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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정원 Nov 17. 2024

겨울맞이

11월 이야기

다음 주부터 한자리 수 기온이다. 더는 미룰 수 없는 월동준비를 시작했다. 따사로운 날씨는 노동의 의지를 돋워 줬다. 탐스러운 감나무 한그루를 샀다. 식물의 생장이 느려지는 가을은 어떤 식물도 옮길 수 있다고 했다. 과일이 잘 열리는 화분을 주문했다. 창고에 쌓인 남은 흙들을 정리할 겸 적당히 섞어서 흙을 만들었다. 부엽토, 용토, 황토, 펄라이트를 넣고 섞었다. 냉장고 파먹기를 하는 것 같다. 화분에 붓고 감나무를 넣고 물을 잔뜩 뿌리고 고정했다.

 새끼 고양이 4마리와 어미고양이가 농사창고 뒤편에서 놀고 있다. 내가 농사창고로 갈 때마다 어미 고양이는 자세를 고쳐 고 나를 노려보며 그르렁거린다. 나는 어미고양이의 공격을 받지 않기 위해 최대한 눈을 안 마주치며 최대한 빠르게 귀여운 고양이들을 훔쳐본다. 4마리인데 두 마리는 검정 두 마리는 노랑이다. 손바닥만 하게 작은데 털이 보송하고 잘 뛰어논다. 어미 고양이의 뜨거운 눈빛을 애써 피하며 톱을 꺼냈다. 톱으로 칸나를 정리하려고 한다. 칸나를 10개 정도 심은 것 같은데, 10개가 각 10배씩 불어 100개가 된 것 같다. 아직 싱싱한 칸나 줄기를 끊어내자 물이 쏟아져 나왔다. 구근을 캐는데 너무 커서 계속 쪼개서 겨우 빼냈다. 수없이 버리면서 캐냈지만 아직도 양이 많다. 나 또한 이렇게 불어난 칸나를 택배로 나눔 받았다. 얼마나 잘 퍼지는지 2년 만에 나눔 보낸 이의 마음을 알아 버렸다.

칸나 정리 전과 후

가을은 낙엽으로 을 떨구는 시기이기에 나무의 실루엣에 따라 전지를 하기 좋은 시기라고 한다. 우리 집은 나무가 잘 안돼서 불행인지 다행인지 전지 할 나무는 단풍나무 한 그루뿐이다. 다른 단풍나무는 붉게 타오르는 데 우리 집 단풍나무는 바람이 막힌 데 있어서 인지 아직 초록으로 푸르기만 하다. 뒤 쪽으로 밉게 뻗친 굵은 줄기 하나를 잘랐다. 1년 새 굵어져서 한참을 톱으로 썰어야 했다. 이 가지는 캠핑 땔감으로 쓰기 위해 말렸다. 버리는 칸나 구근도 열심히 삽으로 깨다 보니 땀이 나고 톱질하다 엄지손가락으로 헛디뎌서 살짝 피가 난다. 이 정도 피곤함이면 마무리지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집으로 들어갔다. 지난주에 삽질 퍼레이드도 근력운동이었는데 이제 톱까지 나와야 겨울이 오는구나. 정원 노동의 강도가 어째 점점 세지는 것 같다.

불어난 칸나 구근

밖에 있는 화분들을 덮어주려고 한다. 겨울에 추워지면 땅에 심은 식물들은 그나마 따뜻하지만 화분이 물이 얼어서 냉해 피해를 입고 잘 죽는다고 한다. 우리 집에 화분이 몇 개 있어서 화분에 덮개를 씌웠다.


월동채소를 심었다. 이건 간단하지 않고 3주에 걸친 프로젝트였다. 제목은 내년에는 양파 안 사 먹기 프로젝트이다. 먼저 5월에 심었던 작물들과 헤어져야 했다. 죽은 옥수수와 오이를 걷어내고, 아직 열매가 달려서 아쉽지만 가지와 고추도 뽑았다. 식물이 잘 크는 땅을 만들어 주기 위해 석회와 땅벌레 제거 농약을 뿌리고 퇴비를 4 포대 넣고 섞어줬다. 일주일 뒤 고랑을 만들었다. 한 줄은 얇게 한 줄은 넓게 만들었다.


여기 까지는 항상 하던 일이었는데 올해는 특별히 제초매트를 깔았다. 소위 멀칭이라고 하는 땅을 덮어주는 작업이다. 이런 것 없이도 3년 살았지만

3년 차가 된 지금의 나는 꼭 매트를 깔고 싶었다. 그 이유는 신경 쓰지 못해도 유지가 되도록 하는 게 목표이기 때문이다. 관리가 편한 게 먼저라고 생각하고 가장 큰 적은 잡초이다. 이제는 잡초 스트레스를 안 받고 싶어 멀칭을 어떻게 할지 고민했다. 구멍 뚫린 비닐은 텃밭에 쓸 만큼 작은 사이즈로는 잘 안 판다. 그래서 잔디 때문에 사두었던 잡초매트가 떠올랐다. 제초매트를 깔면 잡초가 안 자라고 자라도 뿌리를 깊게 못 내려서 쉽게 제거가 된다고 한다. 제초매트를 사면서도 이런 것까지 사야 하나 의아한 마음이었는데, 나는 이제 누가 주택으로 이사를 간다고 하면 제초매트를 제일 먼저 추천할 생각일 정도로 제초매트가 주택생활에 필수품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제초매트를 깔았고, 토치를 이용해 구멍을 뚫었다. 가위로 자르면 올이 풀린다고 하고 심지어 잘 잘리지도 않기 때문이다. 토치를 켜서 화력으로 식물을 심을 구멍을 하나하나 뚫었다. 이렇게 유난스럽게 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잡초로 받는 스트레스가 싫어서 했다. 이 제초매트는 5년 정도 유지가 되고, 식물이 죽으면 식물 지상부를 끊어내고 뿌리는 가위로 잘라서 그 안에서 알아서 썩게 만들면 된다고 하 수고를 감수해 볼 가치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수월했는데, 구멍에다가 식물을 심는 것이 의외로 번거로웠다. 구멍이 있기 때문에 깊게 파기도 힘들고, 섬세하게 식물을 심기도 힘들다. 하지만 맨 흙이 덮여서 깔끔하게 정리된 밭을 보면 뿌듯하고 기분까지 좋아진다. 뭔가 농사의 꾼의 영역에 들어 선 것 같은 묘한 기분도 들었다. 그 길로 시장에 가서 대파와 양파 모종을 30개씩 샀고, 거의 끝물로 남은 봄동 모종도 싸게 사서 심었다. 월동 작물 모종은 가격도 착했다. 집에다가 내년에 양파는 안 사도 된다고 큰소리를 쳐놨으니 추위를 이기고 잘 자라주기만을 기도할 것이다.   


양파와 봄동 모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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