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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시 Nov 21. 2023

기계생명의 신비를 찾아

김보영. 『종의 기원담』. 아작(2023)

  "이-바"

  지잉- 지잉- 한 쪽씩 움직이는 눈과 섬세함이 떨어지는 팔, 모래 먼지를 날리며 행성을 달리는 월-E는 픽사에서 가장 사랑받는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이다. 쓰레기 더미에 묻혀 황폐화된 지구에 남겨진 이 청소 로봇은 아름다운 것들을 수집하고, 살아있는 것을 아끼며 사랑한다. 아마도 처음 갖게 된 로봇 친구 이브를 향한 우정과 헌신은 우리의 눈시울을 적시며 이 '인간적인' 로봇에 흠뻑 빠져들게 했다. 아, 인간적인 로봇이라니. 불가능하지만 멋지겠는걸?



  '인간적인' 로봇-인간을 닮은 로봇? 인간적인 로봇이란 무엇이지? 인간적이지 않은 건 뭐지? 뫼비우스의 띠에 갇힌 이들에게 김보영 작가의 신간 『종의 기원담』을 강력 추천한다. 총 3편의 단편이 실린 연작소설집으로 2000년에 집필을 시작하여 2005년에 집필을 마친 첫 번째 단편 '종의 기원담'에서 출발하여 같은 해에 집필한 '종의 기원담: 그 후에 있었을지도 모르는 이야기' 그리고 올해 새롭게 완성한 '종의 기원담: 있을 법하지 않은 이야기'까지 시간 순서대로 전개되는 장편같은 단편들의 모음이다. '인간'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인간이 보기에 그 누구보다 인간같은 로봇들의 이야기 『종의 기원담』은 다리를 넓게 벌리고 허리를 한껏 숙여 세상을 거꾸로 뒤집어 바라보는 듯한 작가의 시선이 무척이나 흥미롭다. 


  "'창조론'이라고, 케이!" 

  과학이라는 게 뭔지는 아는거냐, 유사과학도 되지 않는 헛소리같은 '창조론'을 거론하다니! 그것도 과학을 전공하는 네가! 라는 듯 21모델 이반은 1029모델인 케이 히스티온에게 비웃음과 질타를 날린다. 공장에서 태어나는 기계들이 누군가로부터 창조되었다니, 그렇다면 기계의 자유의지를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생물의 필수 조건은 다음과 같다. 자신의 의지가 있고, 에너지대사(주로 전기E), 생명 활동의 기본 매체인 칩을 소유하는 것. 그렇기에 기계는 생물이다. '유기물도 생물이라는 철학'이라니 웃지 않고는 못배길 노릇이다. "만약 변화가 생명의 증거라면, 모든 로봇은 무생물이 되겠군.(71쪽)"  


신은 우리를 사랑하시는가? 
우리의 생은 신이 프로그램하셨는가, 아니면 우리의 자유의지인가. 신은 살아 계신가, 아니면 죽었는가? 우리의 전자회로 속을 떠다니는 영혼은 우리가 폐기된 뒤에 어디로 갈까. 우리에게 마련된 낙원이 정말로 있을까? 죽은 수많은 로봇은, 저승에서 다시 살고는 있을까? 아니, 우리에게 영혼이 있기는 할까?


  사이비종교와 같은 유기생물학 분야에서 자신의 옛 버려진 논문이 시발점이었다고 하면 너무 설정과다이지 않을까. 세실의 설득에 못이겨 유기생물학 연구소에 가고, 교수님을 만났던 케이 히스티온은 연구소에서 보게 된 유기생물의 신비에 사로잡혀 눌러앉게 된다. 특정 환경에서 유기물을 분해하고 합성함으로써 성장하는 유기물의 생장 과정을 촉진시키며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세실의 신내림을 받은 듯한 꿈을 바탕으로 로봇을 닮은 유기생물을 만들어보고 싶어하며 첫 번째 단편 '종의 기원담'이 끝난다. 그리고 두 번째 단편 '종의 기원담: 그 후에 있었을지도 모르는 이야기'의 시작은 신에게 묻는 물음이다. 로봇의 영혼과 사후세계에 대한 궁금증은 인간인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사고의 흐름이다. 


