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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이 Seoy Oct 22. 2021

[ 7-2 ] 다시 일어서다

다시 태어난 어른

중환자실에서 있었던 일도 다시 떠오르면 중복되더라도 그냥 적어 뒀다. 계속 하고 싶은 말은 두 번 세 번 반복하기 마련이니까.


1/13 수요일


1.오징어 집 과자 한 봉지를 다 먹고 여사님께 유튜브 사용법을 알려드렸다. 네이버에서 원하시던 의자들을 검색해보기도 했는데 딱 그 제품은 없었다. (검색어:리클라이너)

2.악몽을 꿀 때 나왔던 이 모양의 물건은 중환자실에서 매일 눈만 뜨면 보이는 냉난방 시설이었다. (또는 환기시설)

3.꿈마다 다른 (*여러 기능을 가진 기계가 되었다.)고기 굽는 가마의 철문이거나 엘리베이터가 됐다.


자세하게 꿈의 내용을 적어두기도 했는데 다시 읽어보면 심란하다. 꿈 속에서 나 혼자 비상사태였다. 


잠에서 덜 깼을 때 병원이 움직이는 배라고 생각하고 의사 선생님(다른 분)은 해적들을 치료해주는 사납고 거친 사람이라고 봤다. 그러다가 꿈에서 서서히 잠을 깨면서 하나, 둘 현실로 돌아왔다. 

창 밖의 건물들의 움직임이 없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그때 배(해적선)에 대한 꿈에서 벗어났다. 중환자실 창문들은 이렇게(작은 그림 첨부) 절반을 불투명한 스티커를 붙여서 가려 놓았다. 꿈 속에서는 부상당한 외국인 해적들이 침대에 실려 오기도 하고 휘발유 냄새가 갑작스럽게 진동하기도 했었다. 나는 배의 선원들로 변신한 의사, 간호사 샘들이 휘발유 냄새를 피해 도망치라고 안내했지만 

다리에 힘이 빠져서 침대에 풀썩풀썩 주저앉기만 했다. 그래서 꼼짝없이 휘발유의 그 지독한 냄새를 맡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1/14목요일



내 몸에 원래 열이 많아서 조금만 덥게 입으면 37.5도가 되었다가 금방 38도가 됐다. 당장 열을 내리는 게 중요해서 옷과 이불을 되도록이면 두껍게 걸치지 않도록 했다. 


1.어깨, 겨드랑이에 열이 많이 고였다. 

2.기저귀는 2-3시간마다 교체하며 땀띠를 말리거나 닦았다. 

3.등에는 항상 땀이 났다. 침대시트가 축축할 정도로.


1/15금



마비 부위의 감각레벨을 검사, 일명 전기 자극 검사를 할 것 같다. 저녁에 여사님이 짬짜탕을 사 주셨다. 다른 간병인들한테도 신고식 치르듯 한 턱 쏘셨다. 그런데 짬짜탕 2인분 양이 너무 많아서 짜장을 절반씩 남기고 탕수육하고 짬뽕 국물을 집중 공략했다. 아참, 군만두를 3개 먹었다. 바삭해서 꽤 맛있었다. (병원 식사를 취소하고 먹었다.)



1/16토요일



벌써 1월 중순이 지나고 1월말을 향해 가고 있다. 씨리얼, 고구마, 귤을 점심으로 먹었고 (+사과)다른 것도 먹었지만 기억이 안 난다. 빵은 받아 두었다가 저녁에 반쪽으로 잘라먹었다. 속에 고구마 슈크림이 들어서 부드럽고 달았다. (뚜레쥬르) 매일 병원밥을 먹으니 예전처럼 먹던 것들을 하나씩 찾아 먹고 싶었다.



엄마는 내가 다시 부활했다고 한다. 그리고 진짜로 나는 두번째로 태어난 생명처럼 스스로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는 아기가 됐다. 나의 30년은 어디로? 일반병실에 왔지만 나는 여전히 침대에 누워있기만 했다. 침대 밖은 위험했고 낙상의 위험이 있어 항상 침대난간을 올리고 지냈다. 내 앞에서 의사선생님과 간병인이 완전 진지하게 내 똥 얘기를 하고 있는걸 듣자니 어른의 자아를 가진 아기가 다 알아듣는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잠자코 듣고있는 동안 이 상황이 너무 웃겼다. 병원에서 환자의 배설문제는 생각보다 매우 중요했다.



