앉아서 먹기
두어번 똑같은 연습을 했다. 앉기가 그렇게 복잡하고 어려운 일인 줄 몰랐다. 그리고 몸이 그렇게까지 바보가 되어 있을 줄은 몰랐다. 하나하나를 다시 처음부터 배워야 한다니 막막하기도 하고 내 몸에 대해 배신감이 들었다.
내가 휠체어에 앉으려면 여러 사람이 필요했다. 지난번 시행착오를 기억하면서 4명의 간호사들은 먼저 역할을 정했다. 내가 침대에 앉아있으면 누군가는 나를 안아서 들어올리고, 또 다른 사람은 내 오줌줄과 링겔줄이 팽팽해지지 않도록 느슨하게 잡아주고, 누구는 내 몸이 들어올려질때 바지를 잡아 같이 위로 올려주기로. 그리고 누군가는 휠체어가 뒤로 밀려가지 않도록 단단히 잡아주기로 했다. 내 가슴에 붙인 모니터 스티커들은 잠시 뗐다.
먼저 내가 90도보다 쉬운 70도정도에서 잘 버티면. 내 등과 골반을 붙잡고 왼쪽방향으로 빙그르르 돌려줬다. 그 다음 간호사가 두 다리를 들어서 침대 바깥에 걸쳐주었다. 나는 의자에 앉아 있는 자세에 적응이 될 때까지 잠시 버텼다. 건강한 사람한테는 아무것도 아니겠지만 나한테는 이 자세마저 버티기 어려운 자세였다. 침대 밖으로 내려간 다리는 무겁고 금새 퉁퉁 부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외관상 근육이 빠져 앙상했다. 오랜 시간 다리근육을 과하게 사용한 것같이 뻐근했다.
이제 나를 들어올려줄 사람한테 내 상반신을 내맡겼다.
하나 둘 셋!
내 몸이 붕 떴다. 주변이 일제히 움직이고 어지러웠다. 그런데 내 눈에 보이는 상황과 내 느낌은 달랐다.
내 몸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고 한 자리에 있는 것 같았다.
간호사들이 서로 합을 맞춰갔다.
"여기여기여기!"
"괜찮아요! 저 지금 잡고 있어요!"
"줄 조심 줄 조심!"
"발발발"
누구 하나라도 내 몸을 놓치면 대형 사고였다.
나는 내 몸이 어디쯤 있는지도 전혀 느끼지 못했다. 그냥 높이 떠있다고 어림짐작했다.
털썩
질끈 감았던 눈을 뜨니 휠체어에 내 몸이 내리꽂혔다. 나를 들어옮기던 사람은 기진맥진.
아마 내 몸이 49kg의 흙덩이와 같았을 것이다.
휠체어에 앉아서 그동안 침대 밖에서 둘러본 적 없는 내 침대 주변, 병실 입구를 바라봤다. 복도쪽 창문풍경이 보였다. 빌딩들. 노을이 끝나고 하늘빛이 어둑어둑해지고. 고개를 돌리면 내 양 옆에 두 할머니를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휠체어에 앉아서 침대 위에 누운 모습을 보니 할머니들은 의외로 키가 컸다.
나는 그 자세로 10분을 넘기기 어려웠지만 좀더 버티려고 했다. 하지만 참기 힘든 멀미가 시작되는 바람에 20분만에 침대로 다시 옮겨졌다.
그 다음에는 침대에 오래 앉아있기 연습을 한 덕분에 45분정도 휠체어에 머물 수 있게 되었다. 시간을 그만큼 늘렸어도 멀미가 줄어들진 않았다. 가만히 있어도 움직이는 차를 탄 것처럼 멀미가 났다.
침대로 돌아온 나는 누워서 멀미가 가라앉기를 한참동안 기다렸다가 잠이 들었다. 항상 연습을 하고 나면 체력이 모자라서 기진맥진해졌다. 내 몸은 100세 노인의 몸 같았다.
힘들지만 그래도 휠체어에 앉을 수 있게 됐다.
연하검사는 영상촬영실에서 이루어졌다. 사람의 몸 속을 실시간으로 촬영하면서 음식물이 잘 삼켜지는지 검사하는 곳이었다. 내 순서가 되려면 조금 기다려야했다. 앞에 한 할머니는 검사를 받고 있었고 다른 할머니는 도중에 포기했다.
