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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이 Seoy Feb 16. 2023

진단서를 떼다.

21.10.28. - 입원했던 병원에 서류떼러 다시 찾아갔다.

병원 근처가 황량하다.

부모님과 간병인은 병원 근처를 많이 돌아다녔을 것이다.

비좁은 식당들, 의료기 상점들. 너무 작은 병원 입구.

특히 로비가 천장이 너무 낮아서 깜짝놀랐다.

작아도 너무 작다.

침대에서 봤던 곳이 아니었다. 전혀 달랐다.


건물이 분리된 병동들이 복도통로로 연결되어 있다.

항상 누군가가 침대를 밀어줘서 몰랐는데

여기는 미로처럼 이정표들이 혼란스럽게 표시되어서

한 눈에 찾기가 많이 어려웠다.


찾아가는 동안 머리가 지끈거렸다.

옆을 지나가는 입원환자들의 침대들을 보니

다시 예전 생각이 났다.

내가 저렇게 누워서 다녀서 몰랐던 것들을

지금 두 발로 걸어다니며 발견하는 중이다.


아까도 말했듯 천장이 너무 낮고... (낮다를 몇번 말했지?)

간호사들의 자리와 대기석이 너무 비좁다.

서로 뭐하는지 너무 가까워서 너무 잘 보여.

별로 알고 싶지 않은데 뭐라고 말하는지

말소리마저 잘 들려...


“수납하고 혈압체크 후에 종이를 여기로 제출해주세요.”


어… 나는 진료받으러 온게 아닌데

진료비까지 낼 필요가 있을까? 싶어서


어 그런데 혹시 예전에 입원 환자였다가

퇴원한 뒤로 못봬서 그래서 온건데

그래도 수납을 해야되나요?

네! 진료비 안내면 의사선생님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은 전혀 없어요!

숨막히는 간호사의 안내를 듣고 다시 수납창구로 갔다.


어느분께 오셨나요

000 선생님이요.

00,000원이요

??? - 속으로 너무 비싸다고 느꼈다. 그런데

아, 0,000원이네요 의사선생님께서

환자분을 희귀난치병 코드로 신청하셔서

방문할때마다 10프로만 납부할 수 있게 하셨네요.

앞으로 5년간.


휴 그렇군! 안도했다.


엄마가 자리를 지키고 있는 소파 옆 자리에 가서

풀썩 앉았다.

예약시간보다 엄청 빨리 왔으니 대기시간도 길거야.

오랫동안 기다릴 것이 미안해서

엄마한테 짐 두고 미리 화장실 다녀오라고 했다.


그 사이에 간호사가 날 불렀다.

이크. 타이밍이 이럴 수 있다니.

화장실 쪽을 쳐다보니 아직 나오지 않았다.

그냥 엄마 짐까지 바리바리 싸들고 진료실로 들어갔다.


잘 지냈어요?

인사를 나누고 선생님은 곧장 내 근육힘 테스트를 했다.

힘 줘봐요 더더더 됐고, 저쪽도 줘봐요.

꽉 쥐어봐요 힘! 더더더 옳지


그리고는 표정변화 없이 뿌듯한 어조로 말했다.

나보다 힘이 더 세네~

선생님 책상 앞에는 간호사 자리가 있었는데

좁은 공간을 개선하지 못하고

그냥 높은 스탠딩 의자를 두었던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래, 내가 무엇을 도와주면 될까요

딱히 바라는게 있어서 온건 아니지만...은 속으로 삼키고.

마침 선생님의 전용 모니터에 내가 바라던 진단서가 떠 있었다.


선생님, 제가 엄마 아빠한테 넘겨 받은 서류들 중 하나가

딱 저 문장이 있거든요?

그런데 내가 하려던 말의 방향을 예측했다고 믿으셨는지

의사선생님은,

아 그건 이미 부모님께 열심히 설명드렸는데

정확한 정황이나 객관적인 상황이 반영된 문장으로

써드릴 순 있어도 인과성을 인정하는 듯한 문장은

써드리기 어렵다고 말했었어요.

예를 들어 독감백신 '때문에' 부작용이 생겼다고

내가 작성하는 순간 불려나가서 그걸 검증해야 하거든요.

