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 니오니 글, 그림
#온전한나#영웅의여행#나를넘어서는것#당당함#실존적존재#자존감
피곤하고 고단한 몸이 마음에까지 영향을 미친 것일까? 그림책<작은 조각>을 읽으며 내가 스스로에 대해 많은 불만에 싸여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작은 조각의 모습처럼 불완전한 나를 더욱 인식하게 되며 내가 조금이라도 나아진 구석은 있는 걸까하고 새삼 자문하게 된다.
그림책 속 작은 조각은 아주 작은 붉은 네모이다. 작은 조각은 다른 친구들과 달리 아주 작았고 이름은 하나였다. 작은 네모 하나는 당연하다는듯 자신이 누군가의 한 조각임에 틀림없다는 확신을 갖는다. 친구들이 보기에도 그럴거라 여겨지지만 스스로도 너무 작고 초라한 자신이 온전하게 여겨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완벽한 조각과 함께 하고 싶다는 열망으로 친구들을 찾아간 작은 조각은 "내가 너의 조각이 아닐까?"하는 물음을 던진다. 친구들은 저마다 크고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뛰는 친구, 힘센 친구, 헤엄치는 친구, 산 위의 친구, 날고있는 친구, 슬기로운 친구를 차례로 만나는데 찾아간 친구들은 모두 거리낌없이 자신에게 부족한 한 조각은 없다며 냉정하게 답을 한다.
작은 조각이 마지막으로 만난 슬기로운 친구는 그런 고민이라면 '쾅'섬으로 가 보라고 말해준다. 그곳에 가기만 하면 자신의 존재를 확인 받을 수 있다는 희망에 들떠 작은 조각은 작은 조각배를 타고 섬을 향한다. 하지만 작은 조각이 쾅섬에서 만난 것은 생명이라곤 아무것도 없는 자갈밭 뿐이었다. 작은 조각은 당황하였지만 섬 곳곳을 다니며 자신을 알아봐줄 온전한 큰 조각을 찾으려 한다. 결국 돌무더기에서 굴러 떨어진 작은 조각은 산산조각이 나고 만다.
허허로운 쾅섬에서 외로이 자신을 알아줄 친구를 찾이다니던 작은 조각은 뜻밖에 조각조각난 모습에서 자신의 존재를 깨닫게 된다. 자신이 산산조각이 났을 때 비록 작은 조각이지만 나름 여러개의 조각들로 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하나라는 이름처럼 자신이 온전한 존재였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는 기쁨에 차서 친구들을 찾아가 "나는 나란 말야"라고 선언한다. 스스로 존재의 완벽함을 알게 된 작은 조각으로서는 기쁨의 환호성을 당당히 외친다. 친구들도 당당해진 작은 조각과 함께 기뻐해준다.
나도 나를 채워줄 커다란 조각이 필요하고 혼자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없다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부모님을 최고의 안전처로 삼았던 청소년 시기에 부모님이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무너지는 모습을 보며 나를 구원해줄 누군가를 간절히 원했다. 나중에야 알게 된 바로는 부모님의 삶이 엉망이 된 것은 어쩌면 한 순간 발생한 사건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시련을 극복하고 걷어낼 힘이 그분들에게는 없었다. 그런 정신적 몰락은 그대로 나에게 학습되었고 자신감을 떨어트렸다. 처음에는 커다란 조각을 찾으면 금세 해결될 사건 정도로 생각했지만 나는 점점 내가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느껴졌던 것 같다. 내가 중심을 잡지 못하니 외부의 조건들에 마음이 흔들리며 이후의 시간들은 무엇에 휩쓸려 간 것처럼 느껴진다. 남편을 커다란 조각이라 생각하며 의지하고 살고 싶었지만 그것도 쉽지 않았다. 자유로운 영혼인 남편이 나와 아이들을 부양하며 고단한 시간을 보냈지만 안정을 얻기가 쉽지는 않았다. 인생의 돌파구를 찾고 싶었다. 그 길이 무얼까하고 고민도 많았지만 내가 의지하고 싶었던 것들은 그렇게 머물러주지 않았다.
신앙에 기대어 답을 얻고자 한 때도 있었다. 아무도 나의 부족함에 마음 써주지 않을 때 기댈 수 있는 건 자비한 신의 손길이었다. 절대자를 잘 아는 것이 신앙의 거의 모든 것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다. 내가 태초에 우주를 만드신 신의 모습을 따라 만들어진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나의 삶이 사랑으로 허락하신 선물과 같은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의 궁극의 커다란 조각을 찾아낸 것이었다. 감사하고 충만한 시간이 흘렀다. 매일 미사를 가고, 매일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기도하는 생활을 했다. 나라는 사람이 사랑받는 존재이며 그분은 나의 기도를 듣고 계시다는 것을 나는 믿는다. 한데도 나는 다시 커다란 조각을 떠나야할 것만 같았다.거대한 우주의 질서 안에 절로 편입되는 것은 미흡한 무엇이 있었다. 나는 아직도 독자적으로 온전한 조각이 아니었고 끝없이 청하는 기도를 드리는 나약한 존재라는 사실이 스스로를 지치게 했다. 나에 대한 실존의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는 벼랑에 서 있었던 것 같다. 그해 여름 카뮈의 <이방인>을 읽으며 지독히 외로운 인간의 실존에 눈물이 났다. 처절하게 자신의 존재를 묻는 주인공에 감동하며 나는 신의 세계에 함께 하면서도 당당한 나의 자리를 갖겠다는 꿈을 꾸게 되었다. 나를 창조하신 절대자에게조차 바로 선 존재이고 싶다는 열망이 올라 왔다.
