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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경은 Sep 24. 2021

엄마 음식은 유통기한이 있다.

시래깃국과 두부조림

엄마!


나도 이제 결혼한 지 20년이 지났어. 근사한 메뉴를 차려내는 게 아직도 자신 없지만 그래도 네 식구 그럭저럭 먹고사는데 지장 없을 정도로 매끼 밥상을 차려내고 있어. 남편이야 이제 중년이라 여기저기 조금씩 아프긴 하지만 아이들 별 탈 없이 건강하게 자라고 있어. 이 정도면 엄마인 내가 잘 먹여서 그런가 보다 라고 생각해.


누구나 다 그러겠지만 나도 엄마가 해주는 음식이 그리워.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느라 명절이나 휴가를 얻으면 엄마를 만나러 고향집에 갔잖아. 집에 내려간다고 전화하면 늘 엄마는 이렇게 묻곤 했지.



나; 엄마, 다음 주 휴가 냈어. 집에 내려갈게

엄마;그래 어서 와! 뭐 먹고 싶어? 뭐 해놓을까?

나;음. 시래깃국이랑 두부조림 먹고 싶어.




1. 걸쭉한 시래깃국에 밥 말아먹기


걸쭉하게 끓여내 시래깃국은 떠먹는 것도 맛있지만 밥을 말아서 먹을 때가 더 맛있지. 들깨와 된장, 시래기가 조합을 이뤄서 각자 재료 본연의 맛을 유지하면서 결국 보양식의 경지까지 맛을 끌어올리지.  난 자주 해 먹지 않아. 매번 만들 때마다 제대로 맛을 내 본 적이 없으니 음식을 하는 재미가 없네. 맛있게 해 보려고 들깻가루도 몽땅 넣었지만 국물에 흥건하게 섞이면서 내가 원하는 들깨와 시래기의 만남이 이뤄지지 않아. 난 시래기 국물이 맑기보다는 걸쭉한 게 좋아. 된장과 들깨가 섞인 국물이 밥 속에 스며들어서 국물은 거의 사라지고 약간은 시래기 죽처럼 되는 것 말이야. 그릇 바닥이 훤히 보이도록 남은 들깻가루 국물을 숟가락으로 싹싹 긁어먹으면 설거지하기도 편하지. 


2. 겉바속촉 두부조림


그리고 두 번째로 좋아하는 엄마 음식은 두부조림이야. 난 입맛이 아직도 촌스러운가 봐. 화려한 진수성찬보다 이런 음식이 훨씬 좋아. 엄마가 해주는 두부조림은 늘 겉은 약간 바삭하고 속은 촉촉했어. 음식 비주얼만 보면 두부에 양념장을 뿌려서 프라이팬에서 조려낸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나도 그렇게 해봤어. 그런데 엄마가 해준 맛이 안나는 거야.


나중에 알고 보니 엄마는 좀 더 다른 과정이 포함되더라고. 먼저 프라이팬에 두부를 살짝 구워낸 다음 그걸 냄비에 하나씩 밑에 까는 거야. 냄비 바닥면에 한 층씩 깔면 그 위에 양념장을 끼얹고 다시 그 위에 구워낸 두부를 올리고 양념장을 올리는 거더라. 그리고 냄비 불을 약한 불로 해서 살짝 익혀내면 탱글탱글하면서도 따뜻한 두부조림이 완성되는 거지. 과정을 글로 쓰면 별거 아니지만 엄마 나름의 노하우가 있는 것 같아. 나도 이 과정 그대로 해봤는데 식감이 너무 달랐어. 첫 번째로 프라이팬에 두부를 구울 때는 겉만 살짝 익는 정도인데 난 잘 안됐어. 너무 익히면 두부가 딱딱해져서 튀김처럼 되고 너무 조금 익히면 물컹한 원래 두부 느낌만 남게 되는 거야. 마지막으로 냄비에서 살짝만 익혀내는 시간도 음식 맛에 영향을 많이 미치더라. 자칫 냄비 바닥이 탈 수 있어서 조심해야 하고. 양념장이 두부 속에 살포시 베일 정도만 잠깐 익혀내야 하는데 이것도 쉽지 않아. 냄비를 잘 지켜보면서 정성을 들여야 하는 게 바로 이런 포인트인가 봐.


결론은 두 가지 음식을 엄마가 해 준 맛의 경지에 오를 정도로 난 하지 못한다는 거야. 잘 해먹지도 않고 있어. 그저 마음속에  엄마에 대한 추억의 음식으로만 남아있어. 이제부터라도 제대로 만들어봐야겠어.


늘 엄마가 만들어준 맛난 음식을 먹기만 했지 엄마한테서 음식 만들기를 배워보려고 생각해본 적은 없어. 엄마가 해준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유통기한이 있을 줄 알았겠어? 하긴 예전에는 배운다고 하더라도 잘하질 못했을 거야.

 엄마! 나이 50이 되니깐 음식 만드는 게 조금은 정성과 은근함이 묻어나는 것 같아. 말이 좀 애매하긴 한데. 예전에는 식구들 위해서 뭔가를 만들 때 대충 맛이 나면 그 정도로 만족했어. 그리고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은 되도록이면 피하려고도 했고. 오랫동안 끓여내야 하는 음식은 만들기 귀찮아했어. 아이들이야 고기반찬이면 그만이라서 양념된 불고기를 사 와서 볶아주는 경우가 많았어. 물론 지금도 애용하는 반찬이긴 하지만. 그런데 남편이나 나나 이제 중년이 접어드니깐 음식을 점점 가리게 되네. 몸에 좋지 않은 음식과 좋은 음식에 민감해져. 그래서 시간을 들여서 만들어야 하는 음식도 자꾸 만들게 되네. 예전에는 인터넷 레시피에서 참조하면서 과정을 조금씩 생략하기도 하고 시즈닝 재료들이 없는 대로 만들었어. 하지만 요즘은 뭉근하고 진득하게 시간을 들여서 만들어내는 음식이 자극도 덜해서 먹기 편하고 먹은 후에도 소화도 잘 되더라.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내가 음식을 잘하는 주부는 결코 아니야. 웬만하면 집밥을 해먹이려고 노력하는 사람인 거지.


엄마, 나중에 내 아이들이 엄마라는 존재를 기억할 때 어떤 음식을 떠올릴지 사뭇 궁금해. 내게는 시래깃국과 두부조림이 영원히 엄마의 음식을 상징하는 것이야. 내 딸들도 그런 음식을 가슴에 품을 수 있을지 아직은 확신이 안서네. 누군가를 떠올릴 때 음식이 떠오르는 건 푸근하고 정감 어린 마음이 가득해져. 과거에 비해 풍족한 삶을 살아서 먹는 것 외에 인간의 욕망을 채워줄 수 있는 것이 많더라도 나를 위해 차려진 한 끼 밥상은 커다란 기쁨 중의 하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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