1/17일요일



오늘도 계떡 같은 대변을 봤다. 여사님은 이런 대변이 처리하기가 편하다며 좋아하셨다. 

나를 만나기 전에 기도를 하셨다고 한다. 힘들지 않은 환자 만나게 해달라는. 나를 만나고 하나님이 응답하셨다고 믿으셨다. 내가 몸이 점점 좋아지고 있었고 의식은 정상이라 말을 해도 또렷이 알아듣는 환자라서. 다른 환자의 간병인들은 우리의 관계를 시샘하고 질투했고 내 침대 앞을 오가며 딱히 분명한 행동은 하지 않았지만 은근히 신경쓰이고 피곤하게 만들었다. 1인실에 가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점심 식사 후에 항상 혈전 주사를 맞았는데 바늘이 뱃살에 꽂히는 순간마다 싫었다. 그래서 주사 맞히러 오시는 모든 간호사들에게 주문을 거는 것처럼 

“안 아프게! 안 아프게 놔주세요. ㅠ”

라고 말한다. 그러면 샘들의 성격에 따라 반응도 대답도 제각각이다. 


“네”

“주사라서 안 아플 수는 없어요” 등등이다. 


주사를 놓고 나면 모든 반응들이 대체로

“어땠어요? 많이 아팠어요?” 였다.


*내 몸의 병 진행상황 : 발을 만지면 아직 나무토막 같다. 손 팔뚝을 많이 사용하면서 물을 마시거나 핸드폰 거치대의 각도를 스스로 조절할 수 있다. 허리는 완전히 풀리지 않았지만 (일으켜서) 앉기, 몸 돌리기를 할 수 있다. 



 

**오늘 밤부터 폭설인가보다. 기온은 영하 3도. 여사님은 진짜 눈이 오는지 확인도 하고 휴게실 티비에서 뭘 틀고 있는지도 슬쩍 보고 오겠다고 하셨다. 

***나는 이곳에서의 일들을 다 기록하지 못하는 것이 너무 아쉬워서 조금 더 무언가를 남기려고 앉아있다. 저녁 8시 밖에 안됐는데 병실에서는 모두 조용하게 잠들 준비하는 분위기다. 방 안의 공기가 사뭇 저녁식사 시간 이전과는 달라졌다. 우리 방에는 의미없는 말을 너무 많이 하고 간호사 샘들의 손이 많이 가는 환자가 한 명이 있었는데 나의 여사님 말에 의하면 그렇게 뜻도 없는 말만 하니까 간병 담당자가 등을 돌리고 누워 버렸다고 한다. 

“이리와”

그럼 간병인은 “왜” 라고 대꾸하면

환자는 거의 항상 “아파” 라고 말한다. 

그들은 단조로운 어조로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간병인은 이런 패턴으로 환자에게 계속 시달리다가 결국 내가 다른병원으로 옮기기 며칠전 일을 그만두었다.



발의 '위치감각'이 돌아오기를



하루는 자칫 발목을 삘 뻔했다. 이미 준중환자실에서 휠체어 타기 연습을 하다가 오른발목을 꺾인 적이 있었는데 꺾인 줄도 모르고 있다가 그날 밤 발목이 심하게 붓는 것을 보고 알았다. 감각이 다 회복이 되는 날까지 무조건 안 다치도록 신경썼다.


발에 마비가 덜 풀렸기 때문에 침대에서 몸 전체를 움직일 때마다 내 발이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했다. 항상 발가락 위치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면서 움직였다. 

1.이불의 깊은 주름에 엄지 발가락이 힘 없이 꺾여 있거나

2.발목이 바깥쪽으로 휘어 있는 모습을 발견하면 무릎을 들어서 다시 발을 올바르게 놓으려고 신경 쓴다. 


(*다음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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