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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팥 Aug 06. 2022

개나리 연립 102호

2. 도망

“은지네 소식 들었어? 은지 아빠가 쿠웨이트에서 사고가 난 모양이더라고. 죽었는지 어쨌는지 도통 연락이 안 된다고 그러데.”


그날도 언니와 은지를 데리고 놀고 있는데, 반장 아줌마가 집에 와 엄마에게 은지 아빠 소식을 알렸다. 


“어머, 어쩐대. 그래서 은지네가 정신없이 나간 거였나? 아까 우리 막내가 학교 다녀오다 애를 집 앞에서 주워왔는데 은지 엄마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더라고요. 남편 사고 알아보러 서울에 있는 회사에라도 쫓아갔나?”


은지는 그렇게 아무 소식도 없는 엄마를 기다리며 3일을 우리 집에서 보냈다. 하룻밤 정도는 보낸 적이 있었어도 이렇게 나오라 우리 집에 있는 것은 처음이었다. 나는 가뜩이나 좁은 방 안에 아기까지 며칠씩이나 데리고 자려니 짜증이 나 죽을 지경이었다. 하물며 새벽 3시 정도가 되면 은지는 한 번씩 깨어 자기 신세가 서러운지 한참을 울어 젖히다 손가락을 빨며 잠이 들었다. 은지에게만은 세상 관대하던 언니도 아이가 새벽에 깨면 어쩔 줄을 몰라했다. 다음날 새벽 출근을 해야 하는 아빠는 우리 집 새끼 키우기도 벅찬데 어디서 남의 새끼까지 주워와 이 오지랖을 부리냐며 엄마에게 화를 냈다. 


엄마는 이러다가 우리가 은지까지 떠맡아야 하는 건 아닌지 점점 불안해했다. 언니에게도 그러게 왜 애를 봐주기 시작해서 이 사단을 만들었냐고 소리를 질렀다. 그럴수록 은지는 언니의 품으로, 언니가 없을 땐 내 품으로 파고들었다. 은지는 이전보다 손가락을 더 자주 빨았고 밥도 잘 먹지 않았다. 자기 엄마와 먹던 핫도그나 꽈배기 같은 걸 더 좋아하나 싶어서 언니가 시장에 가 꽈배기를 사주기도 했지만 먹지 않는 건 마찬가지였다. 난 그런 은지를 보며 나보다 더 행복하지 않은 아이도 있다는 걸 깨달았다. 적어도 난 내게 관심이 없는 부모와 형제라고 하더라도 나를 이 추운 날 버리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웃지 않는 은지를 보며 나는 은지 엄마의 미소를 가끔 떠올렸다. 늘 진한 립스틱이 묻어있고 약간 새가 벌어져 있던 그 여자의 앞니. 입이 크고 옆으로 죽 벌어져 있던 모습. 말끝마다 '우리 은지, 우리 은지'라고 하는 가늘고 길게 늘어지는 그 말투. 하지만 그 여자는 정말 자기 딸을 사랑하긴 했던 걸까. 그 여자의 속마음까지 다 알 수는 없겠지만, 불쌍한 이 세 살배기 아기를 두고 찾지도 않는 걸 보니 아마도 그 여자는 양심에 수북하게 털이 났거나 애초에 양심이라는 것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엄마는 은지가 우리 집에 반강제로 맡겨진 지 일주일이 지나자 도저히 안 되겠는지 3층 아줌마와 함께 경찰서를 찾아갔다. 하지만 엄마는 은지 엄마의 주소와 딸 이름이 은지라는 그것 외엔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가족도 아닌 사람이 경찰서에 가서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분실물처럼 아이를 주웠다, 그 아이의 이름이 이 은지며, 은지의 엄마가 우리 집에 아이를 버려두고 사라졌다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분실물 습득 같은 신고를 한 엄마는 집에 와서 더 부아가 치미는지 청심환을 먹고 이마에 손수건을 동여매고 몸져누워버렸다. 


누워있는 엄마의 가슴속에 화가 얼마나 가득 찼는지 불룩불룩하고 가슴이 오르락내리락했다. 가뜩이나 커다란 엄마의 가슴이 터져버릴까 봐 나는 그 모습을 얼마나 걱정스럽게 지켜보았는지 모른다. 그나마 일찍 시작된 겨울방학 때문에 언니와 내가 집에 있길 망정이지, 아마 그렇지 않았다면 엄마는 은지를 어느 시장 통에 버리고 왔을 것이 분명하다고 언니가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언니는 엄마를 좋아하지 않았으니까. 아들을 떠받들고 사는 대신 언니에겐 온갖 화를 내고 집안일을 시키고, 엄마는 마치 자기가 여자로 태어난 것을 언니에게 전승이라도 시켜주는 양 했다. 그리고 가끔 집에 들어오지 않고 어디선가 술을 마시며 속을 썩이는 남편을 원망하며 보일러실에 들어가 쭈그리고 앉아 울기도 했다. 언니는 엄마의 그 모습을 가장 싫어했다. 멍청한 아빠와 싹수없는 오빠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거나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칼날이 선 말을 일기장에 써버리기도 했던 것을 나는 보았다. 언니는 그래도 엄마가 불쌍하긴 했나 보다. 엄마는 죽어버리란 말은 써놓지 않았으니까.


그러다 며칠 후 동네가 발칵 뒤집어지는 일이 벌어졌다. 바로 부동산 아줌마가 은지네 집의 새로운 주인을 데리고 나타난 것이었다. 은지네 집의 새 주인이 부동산 아줌마와 함께 올라갔다는 3층 아줌마의 말을 듣고 엄마는 맨발로 5층까지 단숨에 올라갔다. 난 우리 엄마가 그렇게 빨리 달릴 수 있는지도 몰랐다. 오빠가 옆에서 ‘저건 축지법이네, 축지법’이라고 혼자 조그맣게 읊조린 뒤 방에 들어가 발가락으로 티브이를 켰다.


“아니 정 사장, 정 사장은 은지 엄마를 만났어?”


“아, 은지 엄마가 한 달 전엔가 급매로 집 판다고, 근데 창피하니까 어디 말하지 말고 조용히 싸게라도 팔아 달래서 내가 바로 팔아주고 계약했어요. 잔금 없이 바로 집값을 다 치르는 조건으로 엄청 싸게 팔았지.”


“아이고, 그년이 아예 여길 뜰 작정을 하고 있었네! 있었어!”


“왜 그러는데 도대체”


“그럼 은지 엄마가 이제 여기 올 일이 없는 거지, 그래, 안 그래?”     


“아니, 왜 그러는데요, 자기 혹시 은지 엄마한테 돈 떼였어?”


“그게 아니라, 그년이 우리 집에 제 새끼를 두고 갔어. 애를 우리 집에 버리고 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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