그건 또다른 문제란 말이지요.


그러니까 지금 의사를 볼모로 삼았군...

환자를 피곤하게 만드는 것이군...


아니요 그니까 제말은 문장을 바꿔달라는 말이 아니예요


그럼?


선생님 모니터에 떠있는 서류처럼 '진단서' 서류가

제게 없어요. 그게 필요해요.


에? 부모님께 내가 그때 다 드린 줄 알았는데?


저기 모니터에 있는 저 문장하고 똑같은 문장만 있는데

서류 머리에 저 글씨처럼 딱 '진단서'는 아니였어요.


그럼?


뭐...무슨...'요양비'단어가 들어간 긴 문장이었는데

봐도 무슨 말인지 모르는 제목이었어요.


그게 뭐지?


조용히 앉아있던 간호사가 뭐라고 우물거렸는데

또 하나도 못알아들었다.

아무튼 그 제목이 뭔지 알았던 모양이다.


그니까요 그게, 제가 가진 그 종이는

병원 상징컬러 때문에 알록달록했어요.

종이 전면이 다요.


...알록달록 했다구?


네. 여기 병원색깔 아시잖아요. ㅇㅇ색, ㅇㅇ색...


이쯤되면 나는 설명을 다 한건데도

의사 선생님은 알쏭달쏭해 하셨다.

그렇지만 내가 뭘 원하는지 분명하게 전달받으셨다.


그럼 다시 제대로 된 제목으로 같은 내용을 보내줄께요.

네 감사합니다.


엄마의 짐들을 다시 바리바리 들고 나왔다.

화장실을 다녀온 엄마는 그 자리에 앉아있었다.

고 사이에 순서가 되냐 ㅋㅋ 웃으신다.

화장실 미리 가라고 선심썼던 나도 웃음이 났다.


참, 그런데 퇴원 후 이사를 갔던 것 때문에

발급과정이 매끄럽지 못했지만 (아래에서 이어짐)

발급하기 전 진단서 비용 2만원을 결제했다.


진단서 1장이 2만원이나 해요?


그럼요, 공짜 없어요 ㅎㅎㅎ


수납창구에서 발급하기 전에

먼저 우리 집 주소를 체크하던 중에

지금 담당의의 간호사에게 변경된 집주소를 보냈으니

이 종이를 저쪽 데스크 간호사에게 주라며 나를 보냈다.

나는 시키는대로 그 종이를 들고

얼른 간호사에게 건너갔다.

일이 지체되면 불안하다. 그리고 어차피

종이를 들여다봐도 뭔 소리인지 모르겠다.


나에게 해당하는 항목과 아닌 항목들이

어지럽게 배치된 서류 한 장.


종이를 내밀면서 수납창구에서 제출하래요.

저희집 주소가 변경되서 그렇대요.


그랬더니 간호사들이 잠시 그걸 왜 우리한테 주냐는 표정으로 날 쳐다봤다.


이걸 왜 우리한테 준대요?


어 ㅎㅎ 모르겠어요.


수납창구 직원들 중 어느 분이 그러셨어요?


저쪽 오른쪽 분이요.


그래요? 근데 왜 우리한테 주라고 하셨을까?


ㅎㅎㅎ 그러게요 왜 그러셨을까요 ㅎㅎㅎ


간호사가 바라는 답이 나에게도 없자

저절로 힘 빠진 웃음이 대답과 함께 새어나왔다.

소파에서 잠시 기다려달란다. 가서 알아보겠다며.

5분 후 곧 종이가 나온다고 알려줬다.

그리고 또 몇 분 후 드디어 내가 바라던 종이가 나왔다.

휴, 2만원짜리 드디어 받았다...이제 집에 가야지.


다시 병원 밖 출구를 찾는데

아까처럼 복잡한 미로같은 길을 뚫고 걸어나갔다.

참 복잡하고 천장이 낮아도 너무 낮아...


나도 이렇게 머리가 지끈거리고 마음도 안좋은데

그때 엄마 아빠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오늘부터는 보상신청에 집중 집중 집중이다.

이제 또 올일이 없기를.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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