극한의 상황까지 가서 나를 조각조각 부술 수 있었던 기회가 온 것은 은혜로운 일이었다. 오랫동안 나는 줄곧 남편이, 환경이 바뀌기를 바라며 두려움에 떨고 나를 불신한 채 머물러 있었다. 시도했던 일들의 결과도 항상 불만족스러웠고 어떤 불행한 운명의 수레바퀴가 나를 계속 맴돌게 하는 것처럼 여겨졌다. 그런 모양새에 넌덜머리가 났다. 더 이상 이렇게 살 수는 없다고 생각한 어느날 나는 분연히 밖으로 향했다. 나를 직시하고 나의 진정한 모습을 확인하기 위해 쾅섬으로 향한 것이었다. 내가 찾아간 쾅섬은 수녀원 주방이었다. 제대로 김장 한번 담가본 적 없는 나로서는 난생 처음 육체적 노동을 하게 된 것이었다.
나를 상담해주셨던 수녀님의 소개로 일년 동안 수녀원의 주방에서 일하게 되었다. 사실 육체노동이 나의 자아성취와 밀접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고, 육체노동을 업으로 하는 것은 자기학대가 될 수도 있다는 솔직한 생각도 들었다. 나는 나를 알기 위한 책을 읽고 싶었고 글을 쓰고 싶다는 걸 깨달았다. 한편으로는 많은 번뇌로 가득했던 머리속이 맑아지고 마음이 평안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런 일까지 한다면 다른 일도 자신이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누군가에 의지하거나 청하는 기도를 하지 않고 나를 믿고 나아갈 수 있을거라는 희망이 몽글몽글 올라오는 걸 느꼈다. 8시간 주방일을 하고 돌아온 저녁시간에 나는 나를 제대로 알고 싶다는 열망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제대로 책을 잘 읽기까지는 육체노동으로 생기는 근력처럼 책 읽는 능력이 생겨날 시간이 필요했다. 시나브로 마음챙김에 관한 책을 읽고 나 자신을 성찰하는 글을 썼던 시간을 거치며 나는 비로소 바로서기 시작했다.
내가 당당함을 찾게 되자 주변의 사람들도 다르게 와 닿았던 것 같다. 비교하고 주눅든 마음이 걷히고 나니 오히려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려는 마음과 미련도 없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지극히 인간적인 감정들이 크게 의미가 없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때부터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이 3년이 넘어가며 나는 힘겨운 여행에서 무사히 귀환했을 뿐아니라 나를 찾았노라고 담담히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그후 작은 조각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자신을 자각하고 자신에게 당당함을 얻게 된 그에게도 삶의 문제들은 끊임없이 찾아왔을 것이다. 때론 자신의 작은 모습이 다시 싫어지기도 했을 것이고, 때론 온전한 자신이라지만 너무 부족하고 한계가 많은 것을 절감했을지도 모른다. 또 때론 외로운 마음에 의지하고 싶은 친구가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지금 내가 느끼는 스스로에 대한 불만처럼 말이다. 하지만 작은 조각은 자신을 넘어선 작은 영웅이자 자신의 에고에 매몰되지 않은 존재이기에 그 방황은 짧지 않았을까?
나에게 구원자가 필요없다고 말한다해도 내 안에 힘이 없다면 스스로를 구원할 원동력은 부족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를 불만스럽게 만나게 되는 것이다. 평화주의자이고 순수주의자인 나로서는 세상은 완벽한 모양새로 굴러가고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그렇기에 무언가를 크게 도모하려 하지 않고 순리대로 되기를 기다리며 내 그릇을 키우고자 했다. 하지만 최근에 내가 너무 수동적인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면서 내 안의 전사를 살려야겠다는 마음이 먹어진다. 이젠 나의 그릇도 차고 있으니 적극적으로 나를 외치고 싶다는 욕심이 든다. 작은 조각이 온전한 조각이었듯이 나도 온전한 나이다. 어쩌면 이미 온전한 존재인 나를 불완전하게 대하고 있는지 모른다. 영웅은 무사귀환했기에 새로운 세상 만들기는 이제 시작되어야 한다는 당위성을 되새기게 된다. 스스로에게 힘을 내어 나아가기를 응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