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
면회 온 엄마는 나에게 세상과의 연결 끈을 되돌려줬다.
반납했던 내 핸드폰! 그리고 핸드폰 거치대.
나는 핸드폰을 열었다.
카톡 먼저. 가족 톡방에 입장.
그리고 친한 사람들에게 생존을 알리기 시작했다.
답장이 없어서 영문을 모르던
사람들에게 연락을 돌리면서 신나고 또 감격했다.
그렇지만 내 손가락은 내 마음을 잘 따라오지 못했다.
같은 극의 자석끼리 힘을 겨루듯이
핸드폰 액정이 내 손가락을 밀어내고 있었다.
손가락은 허공을 떠도는 것처럼 붕붕 떴다.
마비가 된 손은 목표물로 곧바로 닿지 못 하고
계속 어긋났다.
그러다가 숨이 차서 팔을 내리고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또 천장을 바라봤다.
휴. 어깨가 뻐근하다. 팔을 너무 오래 올리고 있었나.
다시 한번 키보드로 손 끝을 가져간다.
하지만 핸드폰 액정은
여전히 내 손가락을 밀어내고 있었다.
오른손으로 해보고 잘 안되면 왼손으로 다시 해보고.
어쩐 일인지 오른손잡이인데 왼손이 더 잘됐다.
나중에 왼쪽 팔다리의 마비가
대체로 더 빨리 풀리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손가락이 얼얼하고 감각이 먹먹했지만
손에 점점 힘이 생기고 감각이 깨어나면서
잼잼도 가능해졌다.
나는 곧바로 길랑바레부터 검색했다.
팔의 마비 때문에 스크롤을 넘기기가 힘들면
유튜브 영상을 찾아봤다.
병실을 자주 왔다갔다 하는 병원사람들은
내가 길랑바레를 알아보는 중 인걸 알고는 깜짝 놀랐다.
누워서 핸드폰을 쳐다보고 있으면
노는 줄로만 알았던 것이다.
하지만 중환자실에 있을 때 부터
병의 정체가 궁금했었다.
키보드 칠 힘이 조금이라도 남아있으면
계속 관련 글을 찾아 읽었다.
병의 발생 이유부터 대부분이 겪는 공통된 초기 증상
그리고 급성기 진행에 대한 자세한 경험담들.
엄마는 길랑바레 환자 까페에서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나처럼 현재에도 진행중인 환자들, 보호자들이
꾸준히 글을 올렸다.
나는 병원에만 있어서 몰랐던 사실들을
엄마가 알려줬다.
내가 중환자실에서 호흡기를 달고
깊은 잠 속에 빠져 있었을 때
면역 글로불린이라는 주사를
5회씩 2번 투여 받았다는 것.
입에 달던 호흡기를 떼고 목에 삽관을 하기 위해
목에 구멍내는 수술 동의서에 사인을 했다는 것.
가족면회는 주 1회 1명으로 제한되어 있었다는 것.
병원 밖에서 그런 일들이 일어나는 동안
나는 내 침대에서 악몽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었다.
꿈 속에서 보았던 공기그릇, 아기,
난쟁이 스나이퍼, 고기 굽는 가마,
누군가의 죽음, 검정색 키티 고무부츠 등등이
현실에는 없다는 걸 순차적으로 깨달았다.
온 몸이 마비풀림으로 얼얼하고 아프지만
나의 정신은 살아있는 몸으로 서서히 돌아왔다.
나의 병원생활은 거의 지옥이었지만
잊을 만하면 나를 정신적으로 구원해주는 간호사가
반짝 등장하고 사라졌다.
한번은 12월이었나 폭설이 왔었던 날,
간호사는 나에게 눈을 가져와서 보여줬다.
두 손을 모아 조심스럽게 올려놓은 눈은
따뜻한 병원의 온기에 녹고 있었다.
테두리가 푸르스름하고 투명한 빛을 내고 있었다.
