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동태와 수동태
인간의 언어에는 능동태와 수동태라는 개념이 있다. 능동태는 ‘내가 주도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말하고, 수동태는 ‘내가 외부의 행동에 당하는 것’을 말한다. 이를 간단하게 영어와 한국어로 표현해보면 다음과 같다.
I love you because I am loved by you.
내가 너를 사랑하는 이유는 너가 나를 사랑해주기 때문이야.
In-between
그런데 생각해보면, 우리의 언어에는 능동태와 수동태 사이의 언어가 없다. 우리가 억지로 능동과 수동의 사이를 표현해보고자 해도, 오직 능동태와 수동태만을 이용해서 문장을 만들어 낼 수 밖에 없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I let you love me.
Or
You let me be loved by you.
나는 너가 나를 사랑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또는
너는 내가 너에게 사랑받도록 내버려 두었다.
어느 쪽 문장이든 ‘나/너가 내버려 두었다’라는 능동태와 ‘누군가 나를 사랑하도록/누군가에게 내가 사랑받도록’ 하는 능동태와 수동태를 복합적으로 사용했을 뿐이다. 이 모순을 그나마 깰 수 있는 단어가 '~중/In-between’ 인데, 이 단어의 중요성을 생각해보면 실로 빈약이란 말도 부족한, 말 그대로 빈곤의 극치인(the height of poor)표현이다.
사진가 안셀 아담스의 Zone System
1902년 생 안셀 아담스는 사진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 쯤 들어본 이름일 것이다. 그가 1870년대 프레드 아처와 고안해 낸 존 시스템(Zone System)은 흑백 사진 촬영 및 현상/인화에 있어 가장 핵심적인 개념으로 꼽힌다.
이 존 시스템을 핵심만 가장 간단하게 설명하면, 빛을 담는 도구인 필름에는 순수한 하얀색(Pure White)와 순수한 검은색(Pure Black)사이에 11단계의 회색 영역(Gray Scale)이 있고, 촬영 장면의 카메라와 노출계를 존 V(Gray 18%)에 맞춰 촬영하는 것이 가장 적정 노출이고 해당 장면에 있어 최대의 디테일을 표현 할 수 있다는 이론이다.
안셀 아담스는 흑백 사진의 이론으로써 존 시스템을 고안했기 때문에 화이트와 블랙을 11단계로 나눴지만, 실제 우리 세계에서는 화이트와 블랙 사이에 고작 11개의 회색만이 있을 리가 없다. 게다가 일단 우리가 사는 세계는 Black&White의 세상도 아닌 총 천연색의 세상이다. 인간의 눈은 400-700nm 정도의 가시광선, 다시 말해 우리가 무지개를 볼 때 인지할 수 있는 영역 정도만을 감지할 수 있는데, 자연 상태의 빛은 그 사이에 수 조, 아니 무한대의 색이 있다는 것은 이미 과학적으로 증명된 사실이다.
우리의 삶은 Zone Rainbow
위의 세 가지 문단을 정리해보자면 이런 결과가 나온다.
‘인간의 언어는 능동태와 수동태 밖에 표현 할 수 없지만, 실제 우리의 삶은 능동과 수동 사이에 무한대의 무지개 영역이 있다’
그렇다. 우리의 삶은, 항상 능동과 수동의 사이에 어딘가에 있다. 우리는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도 하고, 못하기도 하며, 나의 의지와 바램과는 다른 일들이 벌어지기도 하며, 안 벌어지기도 한다. 어느 상황과 어느 선택이든 극단적으로 한 쪽으로만 기울어지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는 내가 하고 싶기도 하지만 동시에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나의 의지와 남의 억지 사이에서 할까 말까 고민하면서 0~100% 사이에서 하는 중을 수행한다.
그렇기에 수호야. 내가 너에게 “너가 가족 모임에 나오고 싶지 않다면 나오지 마. 하지만 너가 가족 모임에 나오기로 결정했다면, 시간에 맞춰서 나와”라고 했던 것은, 이 능동과 수동 사이의 무질서한 삶에서도, 중요한 것은 우리의 의지와 선택이기 때문이야.
만약 너가 가족 모임에 나오기 싫다면, 나오지 말고 실컷 늦잠을 자. 너희 부모님은 너를 타박할 지도 모르지만, 너를 억지로 깨워서 너가 운전하게 만들 수는 없어. 만약 너가 숙취가 있는 몸임에도 억지로 일어나 부모님을 모시고 운전을 했다면, 그건 마치 너가 '수동'을 당한 것 같지만, 그건 사실 너가 운전을 한다는 ‘능동’을 선택한 거야. 반대로 너가 마음에 들지 않는 가족 모임에 나오지 않기로 ‘능동’했다면, 너희 부모님은 너에게 '수호의 자동차를 탈 수 없게 됨'이란 수동을 당하게 되겠지. 하지만 동시에 그들은 그 수동을 타개하기 위해 택시를 타던 우리한테 픽업을 요청하던 그들만의 ‘능동’을 선택할거야.
그래, 맞아. 아까는 내가 조금은 서글픈 마음으로 우리의 언어를 깎아 내렸지만, 사실 우리의 언어는 우리의 삶을 정확하게 대변하고 있어. 비록 우리의 삶은 항상 능동과 수동 그 사이의 중간 어딘가 이지만, 우리의 행동은 늘 능동과 수동 둘 중 하나 밖에 선택할 수 없어. 그렇기에 중요한 것은, 마치 무한대의 ‘Gray Scale’같은 우리의 삶은, 실은 우리의 의지로 선택할 수 있는 ‘Rainbow Zone’이라는 사실이야.
그러니 수호야, 매형으로써 내가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은, 앞으로는 반드시, 어려운 상황이나 누군가의 압박이 있더라도 너는 너의 ‘능동’을 선택할 수 있음을 인지하고, 너의 행동을 변화시켜서, 너의 삶이 너의 영혼이 진정으로 바라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을 선택하길 바래. 너에게는 지금 너의 삶이 장마철의 칙칙한 회색 하늘 같이 느껴지겠지만, 그럼에도 너는 분명 장마철이 거의 끝난 최근 몇 일 동안의 멋진 하늘을 '능동'했을 거야. 아, 장마가 끝나니까 이렇게 아름다운 하늘이 나오는구나, 라고.
부디, 우리의 삶은 사실은 우리가 무한대로 선택할 수 있는 ‘무지개’라는 것을, 꼭 기억하면 좋겠다.
너를 ‘무지개 만큼’ 사랑하는 형이.
2023년 7월 28일 새벽 2시 30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