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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이 Seoy Oct 22. 2021

[ 4-5 ] 감금증후군

좋은 징조, 감사했습니다

엄청 아픈 마비풀림


마비풀림은 중환자실에서 넘어야  

 하나의 고통의 산이었다.

마비는 시작과 끝 단계에서 몸을 무척 아프게 한다.

사람마다 다 다르지만 병의 진행이 다 끝나고도

참기 힘든 통증으로 후유증이 오래 남을 수도 있다고 한다.


간호사가 내 다리에 손만 갖다댔는데

화들짝 놀랄 정도로 통증이 느껴졌다.

처음엔 상처가 생긴 줄 알고 다리를 쳐다봤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사람 손이 스치기만 해도 너무 아팠다.

감각이 모든 촉감을 통증으로 착각하는 것 같았다.

멍든 느낌, 피부가 까진 느낌, 두드려 맞은 듯한 욱신거림,

간호사가  발목을 살살 잡아도 

세게 잡은 듯한 착각이 들었다.

팔다리 근육은 힘이 빠져서 그런지 더 아팠다.

욕창이 언제 생길지 모르는 위험이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아파도 체위변경을 거를 수 없었다.


간호사들은 두 팀으로 나눠서 각자 역할을 맡았다.

내 등판, 골반 그리고 두 다리를 받쳐들고 있으면

내 몸이 그들의 손바닥을 누르면서 점점 하중이 실렸다.

시간이 지체될수록 참을 수 없을 만큼 아팠다.

이런 증상이 정확히 며칠동안 지속됐는지 모르겠지만

꽤 오래 지속돼서 체위변경 시간이 되면 무서웠다.

마비가 풀리기 시작한 날부터 끝날 때까지

나는 체위변경을 받을 때마다 엉엉 울고

도리질치면서 아파했다.

침착하게 대처하는 간호사들도 있었고

당황스러워서 어쩔 줄 몰라 하던 간호사들도 있었다.


“아우, 아우! 손도 못 대게 하네. 대체 얼마나 아픈거야?”

마비가 풀리고 감각이 되돌아오느라고 아픈가부다.

좋은 징조예요, 좋은 징조!”

“목을 아예 못 만지게 하네. 지금 못 견디게 아파요?”

“좀만 참아요, 금방금방 끝나요. 조금만 있어요.”



이 와중에 내 목에는 아직 얼굴을 들어올릴 힘이 없었다.

좌우로 몸을 번갈아 뒤집는 동안

목이 꺾이고 뺨이 침대에 짓눌리고

눈꺼풀이 볼살에 밀려 자동으로 눈이 감겨버렸다.

속수무책으로 아래 눈꺼풀이 눈 안쪽으로 말려들면서

속눈썹에 눈알이 찔릴 위기도 있었다.


내 엉덩이에 묻은 대변을 꼼꼼하게 닦아주느라

그때마다 내 머리의 무게에

얼굴의 좌우 볼살이 골고루 짓눌리고 있었다.


목구멍에 연결된 플라스틱 호스가

이러저리 움직이면서 목을 찔렀다.

가끔 여건이 받쳐주지 않은 날에는

부족한 인원으로 체위변경을 했다.

목을 찌르고 있는 호스의 각도를 

다른 방향으로 바꿔주거나 

얼굴이 심하게 짓눌리는  

발견해주는 사람이 없던 날도 있었다.


병원에서 환자의 대변은

욕창관리에 앞서 중요하게 대처해야 할 일이었다.

가만히 누워있는 사람의 피부가

대변의 독성에 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욕창의 위험


 

욕창관리의 요점은 수시로 피부에 공기가 닿도록

몸을 들었다놓고 살이 짓무르지 않도록 

청결히 해놓는 것이었다.

하지만 현장에서 직접 체위변경을 받아보니

간호사, 조무사들의 노동력을 갈아넣는 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정해놓은 간격으로 

2-3시간마다 체위변경을 했을 것이다.

최소한으로 정해진 시간간격.

몸을 조금이라도 이리저리 뒤척이는 정도로 

움직일  있거나 

스스로 골반까지 들었다 놓을  있는 

다른 중환자들에 비해 

나는 거의 난이도 상급 A++++++

아니, S급으로 다루기 어려운 중환자였다.

나는 내 머리와 팔조차 꼼짝도 못했으니까.

누군가 내 팔을 침대 어느 위치에 내려놓으면

나는 그 자리에 그 자세로 몇시간을 있어야 한다.

누가 와서 자세를 바꿔주지 않는 한.

아무리 불편하고 어딘가가 배겨도 

조금도 뒤척이지 못했다.

그러다 불편을 넘어서는 고통스러움이 동반되면...

말로 감히 다 표현할 수 없는 감정마저 들었다.


나는 이런 일을 젊어서 겪었지만 노인이었다면 어땠을까?

피부가 노화로 인해 탄력을 잃고 주름이 많아지고

혈액순환까지도 지금같이 원활하지 않을텐데.

2-3시간, 그 사이에 서서히 썩어들어가겠지.


체위변경을 사람의 힘이 아니라

기계의 기술로 받을 수 있기를 기다려봐야겠다.

