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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경은 Oct 08. 2021

엄마의 마지막 선물

큰아이 백일 팔찌

 엄마!

오후에 남편 시계 배터리를 교체하러 사무실 1층에 있는 금은방에 갔어. 매장 주인분이 배터리를 교체하는 동안 유리 진열장에 진열된 각종 보석들을 구경했어. 주로 금으로 이뤄진 제품이 많더라. 화려한 디지인의 보석보다는 주로 나이가 지긋한 어른들이 하실만한 액세서리가 많은 곳이야. 목걸이, 팔찌, 반지, 귀걸이들이 다양하게 놓여있는데 한 곳에 순금으로 만들어진 애기들 돌반지랑 돌팔찌가 보이더라. 유심히 보다가 예전에 엄마가 내 큰 딸아이를 위해서 마련해준 선물이 생각났어.






나는 첫아이를 결혼 후 3년 만에 계획해서 가지게 되었어. 맞벌이를 하고 있어서 임신은 계속 미루고 있었던 거지. 계획대로 아이를 바로 가질 수 있게 되니 임신이란 게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어. 문제는 출산 이후에 시작되는 거였지. 일을 계속해야 해서 일과 육아를 병행할 자신이 없었어. 결국 난 엄마에게 손을 내밀었지. 


처음에는 엄마가 오빠 아이들 2명을 키워준 것을 보았기에 엄마에게 더 이상 부탁하고 싶지 않았어. 조카들이 이미 성장해서 엄마에게 자유시간이 필요했으니깐. 그렇지만 결국 엄마에게 부탁하고 말았네. 엄마는 거절 한마디 해보지 못하고 내 부탁을 선뜻 들어주었어. 


내가 만삭이 될 때쯤 엄마는 우리 집으로 이사를 했지. 엄마가 집에 늘 있으니 썰렁했던 내 집은 점점 포근해지는 느낌이 들더라. 내가 워낙 집 꾸미기도 안 했고 청소도 안 하고 살았잖아. 엄마는 내가 회사에 있는 동안 집안 구석구석을 깔끔하게 정리해놓았어. 아파트 현관문의 묵은 때를 깨끗이 닦아놓았지. 그리고 현관바닥 타일까지 반짝반짝하게 바뀌었어. 엄마는 화분 키우기를 좋아했는데 내 집에도 식물이 숨 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두었지. 식물이름은 알 수 없지만 자랄수록 잎이 밑으로 늘어지는 것이었지. 위에 메달아 놓으면 보기도 좋았어. 엄마가 화분을 키우면 색깔도 선명하고 잘 자랐어. 내가 퇴근 전에 저녁밥상을 준비해놓고 내가 내리는 버스정류장으로 항상 마중을 나온 엄마를 보는 게 행복했어. 1시간 이상 만원 버스를 타고 집에 오면 지치지만 엄마가 차려준 맛있는 저녁밥을 먹을 생각에 기분이 좋았어.


출산일이 다가와서 나는 12시간 진통 끝에 수술을 해서 첫아이를 낳았지. 출산 휴가를 받아서 나도 집에 같이 있을 때였어. 엄마가 어느 날부터 배가 아프다고 했지. 나도 출산 이후라 몸을 추스르느라 자유롭게 외출을 할 수 없었어. 엄마 혼자서 동네 내과에 여러 차례 다녔지. 간단한 소화 관련 약만 받아와서 먹었는데 엄마의 통증은 나아지질 않았어. 그러다가 엑스레이를 찍어보았는데 담담 의사가 큰 병원을 가보라고 했어. 이때부터 불안감이 조금씩 일어나기 시작했어. 결국 서울대병원에서 정밀진단을 받은 후에 며칠 후에 전화로 검사 결과를 듣게 되었어. 그 전화는 내가 받게 되었지. 담당의사가 건네는 말은 '암 말기'라는 거야.



