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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뗀 굴뚝에 연기 안난다.

학교 폭력 논란이 터진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

by 김선비

"아, 정말요? 왠지 그럴 것 같더라니."


점심시간에 어느 팀장이 성추문으로 징계를 받고 팀원으로 강등당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입사하기 전에 터진 일이라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그 얘기를 듣자마자 이런 반응이 나왔다. 왠지 그럴 것 같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교양이 없어보이는 사람이었다. 사무실이 마치 자기집 안방인양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통화를 하고, 친한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처럼 아무렇지 않게 비속어를 쓰기도 하던 사람이었다. 본인보다 나이가 어린 동료들(그들도 모두 마흔이 넘었고, 한 부서의 어엿한 팀장들이다.)에게는 반말을 쓰는 모습도 심심찮게 보였다. 그래서 왠지 그럴 것 같았다. 90년대 영화에 나오는 꼰대 부장들처럼 술자리에서는 제일 어리고 예쁜 여직원의 술시중을 받고, 2차로는 노래방에 가서 여직원과 블루스를 출 것 같은 사람이었다.


문득 몇 년 전 어느 강연에서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강사는 사람들의 소문이 다 맞지는 않지만 적어도 사람들이 그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말해주긴 한다는 말을 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진위가 확실히 밝혀지지도 않은 소문을 사실인양 떠벌이고 다니는 사람들이 잘못된 것이지, 억울하게 구설수에 오르게 된 이들을 탓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나고보니 그 말이 맞았다. 전 직장에서 영업지원팀에서 영업팀으로 부서를 옮겼을 때 영업팀에 있던 선배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회사에서는 너무 모든 걸 네 뜻대로 하려고만 하면 안 돼. 가끔은 사람들한테 맞춰주기도 해야지. 예전에 팀원들이 돈 걷어서 팀장님 생일 선물 사드리려 했는데 네가 '그런 걸 왜 해야 돼요? 팀 예산으로 해야지?'했다면서."


어이가 없었다. 나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사회적 지능이 썩 높은 사람은 아니다. 먼저 나서서 "오늘 팀장님 생일이신데 선물 사드려야 하는 것 아니에요?"하고 나서는 부류의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저런 소리를 하면 욕을 먹을 거라는 걸 모를 정도로 사회적 지능이 모자라는 사람은 아니다. 내 인생에 핵인싸에 인기남이었던 적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왕따를 당했던 적도 없다. 그건 분명 헛소문이었다.


하지만 아주 근거가 없는 소문은 아니었다. 그때 나의 모습은, 왠지 그럴 것 같이 보였기 때문이다. 신입사원 시절 나는 지나치게 경직되어 있었다. 정말 잘하고 싶었다. 꼭 이 회사에서 최고의 위치에 오르고 싶었다. 그래서 작은 실수도 용납하지 않았다. 모든 것들을 원칙에 따라, 합리적으로만 처리하려고 했다. 하지만 회사 생활에 익숙해진 선배 직원들은 그런 모습을 이해하지 못했다. '저 녀석은 왜 저렇게 융통성이 없고 뻣뻣하지?' 했다. 저 말도 안 되는 소문이 퍼진 건 아마 그래서였을 것이다.


물론 헛소문을 퍼뜨린 사람들이 잘했다는 건 아니다. 나는 헛소문으로 인한 피해자였다. 하지만 세상에는 잘잘못을 가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그건 잘 살아가는 것이다. 소문을 퍼뜨린 사람들을 다 죽여버릴 수 없다면, 그들의 머릿속에서 그 소문을 없애버릴 수 없다면 어쨌든 그들과 어울려 살아야 한다. 그러려면 내가 변해야 한다. 헛소문을 퍼뜨린 건 분명 잘못이지만 내가 처신을 잘 했더라면 애당초 그런 소문이 퍼지지도 않았을 거라는 건 인정해야 한다.


인터넷 뉴스 연예 기사면에 들어가면 오늘도 이런 저런 논란과 소문들이 빗발친다. 논란의 중심에 선 사람들은 자기는 아무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다며 손사레를 치지만, 사람들은 그들을 믿어주지 않는다. 물론 억울한 일이다. 하지만 한 가지는 알아야 한다. 아니 뗀 굴뚝에 연기나는 법은 없다. 학교 폭력 논란이 터졌다는 게 내가 학교 폭력을 저질렀다는 뜻이 되진 않지만, 사람들 눈에 내가 학교 폭력 가해자처럼 보이고 있다는 뜻이 되기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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