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경은 Oct 22. 2021

 여상 가면 어때?

엄마에게 서운했던 일



엄마!


이제 와서 엄마에게 서운한 것을 이야기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어. 그때 당시 차마 입 밖으로 속상한 마음을 털어놓지 못했지만 두고두고 마음에 담아놓은 기억이 있었어. 중3 때였지.


아빠가 중학교 1학년 때 돌아가시고 형편은 더 어려웠지. 큰언니만 직장에 다니고 작은언니는 고등학생이고 오빠는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고 있었어. 난 중학교 3학년이었고. 그 시절에는 고등학교 입학을 할 때 학력고사를 보고 들어갔잖아. 학력고사 점수에 따라서 전기, 후기 고등학교로 나뉘기도 했었고. 그리고 대학을 위해 일반고를 갈 것인지 취업을 위해서 상업고등학교에 갈 건지 결정을 해야 했어. 난 늘 모범생처럼 살았고 성적도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어서 일반고등학교에 가서 대학을 가는 게 당연하다고 여겼어. 담임선생님께서 일반고와 상업고등학교 어디로 지원할지 정하는 문제로 서류를 제출하라고 했어. 난 서류제출은 형식적으로만 생각하고 엄마에게 물어봤어. 





나:  엄마 나 일반고 신청서 제출하면 되지?

엄마:  그냥 여상 가면 어때?

나:........... 싫은데.........


난 어이가 없었지. 엄마가 내 미래에 대해 그렇게 그림을 그리고 있을 줄은 전혀 예상 못했어. 공부도 잘하고 성실하니깐 당연히 엄마가 대학에 보내줄 줄 알았어. 드라마에서 나오는 '넌 공부만 열심히 해. 엄마가 어떻게 하든 뒷바라지해줄 테니깐!'라는 말은 그저 비현실적 대사일 뿐이었지. 


엄마 난 내가 착한 딸이라서 언제나 날 특별하게 대할 거라 여겼어. 물론 나도 엄마의 사랑하는 딸이겠지. 하지만 난 그때 그런 생각이 들었어. 나란 존재가 별것 없는 것이구나. 엄마에게 나도 다른 형제들이나 똑같을 뿐이구나. 단순히 서운하다는 표현은 맞지 않아. 아들 하나에 딸 셋인 집에서 난 막내였지. 큰아들은 워낙 애지중지 키우는 터라 무엇이든 특별하게 대우해줬고 내 위로 언니 둘은 엄마의 집안일을 대신하는 역할을 자주 했어. 난 막내라서 다른 언니들과 달리 집안일은 나에게 시키지 않고 뭐라 꾸지람도 받은 적도 없지. 그래서 난 착각했나 봐. 엄마가 나만은 뭔가 달리 교육을 시켜줄라고 여겼지. 

물론 집안 형편상 내가 풍족한 교육적 후원을 받으리라 기대한 것은 아니야. 다만 대학에 들어갈 수 있도록 엄마가 도와줄 거라 철석같이 믿었어. 그렇지 못할 거란 의심 한번 해본 적이 없었어. 

다행히 언니나 오빠가 엄마에게 난 대학에 가는 게 당연하다고 설득했지. 큰 갈등은 없이 난 무사히 일반고등학교에 원서를 냈어. 내가 그때 엄마 말대로 순순히 순응하거나 엄마가 날 완강히 설득해서 내가 여상에 갔다면 어땠을까? 인생의 갈림길 끝이 어디로 뻗어있는지는 누구도 알 수 없겠지.


지금 내가 엄마 상황에서라면 아이에게 뭐라고 제안할 수 있을까? 남편도 없이 네 명의 자식들을 키우는 엄마의 입장에서 나라면 과연 '당연히 일반고 지원해야지'라고 말할 수 있을까? 솔직히 잘 모르겠어. 옛날과 달리 지금은 사교육비가 만만치 않은 세상이라서 나도 내 아이에게 당당하게 말하긴 힘들었을지 몰라. 그런 면에서 보면 엄마 심정이 이해가 되긴 해. 그렇지만 엄마에게 섭섭한 마음은 잘 가시질 않았어.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에서 그날의 기억은 작은 해프닝일 뿐이야. 하지만 내 기억에는 엄마 말에 처음으로 거부를 한 일인듯해. 나름 내 인생에서 큰 선택을 해야 하는 일이었어.

그런 과정을 거쳐서 난 일반고에 입학하고 3년간 무사히 학업을 마쳤어. 그리고 국립대학에 한 번에 합격을 했지. 절대 나에게 재수는 가능하지 않다고 여겼기 때문에 꼭 합격하고 싶었어. 대학은 나에게 처음으로 절실한 목표였어. 원하는 대학과 원하는 과에 합격했지 그리고 입학장학금까지 받을 수 있게 되었어. 




그때 엄마는 장학금을 받아서 기분이 좋다면 다니던 직장 동료분들에게 자두맛 캔디 한 봉씩 사서 돌렸잖아. 지금은 아마 커피 한잔씩 사서 줬을 거야. 지금도 자두맛 캔디를 보면 늘 엄마 생각이 난다니깐. 넉넉지 않은 살림에 뭔가 기쁨을 나누는 방법으로 엄마가 선택한 방법은 귀엽기도 했어.


엄마 막내딸 일반고 보낸 것 후회하지 않도록 열심히 노력했어. 중3 때 고등학교를 선택하듯 고3 때는 대학과 과를 선택해야 했어. 대학 졸업 후에는 직장을 선택해야 했고. 다시 배우자를 선택하고 살아야 할 집을 선택해야 했지. 끊임없는 선택을 하면서 살아왔어. 선택을 하면 포기를 하기도 하고. 반드시 최고 선택만 하며 살진 못했어. 그 당시에 가장 현명하게 하려고 노력한 결과일 뿐이지.



이전 01화 하늘에서 엄마가 전화를 받을 수 있나?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