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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이 Seoy Oct 22. 2021

[ 6-1 ] 먹고 말하기

석션을 졸업하다

석션



가래가 점점 차오르면 어김없이 콜록콜록. 에헴-!을 할 수 없는 나는 목에 난 구멍으로 간호사들이 석션을 해줘야했다. 목 구멍으로 부글부글 찰랑찰랑 가득찬 가래가 넘치려고 한다. 석션을 요청하고 간신히 가래를 제거하면 비로소 숨이 편안해진다. 가래로 숨이 막히면 정신이 아득해졌다. 이게 죽음의 시작인가보다. 가래가 다시 차오르기 시작하는 것이 느껴지면 석션요청을 할 마음의 준비를 한다. 간호사는 늘 바쁘다. 내가 불편하더라도 그냥 불편하면 안되고 곧 죽을 것같을때 그때보다 좀더 참고 버티다가 불러야 한다. 숨이 간당간당. 가래는 찰랑찰랑... 간호사가 뛰어와서 흡입 호스에 석션빨대를 연결, 석션 버튼을 누른다. 솩- 공기가 빨려들어가는 소리가 목구멍으로 들어왔다. 츄륵츄륵 츅츅 숨길을 막았던 가래가 석션빨대로 빨려들어갔다.


가래가 찰랑찰랑해질 때마다 석션을 야무지게 받았다. 그때 가래는 잠시 완벽하게 없어졌다. 간호사들은 다른 업무들이 너무 많아서 석션을 조금씩 자주 해 줄 수 없었다. 한 번에 제대로 해주고 갔다. 하지만 가래가 생기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내 목에는 가래가 금방금방 차올랐다.


그렇게 중환자실에서 가래를 완전히 없애는 과정에서 나도 간호사도 모르는 사이에 내 목 안쪽 생살이 뜯겨 나가고 있었다. 가래를 남김없이 빼내려고 석션을 꼼꼼히 하다보면 가래가 없는 자리에도 석션빨대가 닿으면서 생체기가 난 것 같다. 처음엔 작았던 생체기가 매일 조금씩 뜯기면서 상처가 깊어졌다고 한다. (이비인후과 협진)


중환자실에서 누적된 상처 때문에 준중환자실에 와서는 붉은 색 가래가 나왔다. 준중환자실에서 회진을 하던 의사 선생님이 “부디 젠틀하게” 석션을 하라고 직접 지시를 했다. 그 뒤로 가래는 주홍색에서 핑크로 변하면서 점점 옅어지고 투명해졌다. 마지막으로 피딱지 가루들이 조금 나오더니 원래대로 맑은 가래색이 나왔다.



마개덮고 목소리 내기



어느 날 아침 살짝 경사진 침대에 비스듬한 자세로 누워있는 나에게 간호사가 파란 단추 같은 것을 하나 보여주며 들어왔다. “이걸로 말하기 연습을 할 거예요.” 신기술인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그게 뭔데요?’ “목구멍을 막아주면 목소리를 쓸 수 있어요.” 하지만 나는 아직도 내 목에 구멍이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아무튼 그 구멍으로 소리가 새어 나와 말을 할 수 없었구나. 목관을 하기 전 입으로 호흡기를 넣었을 때는 호스가 성대를 누르고 있었다는 말을 들은 적 있었다.


그런데 마개를 끼우면 숨이 가빴다. 그런데 이게 내 예전의 상태였다고? 나는 이미 구멍이 난 목에 적응이 되어 버린 듯했다. 말하기 연습. 예상과 많이 달랐다. 자가호흡이 되면 숨 쉬기 문제는 끝난 줄 알았는데. 목소리를 내려면 숨을 그저 가만히 쉬기만 해서는 안되고 말도 하고 숨을 잘 쉬어야 했다. 말하기 연습을 위해 마개를 끼우고 나면 신경 쓸 일이 많아 정신이 없었다.