  어쩌면 인간은 옛날에도 존재했을지 모른다. 우리는 고대에 살았던 유기생물을 토대로 지금의 유기생물을 만들었으니까. 설령 인간이 아니었다고 해도, 먼 옛날 로봇을 지배한 생물이 있었을지 모른다. 고대의 신들, 아마 그들은 '공장'조차 지배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면 왜 그들은 내 존재를 허락했을까? 나 같은 로봇은 아예 만들지 않도록 명령하면 되었을 텐데. 


  신의 진리에 도달하고자 했던 이들은 어떤 결말을 맞이할까. 영혼을 갈구하던 이들은 어디에서 그 답을 찾았을까. 케이 히스티온은 '로봇을 닮은 유기생물'을 만들고자 했고, 케이가 떠난 칼스트롭 연구소에서는 결국 진리가 완성된다. 진리, 신화 속 존재의 이름을 딴 '인간'을 마주하는 모든 로봇들은 그저 인간만을 위해, 인간만을 추구하며 자신을 내던진다. 케이 역시 인간을 마주하자마자 숭배하고 싶은 격렬한 욕망에 휩싸임과 동시에 위험을 알리는 경보가 시끄럽다. 도저히 이해할 길 없는 모순적인 직감에 휩싸인 케이는 결국 로봇의 안전을 위해 인간을 죽이기로 한다. 진화의 측면에서 도저히 쓸모를 모르겠던 얇고 날카로운 금속판이 그의 무기가 되어. 


  인간, 그것은 맹목적인 복종을 일으켜 로봇 종 전체를 위험에 빠트릴 수 있다. 이성적인 판단을 마친 케이는 그야말로 머리에 힘주고 인간을 향한 본능을 억누르고 살육을 시작한다. 인간이라는 유기생물의 씨앗까지 말릴 셈이다. 완벽하게 안전하고 평화로웠던 이 세계를 지키기 위해서. 이 세상을 뒤흔드는 저 미지의 존재.



  하지만 부디 이야기를 자신에게 익숙한 세상에 맞추기 위해, 모든 것을 은유로 보며 눈에 보이는 단어를 다른 단어로 치환하려 애쓰지는 말기 바란다. 단어는 눈에 보이는 단어 그대로의 뜻이다.
  이것은 결국 로봇의 이야기다. 무기 생명에 대한 내 개인적인 헌사며, 곧이곧대로 기계생명을 향한 찬가다. 사물에 깃든 생명에 바치는 경애다. (작가의 말 中)

  작가가 의도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예상할 수 있는 지점이었나 보다. 끊임없이 단어를 치환해가며 해석하려던 치열한 시도가 무색하게 작가는 단언한다. 단어는 눈에 보이는 단어 그대로의 뜻이라고. 그래, 있지도 않은 뜻을 해석하려고 골머리를 싸니 매듭이 꼬이고 꼬여 풀리지 않지. 눈앞에 펼쳐진 경치의 의미를 해석하는 자가 어디 있겠어, 그저 바라보고 느끼고 새기는 것인데. 

  그들에게 칭찬일 수도 모욕일 수도 있는 말이지만, 너무도 인간적인 로봇들은 '불쾌한 골짜기'처럼 우리를 불편하게 한다. 인간적인 면들은 인간적이기에 완벽할 수 없다. 좋지 않은 것들이 더 많고, 그렇기에 외면하거나 부정하고 싶어진다. 그럼에도 '인간' 그 존재로부터 도망칠 수도 없다. 자연 역시 태초의 존재라는 이유만으로 완벽한 기준이 될 수는 없다. 그대로 존재할 뿐이다. 그 안의 모든 생명들 역시 그저 존재할 뿐이다. 존재한다는 것은 그저 주어진대로 놓여진 것이 아니다. 살아남기 위한 맹렬한 시도의 연속이다. 그 세찬 불길 앞에 감히 누가 가치나 효용 따위를 잴 수 있을까. 이 땅 위에 자유로운 것은 없다.  

  

  살면서 나의 불편함이라는 이유로 너무도 쉽게 생명을 치워오진 않았는지 생각한다. 그리고 존재의 이유랍시고 살아가는 행위 그 자체에 집중하지 못한 건 아니었는지 돌아보게 된다. SF라기엔 다소 아쉬운 점들이 많지만, 『종의 기원담』은 우리가 지키고, 또 나아가고 싶어하는 세상이 무엇인지 반문하게 하는 삶을 관통하는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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