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병실에서 생활하기
마비가 풀린 손으로 글과 그림을 남기기 시작했다.
무엇부터 쓰면 좋을지 몰라 그동안 나 혼자 겪어낸 일들을 하나 둘씩 풀어나갔다.
1/18월요일
1. 연하검사를 받기 위해 휠체어 타기 연습을 했던 게 생각난다. 지금처럼 앉을 수 없을 때라 울면서 타기 연습을 했다.
2. 기립운동 하다가 점심 때 먹은 볶음 우동을 게워내고 말았다. 두꺼운 면발 음식이 나랑 잘 안 맞는 것 같다. 그리고 벨트가 가슴팍을 너무 꽉 조여서 그런 것도 있었다.
1/19화요일
*여사님께 드라마 <미생>을 전도했다. 간식으로 밤을 먹으면서 재미있게 보신다.
**어제 토해서 식사를 죽으로 미리 바꿨다. 흰쌀죽, 닭볶음, 동치미, 콩나물, 어묵, 무국이 나왔다. 흰 쌀죽은 정말 아무런 간이 되어있지 않아서 당황했다. 닭볶음 양념국물을 조금 섞어 먹으니 간이 잘 맞았다. 평소 무는 잘 안 먹는데 동치미에 든 아삭한 무랑 무국에 들어간 부드러운 무채를 다 떠먹었다.
***맞은 편 자리랑 창가 자리의 환자들은 가래 석션을 받는다. 소리가 잘 들린다.
이전 병실이었던 준중환자실에서도 양쪽 할머니 두 분이 간호사들에게 석션을 받았었는데 받을 때마다 질색을 하고 싫어하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석션 호스의 압력이 아팠기 때문에 싫으셨을 것이다. 내 목은 피가 많이 났는데 그게 중환자실에서부터 너무 거친 석션을 오래 받아서였다. 오죽했으면 의사 선생님이 젠틀하게 석션하라는 지시를 따로 했을까. 지금이야 호흡기를 뗀지도 오래됐고 스스로 ‘에흠’ 한번만 소리내면 가래가 시원하게 내려가지만 그때는 매번 가래가 생길 때마다 석션을 받아야 숨을 쉴 수 있었다. 그래서 지금 여기 일반병실 내 자리의 양쪽에 계시는 두 할머니가 석션 하기를 싫어 하시는 것도 공감이 됐다.
****중환자실 때의 일은 여전히 생생히 기억난다. 병실을 옮길수록 감옥 같던 공간으로부터 멀어지는 것 같아서 얼마나 마음이 편안해졌는지 모른다. 준중환자실에서 처음으로 잠 같은 잠을 잤었다. 감옥 같던 곳이었지만 그래서 평소 나도 모르고 있던 생존본능을 발견하기도 했다. 비록 말은 소리내서 못해도 침대 난간을 흔들어서 소리내서 도움을 요청했고 작고 사소한 불편함도 무조건 누군가에게 설명하려고 끈질기게 붙잡고 늘어졌다. 그래서 욕을 먹어도 내 마음은 편안했다. 적어도 소통을 할 수 있어 덜 불안했기 때문이었다.
1. 이때마다 정말이지 간절했다. (철컹 철컹)
2. 입으로 예쁜 소리를 내려고 했다. 어떻게 해도 듣기 싫은 소리지만 처음 보다는 듣기 거북하지 않게. (딱딱)
(1/19화요일 이어서)
중환자실의 밤은 대낮과 똑같다. 너무 시끄럽고 눈부시게 불을 켜놓는다. 잠을 연속해서 며칠동안 잘 수 없어서 수면부족이었다. 도저히 잠들 수 없는 환경인데 수면제를 처방받아서 화가 치밀었다. 역시나 수면제를 먹고도 잠을 못자니까 그제서야 불을 꺼줬다. 아무도 그동안 항의하지 않았던 것에 씁쓸했다.
**내 손톱손질을 해준 간호사는 머리도 시원하게 감겨줘서 내가 좋아했다. 그 간호사는 터프해서 진상 환자 아저씨도 잘 다루었다. 목소리도 커서 출근만 하면 그 크고 시원시원한 목소리로 전체 분위기를 활발하게 바꿨다. 내가 원하는 것도 꽤 정확하게 캐치해서 마음으로 의지가 됐고 덜 불안했다.
***다른 두 간호사들도 많이 생각난다. 본인의 과거 병력을 고백하면서 환자됨의 모든 고통스러움을 위로해주기란 얼마나 큰 용기를 낸 걸까. 내가 눈물 범벅이 된 채 그런 고백을 들으니 진심으로 위로하려는 따뜻한 마음이 그대로 전해졌다. 그래서 더 울어버렸다. 나에게 예후가 좋다고 했다.
****또 한 명의 간호사는 처음 내가 난간을 잡고 흔들면서 시도때도 없이 호출을 해서 힘들어 했다. 하지만 온 마음을 다해서 환자를 돌보는 친절한 샘이라서 어쩔 수 없이 내가 끈질기게 불러 댔고 의지했다. 어떤 성격이 강한 다른 간호사가 나의 폭주(라고 쓰고 생존본능이라 읽는다.)를 가로막을 정도였다. 그만큼 나는 불안한 상태였다.
1/20수요일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소변부터 누었다. 이제 기저귀를 졸업하기 위해 소변은 침대에 누운 채로 오줌통에, 대변은 맞은편 자리의 여사님께 빌린 변기 받침대를 놓고 해결한다. 몸의 상태가 눈에 띄게 좋아지고 있었다. 등허리에 붙이던 욕창 반창고도 필요 없어졌다. 나는 기저귀 졸업보다 더 기뻤던 건 어제부터 배에 놓는 혈전주사를 졸업했다는 것이다. 더 이상 뾰족한 바늘을 쳐다보면서 “으으 안 아프게”라고 겁먹은 소리를 간호사한테 할 필요도 없어졌다.
*병원생활이 길어지다보니 매일 샤워하던 시절이 있었던가 싶었다. 그저 대소변만 냄새 안 나게 처리할 수 있음에 만족해야 했다. 목욕은 사치고 손과 발만 신경쓰는 편이다. 하루종일 누워만 있어서 손과 발이 깨끗하다. 중환자실에 있을때는 그래도 체위 변경과 전신 소독을 자주 받아서 기본적인 위생상태는 유지되었다.
여기 여사님은 내 얼굴과 머리 상태를 보고는 (나보다 더 속상해 하면서) 곧바로 뜨거운 물로 씻겼다. 손, 발을 씻긴 물은 당연히 뗏국물이 됐다.
***점심을 먹고 체력이 방전됐다. 눈이 졸음에 감겨서 잘 떠지지 않았다. 재활 샘도 피곤하냐고 물어볼 정도였다. 기립 운동은 쉽게 할 수 있도록 덜 세워줬다. 병실로 돌아오는 도중에도 잠이 들었다. 의사샘도 회진 오셔서 왜 이렇게 자고 있냐고 내 간병인에게 물었다. 그리고 발 감각 테스트도 했다. 마사지를 안 아프게 하는 방법도 직접 전수하고 가셨다. 오늘 오후의 피로는 이유를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냥 다른 날보다 많이 졸렸다.
(다음 이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