내 이름이 호명돼서 들어가니 흰 가운을 입은 사람들이 커다란 흑백 스크린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스크린 아래에는 하얀 음식들이 대량으로 준비되어 있었다. 흰 쌀밥, 흰 죽, 하얀 요구르트. 위에는 새하얀 조영제 가루가 뿌려져있었다. 병원식당에서 준비했는지 병원 밥 뚜껑들에 가지런히 담겨져 있었다.
새 비닐장갑으로 바꿔 낀 의사 한 명이 내 입에 흰 쌀밥을 반 숟갈만 떠 먹였다. 오랜만에 음식을 입으로 먹게 된 나는 검사에 따로 집중 할 필요가 없었다. 검사용 밥을 맛있게 씹어 삼켰다. 이건 난이도 하에 해당했다.
다음 난이도 중으로 넘어가 흰 죽을 또 반만 떠먹였다. 후룹후룹. 패스. 마지막 음식 요구르트도 먹었다. 밥과 죽보다 어려울까봐 긴장됐다. 입을 점잖게 다물고 삼키면 사레가 들것 같았다. 쩝쩝쩝 소리를 내면서 입안에 흥건히 고이는 요구르트도 목 뒤로 꿀떡 삼켰다. 그리고 나는 병실로 돌아가 결과를 기다렸다.
검사결과가 나오자마자 나는 밥상을 받았다. 첫 식사는 죽. 그리고 점점 일상적이고 평범한 메뉴로 식사를 할 수 있었다. 그새 입맛이 변했는지 고기반찬보다 김치가 더 땡겼다.
대체로 싱거웠지만 맛있었다. 배추김치, 깍두기, 오이김치…
식사시간은 오래걸렸지만 아무리 느려도 괜찮았다. 누가 빨리 먹으라고 재촉하지도 않았다. 처음엔 숟가락 잡는 일이 잘 되지 않아 이틀정도 도움을 받았다. 핸드폰 사용 덕분인지 팔과 손가락 움직임이 눈에 띄게 돌아왔다. 숟가락 끝이 덜덜덜 떨리는 바람에 얼마 뜨지도 못한 국물을 뚝뚝뚝 식판 아래로 흘렸다. 멸치, 파프리카 조각을 집고 싶은데 젓가락은 좀더 시간이 필요했다.
팔이 아직 의지대로 정확히 움직이지는 못했지만 어느날 젓가락도 그럴 듯하게 움켜쥘 수 있게되었다. 왼 손으로 젓가락을 오른 손가락에 한 짝씩 끼워넣어서 사용했다. 숟가락만으로는 답답해서 나도 모르게 젓가락을 집어들었는데 그걸 의사가 발견했다. 먼저 반찬 중 콩나물 집기 그다음 묵을 조심스럽게 집어들기. 양은 적었지만 그것도 괜찮았다. 또 하나의 좋은 징조였다.
회진을 할 때마다 의사는 꼭 감각 테스트를 했다. 눈을 감고 의사가 어느 발가락을 접었는지 알아맞추는 것. 왼쪽은 점수가 좋았는데 오른쪽은 빵점이었다. 나중에 후유증이 많이 남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하며 의사가 걱정했다. 그러면서 계속 오른쪽 발에 신호를 주라고 했다. 엄지발가락을 움직이는 상상을 자꾸만 해주면 좋아질 거라고. 그래도 준중환자실에 들어온지 얼마 안됐을 때 내 오른 다리가 자꾸 침대 밖으로 떨어진 줄 모르고 내놓고 있었던 때보다 더 좋아진 건 확실했다. 무릎을 세울 수도 있고 종아리도 조금 들어올릴 정도가 됐으니까. 이제 열개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는 운동을 하면서 발의 마비풀림이 시작되기를 기다려야했다.
마지막 준중환자실 간호사들과 인사를 나눴다. 나에게 한겨울 눈덩이를 보여준 고마운 인연도 그 자리에 있었다. 기분이 홀가분했다. 몸의 모든 줄을 떼어냈고 목소리도 되찾아서 나왔다. 비록 가족면회가 철저히 통제됐지만 일반병실로 가는 길에 지나가는 복도에서 겨우겨우 면회를 했다. 엄마 아빠가 움직이는 침대를 따라오며 이런 저런 말을 걸었다. 내가 들어갈 일반병실을 확인도 하고 그곳에서 대기하던 내 간병인도 만났다. 지난 면회때보다 다들 밝은 표정이였다.
(*첫화부터 이번 화까지는 기억을 떠올리며 지난 경험들을 정리했고
다음화부터는 마비가 덜 풀린 손으로 직접 기록한 병원일지의 글과 그림을 공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