© Pexels, 출처 Pixabay





드라마에서나 벌어지는 일이 내 앞에서 일어나고 있었어. 엄마가 아프다고 했던 증상들은 단순한 소화계통 염증이나 통증이 아니었던 거지. 어떡하지. 어떡하지. 엄마는 얼마나 사실까? 내 아이는 어떻게 해야 하나?  엄마와 내 상태를 동시에 바라보게 되었어. 남편에게 알리고 친정식구들 모두에게 급히 알렸어. 급기야 오빠가 와서 엄마를 모시고 오빠 집인 순천에 내려갔지.

갑작스럽게 오빠가 와서 엄마를 모시고 간다고 하니 엄마도 많이 놀랐지? 그렇게 엄마는 나와 2개월 정도 살고 다시 내려가게 되었지.


난 얼마 후 출산휴가를 마치고 복직했어. 아이는 시어머님이 돌봐주셨고.  주말마다 나와 남편은 아이를 보러 군산시댁에 내려갔지. 격주마다 다가오는 놀토에는 엄마를 보러 갔고. 나 혼자 기차를 타고 엄마를 보고 다시 시댁으로 와서 아이를 보고 일요일 저녁이면 집으로 돌아가는 삶을 살았어. 혼자 타고 다니던 기차안에서는 눈물이 그치질 않아 유리창 밖만 바라보면서 다녔어.

엄마의 모습을 보러 갈 때마다 조금씩 변해갔어. 늘 유머가 넘치는 엄마의 모습은 사라져 가고 늘 방에 누워있는 모습만 보다가 왔지. 그래도 편히 대화를 할 수 있어서 난 엄마가 오래 살 것처럼 생각되더라.


어느 날 엄마가 나와 큰언니랑 함께 오빠 집 근처 금은방에 가자고 했어. 내 아이 백일이 다가올 무렵이라 금반지라도 사주고 싶다고 했지. 오랜만에 하는 외출이라 엄마는 깔끔하게 옷을 차려입고 나갔잖아. 집에서 걸어서 다니던 곳이라 별 부담 없이 엄마, 큰언니, 나 이렇게 셋이서 걸어갔어. 엄마의 혈색이나 뿜어져 나오는 생기에서 엄마가 갈 수 있을 거라 여겼어. 그런데 몇백 미터 정도 걷다가 엄마는 결국 못 가겠다고 하셨어. 난 그때서야 엄마의 몸 상태를 제대로 느낀 것 같아. 그 정도로 가까운 거리도 엄마는 걸어갈 수 없는 것이었지.

결국 우리 오빠 집으로 돌아왔어. 난 다음날 다시 집으로 돌아갔고.






© sir_vp, 출처 Unsplash









이후에 큰언니가 나한테 금팔찌를 한 개 건네줬어. 엄마가 돈을 줘서 언니가 사 온 거더라. 그 팔찌를 내가 받은 때가 엄마가 세상을 떠나기 전인지 후인지 기억이 정확하진 않네. 엄마는 결국 막내딸을 위해 당신이 해주고 싶은 선물을 직접 건네주진 못했어. 언니를 통해 받은 팔찌를 신생아 팔에 끼울만한 자그맣고 귀여운 모양이었어. 작은 금팔찌를 보면 엄마의 허약해진 몸이 떠오르기도 해. 엄마 몸이 성치 못해 돈만 주면서 사다 주라고 했을 때 엄마 맘이 얼마나 안타까웠을까? 난 그때 엄마 마음을 다 헤아리기는 힘드네. 


지금도 잘 보관하고 있는 그 금팔찌를 볼 때마다 늘 엄마가 떠올라. 팔찌를 내려다보면 엄마가 뭐라고 한마디 속삭일 것 같은 상상도 해봐. 나한테 주는 마지막 선물처럼 착각하기도 해 보고. 이제는 그 금팔찌는 엄마를 기억할 수 있는 물건이 되어가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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