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직을 고려하는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
이제 한 달만 있으면 이 회사에 들어온지도 1년이다. 작년에 나는 두 번의 이직을 했다. 신입사원 때부터 5년을 다닌 회사를 그만두고, 헤드헌터 회사에 들어갔다. 하지만 한 달 만에 나와서 다시 제약 업계로 돌아왔다.
잠깐 사이에 두 번의 이직을 하고 느낀 건 결국 돈이 전부라는 거다. 무조건 연봉 천만 원 이상은 더 받아야 한다. 그렇게 하지 못할 거라면 그냥 다니던 회사 계속 다니는 게 낫다.
회사 생활이 돈이 전부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나는 두 번이나 직장을 옮겼지만 연봉은 그대로다. 내 말 대로라면 한 번에 천만 원씩, 2천만 원은 올렸어야 하는데 나는 200만 원 올랐다. 첫 직장을 그냥 다녔어도 그 정도는 올랐을 것이다. 1년이 지났으니 말이다. 하지만 나는 만족스럽게 회사 생활을 하고 있다. 팀원들이 내게 살갑게 대해주는 것도 좋고, 팀장님이 예민하고 신경질적인 사람이 아니라서 좋다. 사내에 피트니스 센터가 있어서 일을 마치고 매일 간단히 운동을 하고 올 수 있는 것도 좋고, 점심과 저녁 식사를 회사에서 주는 것도 좋다. 점심 먹고 나서 1~20분 남는 시간 동안 모두 불끄고 낮잠을 자는 분위기인 것도 좋다. 라꾸라꾸 침대나 안마의자에서 잠을 잔다면 배에 가스도 안 차고 더 좋겠지만 이 정도도 충분히 좋다. 물론 소위 말하는 신의 직장에 비하면 부족한 것도 많지만, 불평거리를 찾아내려면 한도 끝도 없지만 그래도 이 회사는 썩 나쁘지 않다. 다닐만한 회사다.
그런데도 돈이 전부다, 연봉은 무조건 높여야 한다, 라고 하는 건 그것 밖에는 확실한 게 없기 때문이다. 처음 헤드헌팅 회사로 옮겼던 건 그 일이 적성에 맞을 거라 생각해서였다. 영업 사원은 자기가 파는 물건에 관심이 많아야 한다. 그래야 그 물건에 대한 고객의 궁금증을 해결해줄 수 있고, 그걸 사게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보톡스 회사 영업사원이었던 나는 보톡스에 관심이 없었다. 내가 관심을 갖고 있던 건 사람이었다. 어떤 삶을 살아온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갖게 되고, 그 생각을 어떤 방식으로 실현해나가는지가 궁금했다. 그래서 나는 사람을 파는 영업을 하고 싶었다. 그게 내가 생각한 헤드헌팅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헤드헌팅을 의뢰한 회사들이 원하는 건 이야기나 꿈이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가성비가 좋은 사람이었다. 적은 연봉을 받고 많은 돈을 벌어올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내가 해야 할 일도 가성비가 좋은 사람을 찾는 것이었다. 이 아반떼는 2018년식에, 7만 km를 뛰었고 풀옵션에, 이 K5는 2016년식에 10만 km를 뛰었고.. 하는 식으로 사람의 스펙을 비교하는 일이었다. 내가 원했던 일이 전혀 아니었다. 그래서 그만두었다.
아마 다른 일을 했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어떤 일은 내 적성에 맞고, 어떤 일은 안 맞을 테지만 그건 순전히 운의 문제일 것이다. 적성에 맞을 거라 생각했던 일이 안 맞을 수도 있고, 혹은 의외의 일에서 재미를 발견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계획대로 되는 건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결국에는 어떤 일이건 직접 해봐야 안다. 주변 사람들 이야기만 듣고, 블라인드나 잡플래닛만 찾아보고 알 수 있는 일이란 없다. 그러니 어떠한 일이 내 적성에 맞을 것 같아서 이직을 하는 건 용기있는 선택일 수는 있지만 현명한 선택은 아니다. 그 베팅의 성공률은 그다지 높지 않다.
조직 문화나 회사의 분위기를 보고 이직하는 것도 썩 좋은 선택은 아니다. 나는 지금 다니는 회사의 분위기에 만족하고 있다. 팀장님도, 팀원들도 모두 좋은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사람에 대한 스트레스가 없는 건 아니다. 여전히 스트레스를 주는 사람이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사람은 나다. 나는 신입이 아니다. 6년 차 경력직으로 이 회사에 들어왔다. 그렇다면 그에 맞는 퍼포먼스를 보여주어야 한다. 하지만 그건 쉬운 일이 아니다. 모든 회사는 다르다. 시스템도 다르고, 분위기도 다르다. 그 모든 것에 적응해야 한다. 그러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나는 경력직의 연봉을 받고, 대리님이라고 불리우고 있지만 사실은 신입 사원이나 마찬가지다. 대리니까 이 정도지, 과장이나 부장이었다면 더했을 것이다. 모르는 회사에서, 모르는 사람들에게 내 가치를 증명하는 건 꽤나 스트레스 받는 일이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일해도 이 정도이니, 안 맞는 사람들과 일한다면 더욱 심할 것이다.
최소 천만 원은 더 받아야 한다고 하는 건 그래서다. 모든 일은 해봐야 안다. 적성에 맞을 거라고 생각해서 이직을 해도 막상 해보면 맞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사람도 겪어봐야 안다. 신의 직장이라 불리우는 곳이더라도, 잡플래닛 평점이 4점이 넘는 곳이라도 빌런은 늘 있다. 그리고 설령 그런 사람이 없다고 한들 사람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없는 건 아니다.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일을 배우고 새로운 사람들에게 적응하는 건 그 자체로 스트레스다. 하지만 돈은 확실하다. 주기로 했던 그대로 준다. 그러니 믿을 건 돈 밖에 없다. 천만 원 이상 더 받을 수 없다면 그냥 옮기지 않는 게 낫다. 집 나가면 고생이라는 옛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