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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 연애는 왜 어려운가

"회사에 괜찮은 여자들 없어요?"에 대한 대답

by 김선비


작년까지 영업을 하다 올해부터 마케팅으로 직무를 바꿨다. 그래서 본사로 오게 되었다. 그전까지는 성남에 있는 영업 사무소에서 근무했다.


본사로 가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사무소에 있던 영업 담당자들이 말했다. "대리님, 본사에 가면 예쁜 여직원분들 많던데, 거기서 한 번 찾아보세요. 아마 금방 생기실 것 같은데?" 그리고 약 100일 정도 지났다. 안 생겼다. 결론을 내리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기는 하지만 앞으로도 안 생길 것 같다. 이유는 이렇다.


본사에 괜찮은 여자가 없어서 그런 건 아니다. 예쁜 여자 직원들도 많고, 성격 좋고 똑 부러진 여자 직원들도 많다. 같은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서로 공감대도 잘 통할 것이다. 밖에서 소개팅으로 그녀들을 만났다면 당연히 애프터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회사에서는 그럴 수 없다. 일단 보는 눈이 너무 많다. 직장인들은 심심하다. 어제와 같은 오늘, 그리고 오늘과 같은 내일, 내일과 같은 모레. 그 단조로운 일상에 지쳐있다. 그래서 그들은 가십 거리를 찾는다. 오피스에서 벌어지는 청춘 남녀의 썸은 그 중 최고의 떡밥이다. 어느 날 내가 뜬금없이 다른 부서에 얼굴도 모르는 여자에게 말을 건다면 그 순간 모든 직원들의 시선이 그리로 집중될 것이다. 그리고 수군댈 것이다. "저 사람 누구에요? 대리님 좋아하는 거 아니에요?" 그러면 그녀는 부담을 느껴서 달아나버릴 것이다. 원래 여자란 그렇다. 잠자리를 잡을 때처럼 소리 없이 다가가서 한 번에 낚아채야 한다.


내가 평소에도 여기 저기 살갑게 굴며 오지랖을 부리는 타입이었으면 괜찮았을지도 모른다. 저 놈 또 저러네, 했을 것이다. 내가 그냥 단순히 사람과 말하는 걸 좋아해서 말을 거는 건지 누군가에게 호감이 있어서 말을 거는 건지 구분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우리 팀 사람이 아니라면 사적인 대화는 한 마디도 섞지 않는다. 업무상 연락은 가급적 메신저나 이메일로 하고, 전화를 걸어야 할 때는 번호를 누르기 전에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려보고 건다. 무언가를 요구하거나 따지는 걸 잘 못해서 손해보는 경우도 많다.


내가 그런 성향의 사람인 건 척 보면 누구나 안다. 걸음걸이와 눈빛, 말투에 다 드러난다. 그런 내가 갑자기 다른 부서 여자 직원에게 말을 걸어서 친한 척을 한다면 대단히 어색해보일 것이다. 누가 봐도 평소에 저런 행동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게 티가 날 것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왜 나한테 말을 걸지? 왜긴 왜야, 너 좋아하니까겠지.


그래서 아무것도 못하고 있다. 직장인들이 주변에 멀쩡한 미혼 남자 직원, 여자 직원들 두고 블라인드에 셀프 소개팅을 올리는 건 아마 그런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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