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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가 되어버린 제약회사 직원을 아시오?

89년생 김현민과 33살 정수

by 김선비
1.jpg 출처: 유튜브 촌장 엔터테인먼트


나는 솔로를 볼 때마다 궁금한 게 있었다. 왜 나이를 ㅇㅇ년 생이 아니라 ㅇㅇ세로 표기하나, 하는 것이다. 보통 우리가 타인과 만나 통성명을 하고 나이를 물어볼 때 "몇 살이세요?"하고 물어보지 않는다. "몇 년생이세요?"하고 물어본다. 그런데 나는 솔로에서는 출연자들의 나이를 ㅇㅇ세로 표기한다. 그게 왜 그런 건지 궁금했다.


최근에 내린 결론은, 시청자에게 출연자들은 인격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가 나이에 대해 이야기할 때 ㅇㅇ년생 이라는 표현을 쓰는 건 출생년도는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35살이다. 그리고 89년생이다. 즉, "나는 89년생이에요."와 "나는 35살이에요."는 같은 말이다. 하지만 그건 올해까지만이다. 내년이 되면 35살은 36살이 되고, 34살이 35살이 된다. 하지만 89년생은 다르다. 89년에 태어난 사람은 죽을 때까지 89년생이다.


우리가 그걸 알아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내년에도 볼 사이이기 때문이다. 만약 나이트 클럽에서 하룻밤 불장난을 하려고 만난 사이라면 몇 년생인지는 몰라도 된다. 지금 몇 살인지만 알면 된다. 어차피 내일 아침에 국밥 한 그릇 먹고 헤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서른다섯 살이라면 내년에는 서른여섯 살이 되겠지만 어차피 그 때까지 연락을 하고 있을 확률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지한 만남을 염두에 두고 만난 사이라면 다르다. 몇년 생인지를 알아야 한다. 그래야 나랑 몇 살 차이인지를 알 수 있고, 오빠라고 부를지, 동생이라 부를지, 누나라 부를지, 앞으로 어떤 관계를 만들어나갈지 결정할 수 있다.


방송에서 출연자들의 나이를 ㅇㅇ년생이 아니라 ㅇㅇ세로 표기하는 것 역시 그런 이유다. 나는 솔로 출연 당시 나는 33세의 제약회사 직원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2년이 지나 35세가 되었다. 하지만 그 사실은 누구에게도 중요하지 않다. 시청자들이 보는 건 33세의 나일 뿐, 현실 세상에서 나를 알고 지내는 사람들이 아니라면 35세가 된 내 모습은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이 원하는 건 33살의 내가 가진 것들로 나를 평가하는 것이지 나와 함께 나이를 먹고 내가 성장해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문득 허무해졌다. 나는 유명해지고 싶다. 내 글과 내 이야기가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언젠가 얻게될 유명세가 내게 위로가 될 지는 잘 모르겠다. 어차피 그들은 지금, 35살의 내 모습을 소비하는 사람들일 뿐, 89년생인 나와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어갈 사람들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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