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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팥 Aug 21. 2022

개나리 연립 102호

4. 개나리 연립

언니와 법원에 가서 경매 입찰 신청을 하던 날이었다. 은지를 보내던 날처럼 스산하던 12월 중순. 30년이 다 되도록 잊고 살던 기억이 하필이면 그날 떠올랐다. 나는 조심스럽게 운전하며 예전 우리가 살던 그 동네, 또 하필이면 그 개천 위 다리를 지났다. 10년도 더 된 나의 경차가 달달거렸다. 우리가 입찰받으려고 준비한 물건인 개나리 연립을 지나니 마음이 이상했다.


아빠의 중고 피아노 가게를 결국 폐업하며 남은 빚을 정리하기 위해 엄마는 20년을 살았던 개나리 연립을 급매로 처분했다. 재개발 호재가 붙으며 한창 호가가 치솟기 시작한 집이어서 엄마는 아까워 죽겠다며 사흘을 내리 울었다. 삼 남매를 낳았고 키웠던 집을 빚과 바꾼 것은 아직도 엄마에겐 한이었다.

그 집을 다시 10년 만에 사들이자는 건 언니의 계획이었다. 하지만 그 계획 엄마나 아빠를 위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정기적인 언니의 경매 물건 검색에서 우연히 보인 것뿐이었고 곧 철거를 앞둔 터라 언니에겐 만일 낙찰을 받게 된다면 좋은 이익을 볼 수 있을 부동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언니는 지난 몇 년간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부동산을 사고팔고를 반복했다. 개인 투자자로서 좋은 성과를 얻게 된 언니는 형부의 이름으로 부동산 법인을 설립해 본격적인 투자를 이어나가며 사업을 확장시켰다. 주말이면 투자자 모임에 나가 세법을 공부하고 아파트와 상가, 건물과 땅을 바쁘게 보러 다녔다.

개나리 연립을 낙찰받는 것은 집이 없는 내 명의를 빌리자는 언니의 생각이었다. 형부의 법인으로 낙찰을 받을 수도 있었지만, 새 아파트가 들어서면 두 배로 오를 거고 그때는 나에게도 한몫 챙겨주겠다는 언니의 애정 어린 계획이었다.


아빠같이 착하고 무책임한 남자아이 둘을 낳아 키우며 경기도 변두리에 집 하나 없이 사는 내겐 달콤한 제의였으니 내가 마다할 일은 아니었다. 언젠가 언니는 내게 아파트 분양을 받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어오기도 했지만 시어머니가 살고 있는 남편 명의의 작은 빌라가 있음을 밝히자, 우리 부부를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차며 바라보았다. 그 뒤로 언니는 나와 남편에게 다시는 집이나 투자에 대한 이야기가 없었다.


"제부한텐 아무 말 말고, 필요한 서류랑 보내줄 테니까 준비해서 다음 주에 시간 내서 나와."


나는 언제나 그랬듯, 언니가 시키는 대로 했다. 이번에도 언니는 올바른 선택을 할 것이 분명할 테니.

언니와 함께 개나리 연립을 한 바퀴 돌아보고 5분 정도 새로 개발이 됐다는 근처로 진입하니 전혀 새로운, 2020년의 도시가 보였고 그 한가운데 신축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법원이 보였다.



“여길 지나가니까, 생각이 나.”     


“뭐 하러. 다 지난 일을. 괜히 그러지 말자. 너 그리고 이거 경매받는 거 너희 남편이나 엄마한텐 비밀이야. 알지?”    

 

“그래 알지.”     


“진즉 안 팔고 갖고 있었으면 몇 배는 남기는 건데. 제 돈 주고 다 사려니 얼마나 아까워? 노인네, 내가 무슨 자기 봉인 줄 알아. 다 지겹다 나한테 돈 뜯어가는 사람들은.”     


“미안해, 저번에 빌렸던 돈은….”     


“넌 나중에 상황 되면 천천히 갚아.”   

  

“응….”     


“은지는,”     


“그 얘기하지 말라고!”  

   

은지의 빨간색 신발을 신은 그 작은 발이 다리 아래 풀숲에서 발견되었던 날, 동네 아줌마들이 집으로 몰려와 그 사실을 알렸고 우리가 함께 다리 밑으로 달려갔을 땐, 이미 아기는 들것에 실려 가던 중이었다. 내가 흰색 포를 덮은 아이의 모습을 보고 벌벌 떨며 오줌을 지렸고 주저앉은 엄마 뒤에 선 언니는 두 주먹을 꽉 쥐고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사건이 일어나고 한참이 지나도 경찰은 은지 엄마는 계속 찾는 중이라고 했다. 은지의 사건은 신문에도 보도가 되었으나 결국 가여운 아기의  죽음은 누구의 탓인지 어찌 된 일인지 알 수가 없었다.


우리가 서로에게 하지 않았던 그 오래된 질문이 20년이 넘는 동안 내 가슴을 누르고 있었다. 모두가 괜찮지 않았던 89년의 겨울. 나는 끝내 언니에게 괜찮아?라고 물어보지 못했다. 개나리 연립을 그렇게나 저주하던 언니는 커서 그 집을 경매로 사들이기 위해 애를 쓰며 종부세를 걱정하는 어른이 되어있었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그녀에게 묻지 못했다. 우리의 겨울이 우리에게 주었던 그 상처와 기억에 관해. 만일 고집을 부려 물어본다면, 견고한 철탑처럼 무장한 언니가 왠지 무너져버릴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입 밖으로 도저히 꺼내지 못하는 질문 하나를 입 안에 꼭 숨긴 채, 언니가 시키는 대로 입찰 금액을 쓰며 언니의 얼굴을 흘끔 쳐다본다.


지난날, 두 주먹을 꽉 쥐고 눈물을 참았던 언니의 얼굴이 주름이 섬섬한 지금 언니의 얼굴 위로 스쳐 갔다. 그날이나 지금이나, 언니는 늘 무언가를 꾹 누르고 참는 사람처럼 보이기는 마찬가지였다. 부동산 투자로 많은 돈을 벌었고 학교에서도 꽤 유능한 교사로 이름이 알려진 사람인데. 그런 언니의 얼굴 한구석 숨은 그 표정 하나는 늘 나의 가슴을 아프게 후벼 팠다.

착한 우리 언니. 유독 마음이 예뻤던 그 소녀. 은지를 쳐다볼 때의 그 눈빛이 왜 요즘 나를 볼 때의 눈빛과 닮아있는 것일까.


경매 신청지에 ‘개나리 연립 102호’의 주소를 유난히도 꾹꾹 눌러쓰며, 언니에게 처음으로 마음을 물어보고 싶은 날이었다.


"괜찮아? 정말로 괜찮았어? 난 괜찮지 않았어 언니. 지금도. 아직도 그래. "


언니에게 나는 정말 괜찮지가 않다고 말하고 싶던 날이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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