한 눈에 봐도 조심스럽게 뭉쳐 놓은
작고 예쁜 한 줌의 눈덩이었다.
준중환자실에서 내 링거, 콧 줄만큼 중요했던 건
바로 핸드폰 거치대였다.
누워서 키보드 치기 편한 위치에 맞춰야
곁에 사람이 없어도
알아서 세상과 소통할 수 있었으니까.
엄마가 신중하게 골라온 핸드폰 거치대는
단단히 고정돼서 좋았지만
내 팔 힘으로는 위치나 각도를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여전히 욕창주의 환자였던 나는 체위변경을 받고 있었다.
그래서 내 몸은 오전에는
등과 골반의 왼쪽이 뜨도록 베개를 받치고 눕는다면
점심 이후에는 오른쪽을 띄우고
이른 저녁에는 다시 왼쪽을…
이런 순서로 몸을 번갈아 띄운다.
거치대도 내 몸 방향에 맞춰서 자리를 자주 바꿨다.
간호사들이 체위변경을 끝내면
병실을 나가기 전에 거치대를 침대 난간에서 풀었다가
반대편 난간에 다시 조여줬다.
그리고 나와 화면이 너무 가깝진 않은 지,
손이 올라가기에 너무 어려운 각도는 아닌지 등등을
고려해서 걸어줬다.
“좀 더 가까이... 좀 더 뒤로”
이대로 3시간을 혼자 지내야 한다.
조금의 불편함이 나중에는 커다란 불편함으로 바뀌면서
결국 바쁜 간호사를 중간에 다시 찾아야 한다.
이런 생각을 하니 그들이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지금
한번에 잘 요청하고 싶었다.
“좀 더 아래로, 이쪽으로 좀 만 기울여서…”
잘 굽어지지 않는 손끝으로 방향을 알리고
방향이 잘 맞으면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방향이 잘 안 맞으면 다시 부탁해야 하는 미안함에
끄덕이진 못하고 배시시 웃어 보였다.
나의 바램을 잘 들어주는 간호사들 뿐만 아니라
나와의 소통이 어려운 간호사들에게도
이제 손이나 고개를 움직여 보이면서
이해시킬 수 있게 되어서
그동안 중환자실에서부터 꽉 막혔던 숨통이 트였다.
하지만 그들은 늘 바빴다.
시간에 쫓기는 날에는
그곳의 모든 환자들의 체위변경을 다 끝낸 다음
다시 내 자리로 돌아와서 해주기도 했다.
중환자실에서는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완전히 고립됐지만
이제 내 바로 앞에는 내 핸드폰이 있었다.
사실 나에게 작고 예쁜 눈덩이를 선물한 간호사는
나중에 말하길 내가 처음 이 병원을 들어왔던
일반병실에서부터 나를 알았다.
무슨 인연인지 내 회복에 중요했던 순간마다
내 담당 간호사가 되었다.
내가 겨우겨우 첫 휠체어 탑승에
성공을 했을 때도 함께 있었다.
그때 하마터면 그 간호사는
나를 도와서 휠체어로 옮기다가
내 몸 밑으로 깔릴 뻔했다.
심지어 일반병실로 이동하는 마지막 날까지
나를 담당했으니 만남과 헤어짐이 딱 맞아 떨어진
감사한 인연이었다.
간호사들이 정신없이 바쁘던 날,
내가 처음으로 거치대를
두 팔로 낑낑대며 방향을 맞추고 있었다.
내 자리를 다시 체크하러 들어온 그 간호사는
장난스런 손 모양을 턱에 대고 끄덕이며 지켜보고 있었다.
이제 팔의 마비가 많이 풀려서 좋아졌군 하는 제스처로.
혼자서도 잘 하는 군.
눈이 마주치자 웃음이 절로 터졌다.
나도 내 부족한 힘으로라도 팔을 쓸 수 있게 되어
기분이 좋았다.
남의 도움없이 할 수 있는 것이 드디어 생겼다.
(다음 이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