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에 어디선가 들은 이야기이다. 세 사람이 죽어서 하늘에 갔는데 천사가 마지막으로 각각 전화 1통을 할 기회를 주었다고 한다. 앞에 두 사람은 각각 사랑하는 가족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마지막 한 사람은 직장 상사에게 전화해서 업무 인계를 했다고 한다. 그 마지막 사람이 한국인이었다나 뭐라나... 당시에는 웃고 말았는데 한국 밖에서 10년 정도 일을 해보니 그 이야기가 새삼 공감이 간다. 나도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인 것인지, 아니면 일 중독이었던 아버지를 보며 자란 탓인지... 일을 누가 강제하지 않아도 공부보다 훨씬 열심히 해왔다.
휴가는 누구에게나 소중하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는 말도 있듯이... 일에서 벗어나 온전히 쉬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꼭 일을 완전히 안 해야 쉬는 것일까?
나의 경우는 휴가 중에도 이른 새벽이나 늦은 밤에 혼자 깨어있을 경우는 잠시 회사 메일을 확인한다. 대충 밀린 메일을 훑어서 꼭 지금 답해야 할 것들 (휴가 전에 처리해야 할 업무들은 다 처리해 두었으므로 긴급한 극히 드문 사안이 아니라면 이런 건들은 많지 않다)과 휴가 후 돌아가서 확인할 것들, 그리고 그냥 읽어만 두면 되는 메일을 분류하고 그에 맞게 정리를 해둔다.
이를 위해 투자하는 시간은 길어야 1시간 남짓이지만, 휴가 후 업무에 복귀했을 때 미치는 효과는 1시간보다 훨씬 값지다. 이렇게 함으로써, 나는 휴가에서 돌아가 밀린 업무에 허우적거리지 않고 일상에 쉽게 적응할 수 있게 된다. 게다가 휴가 중 하려던 것들에 지장을 주지 않았으며 가족과의 시간을 방해받지도 않았다. 더구나 이렇게 휴가 중에도 반드시 필요한 경우에는 연락이 되고, 급한 건들은 나로 인해 정체가 되지 않게 한다는 것을 보여주면, 이를 통해서 상사나 동료로부터 얻게 되는 신뢰는 내가 투자한 1시간에 비할 바가 아니다. 특히나 해외로 휴가를 간다면, 이를 핑계로 여행 중 업무용 전화기의 해외로밍을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은 덤!
한국 밖에서 직장생활을 한 지난 10년 동안 휴가 중에 연락이 되는 비한국인 동료를 본 적이 없다. 정말 완벽하게 잠수를 탄다. 휴가는 당연히 직장인이 누려야 할 권리이고 그들이 완벽하게 잠수를 타는 것을 뭐라고 할 생각은 없다. 당연한 권리이고 그들의 선택이니까.
휴가 중에도 일 생각을 계속하거나 일에 얽매이는 것은 일 중독이지만, 퇴사가 아닌 한 어느 정도의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서 휴가 후의 일상을 수월하게 만들 수 있다면, 그 또한 합리적인 투자라 말하고 싶을 뿐이다.
나는 가족이 모두 다른 나라에 있으므로 늘 휴가지가 해외이고, 그렇다 보니 시차로 인해 현지의 이른 새벽이나 늦은 밤에 깨게 되는 시간을 활용하여 업무를 처리한다. 어차피 길어야 몇 주인 휴가 기간 동안 시차에 적응이 되지도 않지 않는가.
짧은 휴가 동안만이라도 온전히 일에서 벗어나고 싶고, 절대 회사 메일은 쳐다도 보고 싶지 않고, 그래야만 휴가를 즐긴 것 같은 기분이 든다면, 물론 그것도 좋은 선택이다. 20년 직장생활 중 해고되어서 쉬는 동안이 아니고서는 완전하게 일에서 잠수를 탄 적은 없어서 그 기분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잠깐 메일을 확인하는 정도의 신경도 쓰고 싶지 않을 정도라면.... 다른 일을 찾아봐도 좋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