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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환희 Jul 23. 2021

돌연사 (3)

죽음이 나의 현실로 내려오는동안

게시물 작성을 위해 카톨릭대학교 성빈센트 병원 이름이 박힌 누런 서류 봉투를 지금 다시 열어보았다.  

응급실에서는 그 안에 사망진단서를 넣어주었었다.


사망일시  2020년 09월 25일 04시 45분, 직접사인 미상, 사망의 종류 기타 및 불상


수원남부경찰서 소속 형사는 내게, 응급실/접종 소아과/출생 산부인과에서의 의무기록 사본을 가지고 경찰서로 오라고 했다.

나는 들리는대로 꾸역꾸역 누런 봉투 뒤에 적었다.

지금 보니  외에도 '부검날짜', '검시필증(하드카피)', '화장예약', '빈소상담', '의무기록창구 1F 27,28 031-249-8294' 이런 것도 적혀있다.


남편이 형사 둘을 집으로 인계해가고, 의무기록창구와 원무과 업무가 시작할 9시까지 내가 뭘 했는지 기억이 안난다고 기억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안치실 직원이 전화가 와서 시신을 인계해가겠다고 했고 응급실의 나와 접선해서 침대를 끌고 장례식장 안치실로 이동했다.

여덟시가 좀 안되었을 거 같은데, 응급실을 벗어나자 불꺼진 복도 의자에 보호자인지 대기자인지 칠팔십대의 노인들이 줄지어 앉아 있었다.

어떤 표현도 안되었던 내 감정이, 그 노인들 무리의 광경에 시뻘건 분노로 바뀌었었다.


'어떤 목숨들은 저토록 길고 질긴데.'


아기를 안치실 냉동실에 넣기 직전에 남편이 돌아왔다. 망자의 이름표도 잘못 부착해놓은 것을 보고, 부검이 차주 월요일 아니면 추석연휴로 인해 더 늦어질 수도 있다던데, 이 무신경하고 덜떨어진 자들이 그 사이 이 냉동고를 여닫는 것이 아닌가, 나는 순간 시신 훼손의 리스크까지도 걱정했다.


아홉시가 가까워져 병원 로비 의무기록창구 번호표를 뽑고 대기 의자에 앉았다.

간밤에 아기를 안고 함께 들고나온 기저귀 가방이 황망하게도 무거웠다. 새 기저귀 여러장, 혹 진단에 도움이 될까 돌돌 말아온 똥기저귀, 분유가 담긴 젖병, 보온병 따위였다. 보온병 물을 다 마셔버리고 새 기저귀를 쓰레기통에 버렸다. 젖병도 버릴 요량이었는데 행동이 되질 않았다. 똥기저귀야 당연히 못버렸다.


의무기록창구 직원 왈, 응급실 기록 중 '응급실 기록'이 작성 미비 상태이며, x-ray 영상은 있지만 기록상 '판독 진행중'으로 작성되었다며

미완 서류를 떼주었다. 나는 그 말을 구두로 두어차례 듣고 못알아듣겠으니 써달라고 누런 봉투를 내밀었다.

미비 기록을 재촉하기 위해 나와 남편은 원무과로 갔다.

원무과는 이미 이 사건을 전해들은 상태였고 우리를 상담실 같은 곳으로 안내해 기다려달라고 했다.

그때까지도 남편 전화기는 계속 녹음 모드였다. 처음 응급실에 왔을 때도 녹음을 했다고 했다.

산후도우미에게 전화가 왔다. 경찰 조사를 경찰서에서 받았는지 내집에서 받았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


 - 미안해요.


답할 말이 없어 침묵했다.


 - 나는 이제 어떻게 할까요.


돌볼 애가 없는데 뭘 어쩌란 말인가. 댁에 가시라고 했다.


 - 아기 다시 또 얼른 낳아요.


예순 넘은 할머니 말주변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의 위로라 생각은 하지만, 당신이 할 말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형식상의 의무기록을 받아들고 부부는 내처 경찰서로 갔다.

담당형사는 그냥 본인 자리에서 조사를 쓸 계획이었던 모양인데, 우리에게 녹음/녹화 하겠느냐고 물어 녹음을 원한다고 했고 조사실로 이동해서 한시간 가량 전날 B형간염 접종부터 사망까지의 경과를 이야기했다. 남편이 주가 되어 이야기했고, 나는 응급실 가기 전 모든 디테일을 다 조서에 담고 싶어 끼어들었지만 형사에 의해 몇번을 저지당했다.

