단에 혼자 앉아있는 것을 보았다. 겨우 세 돌이 지난 아이가 혼자 앉아있던 것이 좀 놀랍기도 하고 걱정이 되어 나는 은지를 데려다가 같이 우리 집으로 들어왔지만, 저녁이 되어도 은지 엄마는 아이를 찾지 않았다. 도대체 이 아이의 집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는 것이었을까. 은지 엄마는 남자를 데려다가 집에 두는 것일까, 아니면 혼자 술이라도 마시는 것일까. 언니와 나는 은지를 두고 별의별 상상을 다 해 보았지만, 우리 역시 아는 것은 없었다. 은지 엄마는 우리 집에 그렇게나 많이 데려다 놓으면서도 사실 우리는 그 여자의 집에 가본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