몸을 2시간 미만의 간격으로 뒤집어주기만해도 

욕창을 방지할  있지만 

사람의 노동으로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현장은 늘 현실적인 문제가 있어서

사람들이 오히려 값비싼 기계의 빈자리를 

채워야 하는 경우도 있는  같다.



외로움



체위변경 시간이 기다려졌다.

씻지 못하니까 몸이 답답했다.

나한테 말을 걸어주는 사람도 없었다.

마음 편히   눈을  곳조차 없는 

중환자실  자리.

양 옆에는 생명유지장치 기계들.

중환자실에서 인간적인 환경을 바라는 건 무리였나보다.

악몽을 꾼 것도 그런 환경 속에서는

도저히 제정신으로 버티기 힘들어

그만 정신줄을 놔버렸기 때문이었으리라.

평소 혼자 지내는 걸 즐겼지만

병원에서는 극심한 외로움에 시달렸다.



다시 마비 이야기로 돌아와서




마비풀림이 시작된 날부터

나는 조금씩 움직였다.

처음엔 어깨. 그다음 팔. 손가락.

회진시간에 내 팔을 들어올려보았다.

나는 기쁜 마음에 팔을 더 높이 들어올렸더니

공중에 둥둥 뜨는 모습이 인형 팔뚝 같았다.

계속 보고 있자니 움직임이 이상해서 다시 내려놨다.

회진 온 의사 앞이었는데 민망했다.

그래도 마비풀림 다음으로 힘이 생겼다는 걸 확인해서

매우 기뻤다!



준중환자실에서 이불덮기 시도



이렇게 힘은 들어갔지만 감각은 아직.

그리고 이불이 무거워서 손에서 이불 자락을 놓쳤다.

 배게를 밀고 당겨서 

 머리에 맞는 모양을 만들  없었다.

마비는 단계적으로 풀렸다.

내 몸에 손이나 물건이 닿을 때마다 무척 아팠다가

그 모든 통증이 한 겹 벗겨진 것처럼 없어졌다.

대신 잠을   없을 정도로 아팠던 통증이 

하반신에 남았다.

 통증도 마비 풀림 증세였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고 나아졌다.

상반신보다 풀리는 시간이 길고 아픈 정도도 더 강했다.

의사 선생님의 추측으로는,

다리의 근육들이 길고 크기 때문에  아플 거라고 했다.

그리고 나중에 다른 환자들의 경우를 종합해보면

그때의 통증은 마비풀림 과정에서

감각이 과민해지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라는 걸 알았다.



고관절 마비풀림 통증



고관절 근육 마비가 풀림과 동시에

허벅지 뼈를 잡아주는 근육에 힘이 없다는 것을 느꼈다.

다리를 벌린  누우면 

 견딜 정도로 아팠던 단계가 있었다.

지나갈 통증이라는 건 짐작했지만

매 2-3시간마다 나는 체위변경 때

 통증 사정을 모르고 

무심하게 대하는 몇몇 간호사들이 생겨서 

내 하반신을 담당하는 사람들을 보고 있다가

다리를 아프게   같으면 오므려 달라고 

물고기처럼 입을 벙끗벙끗 말했다.

(아직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 때였다.)

또 참을 수 없이 아팠는데 내 힘으로 오므릴 수 없었다.

새 기저귀를 채운 직후 다리를 벌려두고

다른 곳에 신경쓰는 의료인에게

‘너무 아프니 다리를 오므려달라’고 알렸다.

가끔 오므려달라는 말을 한번에 못 알아들으면

대화가 꼬이면서  고관절은 

점점  벌어짐과 동시에 고통스러웠다.

그런 최악의 상황을 몇 번 학습하고서

무릎을 모아달라 말을 바꿔서 말하면 

 빨리 이해했다.



입안 마비 풀림



사경을 헤매는 사람처럼 악몽 속을 떠돌다가 

현실로 돌아오곤 했는데

나는 중환자실의 풍경을 어느정도 파악한 후에

현실과 악몽을 구분 지을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 현실이 악몽이고 

악몽을 현실로 오해했던 것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입안 마비 증세도 그 중 하나였다.

나는   고기와  입안 마비가 

전혀 상관이 없음을 알아냈다.

하지만 현실에서도 입안의 촉감은 

여전히 동일하게 이상했기 때문에 

 느낌은 마치 미끄러운 가래가 범벅이 돼서 그렇다고 

판단했었다.

그리고 잇몸이 죄다 저리고 아팠다.

이빨이  썩은 건가 싶을 정도로 

욱신거리고 쿡쿡 찌르는 통증들.

겁이  나는 의사가 왔을  

치과 협진을 하고 싶다고 했다.


이빨이  상한  같다고.

썩은  같다고.


그때까지  이빨들은 사실 방치되고 있기도 했다.

폐렴의 위험이 있어서 

입안에 물을  방울도 넣을  없게 관리됐다.

마침 양치질이 가능한 정도로 머리를 가누고

잠깐 상체를 높이 세울 수 있어서 가글을 하기로 했다.

의사 선생님은 큼직한 형광핑크 가글액을 처방했다.

