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정보회사를 하고 있다. 10번에 300만원이다. 지금까지 6번을 했고, 4번 남았다. 지난 6번의 만남 중 연애로 이어진 건 한 번도 없다. 다 말아먹었다.
이유야 많을 것이다. 내가 별로라 그랬을 수도 있다. 외모나 직업, 키 같은 객관적 지표들이 부족했을 수 있다. 아니면 상대방에 대한 나의 매너와 배려가 부족했을 수도 있다. 내 얘기만 하는데 급급했을 수도 있고, 연애에 대한 절박함 때문에 상대방에게 부담감을 줬을 수도 있다. 집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고, 연애를 못하던 놈이 결혼정보회사에 가입했다고 갑자기 잘하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결혼정보회사를 통한 만남에는 일반적인 소개팅과는 다른 변수가 있다. 돈이다. 앞서 말했듯 나는 10번의 만남을 위해 300만원을 냈다. 환불이 된다는 가정하에, 만약 내가 4번째 만난 여자와 결혼을 한다면 나머지 6번에 해당하는 180만원을 환불받게 될 거다. 그러면 120만원 주고 4명의 여자를 만난 셈이 된다. 1회당 30만원이다. 7번째 여자와 결혼을 하더라도, 10번째와 하더라도 똑같다. 무조건 30만원이다. 모든 만남의 값어치는 같다.
그런데 환불이 안된다면 남은 횟수에 따라서 만남의 값어치가 달라지게 된다. 내가 첫 번째로 만난 여자와 결혼을 한다면 나는 나머지 9명의 잠재적인 애인을 만나보지 못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9번에 해당하는 270만원을 환불받을 수는 없다. 즉, 나는 한 번의 만남을 위해 300만 원을 쓴 게 된다. 두 번째와 결혼을 한다면 두 번의 만남에 300만 원을 지불한 게 된다. 객단가는 150만 원이다. 3번째 혹은 4번째로 갈수록 각 만남의 객단가는 300만원/N으로 떨어진다. 그리고 마지막 열 번째 여자를 만날 때는 비로소 300만원/10, 30만원이 된다.
물론 테이블 맞은 편에 앉아 나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여자가 300만 원 짜리인지 150만 원 짜리인지 의식적으로 계산을 한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걸 전혀 신경쓰지 않을 수는 없다. 이런 식이다. 첫 번째 여자를 만난다. 꽤나 마음에 든다. 외모도 성격도 내 스타일이다. 하지만 왠지 나머지 9번의 만남을 포기하기에는 좀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더 나은 여자가 있을 것만 같다.
있을 것만 같다는 것.
그게 사람을 돌아버리게 만든다. 차라리 나머지 9명의 사진을 미리 보여준다면 결정하기 쉬울텐데, 누군지 알 수가 없으니 막연한 기대감만 생긴다. 뉴진스가 나오면 어떡하지? 에스파나 르세라핌이 나오는 거 아냐? 1번 여자가 그 막연한 기대감 속 9명의 잠재적 경쟁자들보다 매력적이지 않다면, 첫 여자를 택하긴 어렵다.
하지만 두 번째는 좀 쉽다. 잠재적 경쟁자가 9명에서 8명으로 줄어든다. 여덟 번째나 아홉 번째는 더욱 쉽다. 남은 한두 번의 만남에서 매력적인 여자가 나올 확률은 별로 높지 않다. 그리고 10번째가 되면, 그냥 아무나 걸려라 하는 심리 상태가 되어버린다. 여자 손도 못 잡아보고 300만 원을 공중에 날리느니 그냥 아무나 잠깐이라도 만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라도 본전을 뽑고 싶어진다.
나는 일곱 번째 여자를 기다리고 있다. 남은 기회는 세 번이다. 그 세 명 중에 내 천생연분이 있을 확률은 별로 높지 않다. 그러니 나는 아마 일곱 번째 여자에게 애프터를 할 것이다. 여덟 번째, 아홉 번째에게는 더 높은 확률로 애프터를 할 것이다. 열 번째 마지막 여자에게는 제발 일주일만이라도 사귀어달라고 바짓가랑이를 잡고 매달릴 수도 있다.
하지만 상대방의 입장은 다를 것이다. 그녀에게는 내가 첫 번째나 두 번째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녀는 아마 나를 택하지 않을 것이다. 나머지 8명의 잠재적 연인을 합한 것만큼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 한 그렇게 할 것이다. 궁금하다. 부디 내가 그녀의 열 번째였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