자, 막습니다.


나는 숨을 최대한 빼고 막을 준비를 한다. 하나 둘 셋… 딸각… 간호사의 손에 들렸던 단추는 내 목에 꽂혔고 나는 힘껏 숨을 마신다. 항상 열려있던 목구멍을 막으니 이제 숨을 쉬려면 온 몸에 힘을 단단히 주고 호흡을 해야만 비로소 가능해졌다. 그러니까 매 호흡이 불편했다. 말하는 것도 금방 지쳤다. 점차 시간을 늘리며 잠들었던 근육을 하나 둘 깨우듯 연습을 이어갔다. 처음엔 맛보기로 10분. 30분. 1시간. 2시간. 힘들게 반나절. 반나절을 버티는 일은 너무 힘들어서 내 의지의 한계를 시험하는 것 같았다. 그냥 포기하고 싶어졌다. 너무 힘들어서 예전 상태로 멈추고 싶다는 생각… 그러다가 병원에 오기 전 내 일상을 떠올렸다. 병원을 모르던 삶. 모든 걸 스스로 하던 삶. 걷기와 숨쉬기가 단 한 번도 중단된 적이 없어서 그런 기본적인 행동들에 의심하지 않던 일상생활. 그런데 지금 내가 이러고 있다. 숨 쉬기가 왜 이렇게 힘이 들까. 폐를 부풀리는 데에는 엄청난 힘이 필요하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처음엔 작고 약한 힘으로. 나중엔 내가 억지로 만든 부자연스러운 호흡의 리듬이 계속 유지될 수있었고. 몸이 기억을 되살리는지 가벼운 두통, 가쁜 숨 등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점차 안정을 되찾고 긴 시간을 버틸 수 있게 되었다.



봉합수술



마지막으로 해결할 문제는 가래였다. 내 힘으로 “콜록” 소리를 내며 가래를 뱉던 지 삼켜서 제거를 해야 안전한데 그러질 못했다. 한번 가래가 생겨서 숨소리마다 가래 끓는 소리가 드렁드렁 거리면 그때부터 온 힘을 다해 가래 내리는 소리를 냈다. “콜록 콜록 엣헴 으흠 음! 으음!” 그러다 겨우 내리면 다음 새로운 가래가 또 생겼다. 그래서 가래를 내리는 일이 오래 걸렸고 끝나지 않았다. 마침 스스로 체위변경이 가능해 좌우로 몸을 왔다갔다 움직였다. 가래를 내리기 위해 좌로 돌아눕고 우로 또 돌아누워서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고 뒤집고 했다.


이 시기에 회진의 주요 내용은 목구멍을 얼마나 오래 막고 버텼는가였다. 결과에 따라 분위기가 좋아졌다가 나빠졌다 했다. 그러다가 담당의사가 24시간 성공결과를 보고 수술날짜를 잡았다. 드디어 목구멍을 막는 수술을 받는 것이다.


다른과 전공의가 내 목에 국소마취 후 바느질을 하는 동안 내 얼굴은 초록색 헝겊에 덮여 있었다. 수술이 끝나고 말을 하다가 순간 끔찍한 기분이 들었다. 수술 상처부위로 피가 새어나오진 않나? 말을 해도 괜찮다고 한다. 아, 아... 목소리가 나오기는 했는데 평소 내 목소리가 아니었다. 며칠 소리지르고 나올 법한 쉰 목소리였다.

 

어떻게 꿰맸는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담당간호사가 핸드폰 셀카화면으로 목을 비춰줬다. 목에 지퍼를 달아 놓은 것 같았다. 마취로 감각이 없어진 목을 그대로 잊기로 했다. 만지지만 않으면 괜찮아. 이후에는 수시로 소독치료를 받았다. 상처가 길쭉해서 왼쪽 가장자리 부위가 느리게 아물었는지 이따금 따갑고 신경이 쓰여서 걱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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