나의 불안감이 너무 컸기 때문에 

뭐라도 처방을 받아야 했다.

그리고 가글의 효능과는 상관없이

초반에 있었던 미끌거리고 욱신거렸던 통증이 

얼얼함으로 변했다.


가글을 처방받기  

부모님과의 면회를 2-3 하는 동안 

한결같이 입안의 감각이상과 통증을 호소했다.

담당의는 정확한 원인은 몰랐지만 

가글을 구내염 치료제로 처방해준 것이다.

그리고 간호사들의 도움으로 어정쩡하지만

어느정도 자리잡고 앉을  있는 상태에서 

아침 저녁에 양치를 했다.

부모님이 아는 사람들  

치과의사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마비풀림 때문에 그럴 것이라는 예상을 하게 됐는데 

그것이 정답이었다.

가글은 병에 아무런 영향도 없었지만 

 불안함을 잠재우는데 도움이 됐고 

또 없는 구내염을 소독해서 없앤다는 상상을 하면서

양치질 연습도 미리 선행연습을 하게 됐다.

그런 뚜렷한 목표가 생기니 

일석이조로 얼굴마비 재활을 열심히 하게 됐다.



입 안 마비때문에 생긴 오해



 이를 칫솔질을 해주던 의료인에게 

혓바닥을 닦고 싶다고 

중간에 치약이 묻은 칫솔을 한 번 헹궈달라고 부탁을 했다.

헹궈온 의료인은 칫솔을 다시 내 입으로 넣어줬는데

문득 미끄럽게 입안으로 들어온 

칫솔의 상태를 의심하게 됐다.

악몽에서 가래를 뱉지 못하고 

도로 삼키던 장면이 떠올랐고 

 속에서 나를 괴롭히던 간호사가 

바로  간호사였다.

괴롭힘의 방식이 비록  속이었지만 

매우 교묘하고 영악한 방식이었다.


나는 이 간호사가 그래서 이번에 내 입에 넣은 칫솔에도

내가 바닥에 뱉었던 가래를 찍어와 입에 넣은 줄로 믿었다.

순간 나는 악몽의 내용과 연결되는 행동이 나오고 말았다.

우선 화가 치밀었고 다시 확실하게 헹궈오라고 말했다.

그때의 간호사는 내가 그런 악몽을 꾼 줄도 모르고

왜 내가 그런 의심을 하는지 영문을 몰랐다.

하지만 이렇게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임에도 

세면대로  바로 헹궈주니 

내 의심과 분노는 수그러들었고

그렇게 깨끗이 헹군 칫솔이 다시 내 입으로 들어와도

또 똑같이 입안이 가래가 낀 것처럼 미끄러워서 당황했다.

그렇게 불편했던 입에 한동안 시달리다가

통증이 서서히 약해지더니 어느새 정상으로 돌아왔다.

악몽으로  내용들은  가짜인데 

 이리 생생한 기억으로 남을까?



레지던트



“포기하지 말아요. 할 수 있어.”

나의 호흡이 돌아오기를 응원하던 레지던트.

나한테 하는 말인 줄 알고 옆을 돌아봤는데

기계의 모니터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 기계는 내가 얼만큼 숨을 마시고 뱉는지를

산소량과 이산화탄소량 그리고 산소포화도를

측정 중이었다.

그렇게 기계 앞에서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더니

그대로 나갔다.



더더더더더



의사의 지시에 맞춰서 힘을 측정했다.

선생님이 밀면 나도 밀어내고 

잡아 당기면 나도 잡아당겼다.

그렇게 팔과 다리에 힘을 넣으려면 안간힘을 써야했다.

방해를 받는 것처럼 간단하던 동작도 불편하고 어려웠다.

그때마다 나는 포기하고 싶었지만

회진때마다 의사 선생님은 같이 힘을 내주기 위해 

독특한 소리를 냈다.

“한번 들어올려 볼까요? 더더더더더더더더….”

내가 회복된 만큼 최대한의 힘을 끌어 모을 수 때까지

더더더를 멈추려고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소리는 레지던트도 독립적으로 회진할 때

똑같이 따라했다.

“한번 들어올려 볼까요? 더더더더더더더더….”

회진에도 스타일이 있다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

어느 유머러스한 간호사는 성대모사를 했다.

자꾸 따라하니까 웃겼다.



인사



호흡기를 졸업하고 마비가 눈에 띄게 풀리기 시작하면서

중환자실을 나갈 수 있게 됐다.

마지막 날 나를 담당한 간호사는

내가 입 안이 마비풀림으로 얼얼해서

마음고생이 심했을 때도 있었다.

침대가 빠져나갈 시간이 됐다.

나한테 연결된 줄들이 주렁주렁.

침대 크기도 커서 병실을 한 번 빠져나가려면

나가는 길을 미리 치웠다.

간호사들이 하나 둘 주변에 모여

이것저것 밀고 치우고 정리를 했다.

얼굴들을 보니 그동안 고마웠던 사람들이었다.

말로 작별인사같은 걸 해야하는데 목소리는 안나오고...

어울리진 않지만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고마웠습니다. 덕분에 살아났어요.


(다음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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