조서에 담겨야하는 육하원칙 외의 팩터들이, 내게는 그것이 의혹이었지만 그 형사에게는 주변부 곁가지였나보다. 또한 중년 직장인 남성이 원하는 커뮤니케이션 형식을, 정신 나간 에미가 맞춰줄 여유도 없긴 했다. 그 당시에 나와 남편은 응급실 의사의 초진이 잘못되었다,에 생각이 몰려있었다. 그것이 부주의였든, 자질 부족이었든, 업무상 과실치사라고 명명할 수 있는지 확신이 없었으나 그가 아니라 다른 의사였다면 다른 병원이었다면 결과가 달랐을 거라고 믿고 있었다.

조서에는 그러한 의견이 들어갔다. 산후도우미가 소지하고 있던 렉사프로정5mg 같은 건 언급하지 못했다. 그것을 언급함으로써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인지 메세지 자체에 확신이 없었다.


 - 마지막으로, 부검을 희망하십니까?


 - 네.


조서에 지장을 찍고 소아과에 들러 진료기록을 요청했다. 사망은 언급하지 않았고, 간호사는 원장님 허락을 받아야 내어줄 수 있다고 했다.


소아과에 들렀을 때도 그러했지만, 아파트 주차장으로 돌아왔을 때의 황망함은 뭐라 말할 수가 없다. 10시간 전, 24시간 전의 주차장.

심지어 전날 접종을 마치고 돌아가는 차안에서, 나는 아기 사진을 첨부하여 직장 임원에게 산모와 아이 모두 건강하며, 한달 뒤 복귀하겠다고 슈퍼맘 흉내를 내며 가당찮은 메일을 보낸 바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내 아기가 없다. 죽었버렸다.

엘리베이터에까지 참담함이 이어지는 차에, 출산격려금 입금 문자가 울렸다.


빈 집에 와보니 친정엄마가 아기 젖병이며 물건을 어딘가로 싹 치워놓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남편은 샤워하면서도 침실에서도 와아악 무너지듯이 한번씩 울었다. 나는 여전히 울지 못했다.

남편은 아기가 보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아기를 보고 싶단 마음을 내가 가져도 되나 머뭇거렸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나는 감정 반응이 실시간으로 일어나지 못했다.

경찰서 가는 길엔가, 남편은, 우리는 첫째 잘 키워야지, 진짜 잘 키우자, 말을 해서,

어떻게 벌써 정돈된 미래형을 얘기하는지 와닿지 않았던 느낌이 있다.

이어서 얘기한, 우리는 둘 키울 카파가 안되, 소리가 마음에 사뭇쳤다.


시어머니가 잠깐 오셨었다. 마음에 묻고 살아야지.

글자로만 알고 있는 얘기. 그게 내 인생의 모양이 된다니.


남편과 누워 자다깨다 했던 거 같다. 밤에는 미역국에 찬밥을 데워 돼지죽같은 국사발을 각자 비웠다.

남편은 응급실 의사의 이력을 확인하고, 긴가민가 하면서도 의료소송을 위한 의사 출신 변호사와 로펌을 검색하고 정보를 줄만한 지인들에게 전화를 돌리고 그랬다. 내게도 누구누구에게 전화를 해서 도움을 끌어내라고 종용했다.


- 정작 부검 결과에서 이렇다할 정보가 없을 수도 있어.


남편의 분주하고 집중하는 모습이 미더우면서도, 그래서 우리의 목적은 무엇이지? 나는 아연했다.


내가 원하는 것은 단 한가지. 시간을 돌리는 것. 어제밤으로, 아니, B형간염 주사 맞기 전으로, 아니, 널 낳는 순간으로,

아니, 다시 너를 내 자궁으로 품어 꾸물꾸물 움직이던 너를 놓아주고 싶지가 않다. 아가 너가 엄마 아랫도리를 짓누르며 여기 내가 있다고 시시각각 알려주던 그 때로.

그 외에는 무엇으로도 만회되지 않고 위로되지 않는다 생각했다.

아기의 똥기저귀를 보냉케이스에 넣어 냉동실에 넣었다.

이 똥을 내가 먹어 너의 숨이 돌아온다면 내가 백번이고도 먹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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