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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이 Seoy Oct 22. 2021

[ 7-1 ] 다시 일어서다

첫번째 노트기록, 마비가 덜 풀린 손으로 쓰고 그리기.

드디어 일반병실

 

 

입구로 들어서니 아무도 없는 것처럼 조용하다. 나는 공동 세면대 바로 옆자리. 전부 커튼으로 가려져있었지만 소리와 냄새만으로도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를 알 수 있었다.

 

이곳에서는 간병하는 사람들을 여사님이라고 불렀다. 여사님은 부모님으로부터 나의 뚱뚱한 짐을 건네받아서 간병의자 밑에, 침대 아래, 그리고 홀쭉하고 비좁은 수납장에 찔러 넣었다. 그 중에서 대용량의 성인용 기저귀 3종이 가장 부피가 컸다. 나머지 작은 짐들은 세면도구, 로션, 헤어 드라이기, 손 운동 기구 등등. 그리고 엄마가 말했다.

 

“이제 핸드폰 문자도 칠 줄 아니까 노트랑 펜을 갖다줄게.”

 

 

글쓰기 연습



 

주사자국

마비

더러운 머리

근육 빠진 종아리. 허벅지

에어 마사지

혈전주사

외전, 내전

콧줄, 피딩(feeding)

희귀병

정맥(동맥)주사

R.O.M(관절 근육 푸는 운동)

석션

깊은 숨, 편안한 숨

환망(선망증보다 가벼운 꿈꾸는 증세?)

채혈주사

드레싱

산소포화도, 체온체크

모니터

혈당체크



오랜만에 노트와 펜을 마주하니 어색했다. 처음부터 그림을 그리면 괜히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동안 천장만 바라보며 수없이 들려오던 단어들을 글씨로 뱉어냈다. 마비가 덜 풀린 손으로.

그리고 사람냄새가 나는 일반병실 생활을 하면서 새롭게 들리는 단어들을 써봤다.

 

드림커피 드립커피

몽블랑 몽쉘

엑스레이

팔찌

휠체어

붕대

담요

기저귀, 속기저귀

머리감기

손발닦기

신발

삼시세끼-바다편

무화과

사과선물 한 알

햇반

젓가락, 포크

중환자실

스텐리스 쟁반

멸균거즈

빠께쓰 다라이 바가지

딸기

요지

  

 

 


진공상태로 떠있는 커튼




진공상태로 떠있는 커튼 : 높은 허공에 부유하던 내 몸. 발 아래에는 내 그림이 멀리서 보인다.


가끔 일반병실 일지를 쓰다가 중환자실에서 꾸던 악몽이 생생하게 되살아나면 그것들도 글과 그림으로 남겼다. 악몽의 내용을 그릴 때마다 반드시 등장하는 직사각형 냉온풍 기계장치는 여러가지 형태로 변신을 했다.--- 기름진 고기를 굽는 가마, 금속 또는 도자기를 굽는 가마, 방음 엘리베이터, 점자같은 구멍들이 글자모양으로 조립되는 키네틱 영화광고판 등등으로.

 

아래 그림은 그 악몽을 그린 것이다. 커튼 뒤로 날아가는 사람이 있다. 가마에 고기를 넣고 다 구워질 때까지 커튼 뒤로 자리를 옮겨 요리사들의 공간에 머물렀다. 커튼 뒤에는 고기 굽는 사람들이 오래 상주하는 부엌공간이 있었다. 분위기가 음습하고 축축하고 어둡고 음울했다. 반면 고기를 굽는 가마와 레스토랑의 분위기는 하나의 공간 안에 있어서 그런지 고급스러웠다. 어둡고 붉은 갈색의 구리 벽으로 구성된 내부 인테리어가 아직도 생생하다. 무서웠던 것은 인테리어 장식 중 하나는 살아있는 사람이었다. 스스로를 벽에 걸고는 구리 장식물로 변신했다.(?)

 

어느날 꿈에는 기계장치가 유리가마의 여닫이 문으로 나타나기도 했는데 문의 안쪽은 시커멓고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두운 공간이었다. (유리를 녹이는 뜨거운 불이 머무는 곳이지만 항상 불이 꺼져있어서 시꺼먼 공간이었다.) 문을 열고 닫으며 움직일 때마다 헐겁게 매달려있는 문짝의 부직포에는 깨진 유리 조각 및 가루들이 항상 묻어있었다. 그런데 가마 안으로 들어간 여러 사람들이 방심하고 문을 세게 닫다가 그대로 가루들이 튀면서 몸을 크게 다치고 죽는 내용일 때도 있었다.



진공상태로 떠있는 커튼: 커튼 뒤로 날아가는 간호사들 조무사들. 꿈(악몽) 속 내 몸처럼 그들도 떠 있다고 생각했다

 



일반병실에서 그린 중환자실에서의 내 모습 상상화




상상화: 호흡기와 콧줄을 넣은 모습을 따로따로 상상해봤다.

 


중환자실에서 코 밑, 좌우의 기계들을 살펴 본 기억을 토대로 그렸다. 직접 이런 모습을 마주 본 적은 없었다.




 

3.콧줄 안 빼기로 약속하고서 결박을 면한 손

4.한 달만에 물로 머리감기

5.잊을 만 하면 드레싱(*목의 수술상처 소독) 담당 선생님이 오셨다.

6.구멍 막는 수술 이후부터 이틀에 한 번씩 꽤 오래 드레싱 받았다. (*이비인후과에서 꿰맸다.)

7.실밥을 빼서 따갑고 쓰렸다. 목에는 빨간색 가로선이 생겼다. 넓은 하얀 정사각형 모양 방수 반창고를 붙여줬다. (*수술실까지 이동하지 않고 준중환자실에서 수술받았다. 생 초록색 수술용 구멍난 덮개로 얼굴을 덮으니 무서웠다. 목을 마취 주사바늘로 찌를 때 아팠고 그 뒤에 상처봉합 수술은 아프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8.다리가 파스타처럼 허공에서 꿀렁꿀렁 거린다. 힘이 없고 감각도 없는 데 자율신경만 있다. (*그럼 좀비들의 움직임처럼 영혼없이 움직인다. 아래에서 위로 올릴 수 있지만 원하는 방향과 각도대로 바꾸는 게 어려웠다.)

9.항상 누워 있기만 해서 침대 아래가 어떻게 생겼는지 잘 모른다. 매일 20분씩 재활 받으러 가면 시트 통째로 선생님들이 나를 운동 도구 위로 옮겨 주신다. 위험천만하다. 가만히 그들에게 몸을 맡길 수 밖에 없는 나로선 잠깐의 스릴을 즐길 수 밖에 없다. 침대의 바퀴가 밀리면 위험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어찌된 일인지 모르겠지만 밀릴 뻔한 적도 있었다. 그럴 땐 사람들의 온전한 힘으로 옮겨졌다.)




(다음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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