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을 잘하고 싶다면 책을 읽지 마라.
하지만 내가 잘못 생각했던 게 있다. 세상은 의미를 추구하는 인간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큰 성공을 거두려면 분명 인문학적 통찰력이 있어야 한다.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서는 적장의 심리를 파악해서 역이용해야 하고, 기업인으로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소비자의 근원적 욕망을 자극할 수 있어야 한다. 결국 모든 것은 사람을 상대로 하는 일이기에 사람을 이해하지 않고서 성공을 거두는 건 불가능하다. 몇 년 전 출판과 강연계에 인문학 열풍이 불었던 건 그런 이유일 것이다.
그래서 난 내가 성공할 줄 알았다. 이력서를 쓰는 족족 합격하고, 대기업에서 나를 모셔 가려고 안달이 날 줄 알았다. 왜 살아야 하는지, 왜 일을 해야 하는지, 어떤 인간이 되어야 하는지를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마치 20살까지의 나 같은 녀석들에게 내가 질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하지만 문제는 세상이 우리에게 바라는 역할은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총사령관이나, 혁신적인 서비스로 세상을 바꾸는 기업인이 아니라 그들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장기판의 졸개일 뿐이라는 것이다. 리더에겐 분명 인문학적 통찰력이 필요하다. 인간이 뭘 원하는지를 알아야 소비자의 욕망을 자극하는 상품을 만들어낼 수 있고, 병사들의 사기를 끌어올릴 수 있고, 적의 의표를 찌를 수 있다. 그러니 그들은 의미를 추구해야 한다. 답이 없는 문제들을 고민해야 한다. 하지만 팔로워들은 그럴 필요가 없다. 리더가 머리라면 팔로워는 손발이다. 리더의 명령을 현실에 구현해내는 게 팔로워의 역할이다. 그러니까 그들에게 필요한 건 머리로서의 생각이 아니라 손의 꼼꼼함과 민첩함, 그리고 발의 근력과 튼튼함이다. 생각은 오히려 마이너스다. 손발이 의지를 갖고 자기 마음대로 움직이려 한다면 머리 입장에서 얼마나 곤란하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과거의 내가 오히려 더 훌륭한 인간이었다. 학창 시절 나는 모범생이었다. 어른들의 말에 잘 따랐고, 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받아왔다. 그건 분명 내가 바라던 행복은 아니었다. 나는 교과서에 써 있는 단편적인 지식들을 외울 때보다 책을 읽고 글을 쓸 때 더 행복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자. 왜 부모님은, 왜 선생님들은, 왜 세상은 나를 행복하게 하지 못하는 공부를 하라고 했을까? 학교란 사회화 기관이다. 사회화란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인간들을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즉, 학교에서 시키는 걸 잘 하면 사회에서도 어느 정도 잘 적응할 수 있을 거라는 말이다.
그래서 회사 생활과 학교 공부는 닮았다. 혹자는 내가 좋은 대학을 나왔다고 해서 대단히 머리가 좋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는 않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지식은 일반적인 것들이다. 우주의 본질이나 신의 존재, 생의 의미 같은 것들을 밝혀내라는 게 아니다. 그냥 외우려면 외울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러니까 학교 공부는 엉덩이 싸움이다. 오래 앉아 있으면 어떻게든 된다. 회사 생활도 마찬가지다. 회사가 직원에게 요구하는 건 라이트 형제처럼 하늘을 날 수 있는 기계를 만들어내라거나, 세종대왕처럼 문자를 만들어내라는 게 아니다. 일반적인 지능을 가진 사람이라면 할 수 있을 법한 수준의 일을 시킨다. 그러니까 오래 다니는 게 중요하다. 개개인의 센스와 일머리에 따라 조금 빨리 배우는 사람도 있고 더디게 배우는 사람도 있지만 회사 일이라는 건 어느 정도 하다보면 다들 익숙해진다. “반복에 지치지 않는 자가 성취한다.”라는 미생의 대사처럼 회사 생활과 학교 공부는 결국 버티는 놈이 이긴다.
그리고 버티는 걸 잘하려면 너무 생각이 많으면 안 된다. 직장 상사에게 인격적 모독을 들어도 너무 담아두면 안 되고, 이 일이 내 인생의 장기적 비전과 별 연관이 없다고 하더라도 신경쓰지 말아야 한다. 그냥 월급 나오면 동료들이랑 술 한잔 하고, 사고 싶은 옷 한 벌 사고 다 잊어버려야 한다. 중간 고사 끝나고 친구들이랑 피씨방 가서 하루 놀고 또 기말 고사 공부 시작하는 고등학생들처럼 말이다. 교과서에 나오는 이 단편적 지식들이 내 인생에 무슨 상관이 있는지 고민하는 녀석들이 학교 공부를 잘할 리가 없듯, 인생의 의미 따위를 고민하는 인간들이 회사 생활을 잘할 리가 없다.
그래서 그때 이후 인생이 잘 안 풀리기 시작했다. 이력서를 넣는 족족 떨어졌고, 어쩌다 서류 합격을 해도 면접에서 떨어졌다. 2차 면접을 가는 경우도 매우 드물었다. 아직 일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사람 같다는 말도 들었고, 옳고 그르고를 떠나서 남들과는 조금 다른 사람인 것 같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그땐 그게 무슨 말인지 잘 이해하지 못했는데, 그런 과정을 지나고 회사 생활을 몇 년 하다 보니 이제 좀 알 것 같다. 그때의 나 같은 녀석을 만난다면 나라도 그렇게 말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