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이 Feb 26. 2022

운수 좋은 날

몸조심해,
진짜 조심해야 해.

 염려 가득한 가족과 지인들을 안심시키며 북경행 비행기를 탔다. 1시간 30분 뒤 나는 북경 수도공항에 도착하여 입국 수속을 기다리며 서 있었다.

 “저기요……. “ 하며 누군가 조심스럽게 내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네?”하며 고개를 돌아보았다.

 “가방 지퍼가 열렸어요.”

.

.

 고백하자면 나는 덜렁이다. 핸드폰을 어디다 뒀는지 잘 잊어버렸고, 지갑의 행방을 찾느라 매번 진땀을 뺐다. 실제로 몇 번 잃어버릴 뻔했지만 운 좋게도 몇 시간 뒤에 다시 발견되곤 했다. 좋은 물건이 내게는 필요치 않다. 내 부주의로 물건들은 언제 내 곁에서 떠날지 모르기에.


 위험천만하기로 악명 높은 중국에 왔다. 쓰읍! 똑바로 정신을 차리자! 왼쪽에는 지갑, 오른쪽에는 핸드폰을! 무조건 정해진 자리에 물건을 놓자. 눈뜨고도 코 베여가는 것을 넘어 내 장기를 걱정해야 한다는 중국에서 얼마나 많은 물건들을 잃어버리게 될 런지 걱정부터 앞섰다.


 학교 안은 외국인 학생에게 안전지대였다. 학교에서 만나는 중국 학생들이나 교직원들 모두 누구나 친절했고 상식을 크게 벗어나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학교를 벗어나면 이야기는 달라졌다. 같은 동양인이지만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아도 옷, 머리, 풍기는 이미지에서 단박에 외국인임을 알아채고 나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관광지에서 바가지는 기본이고, 쇼핑센터에서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을 불러놓고 생색내며 깎아 주는 일은 옵션이다. 식당 영수증에 먹지도 않은 술을 턱 하니 적어 놓는 정도면 애교 수준이라 반드시 영수증을 확인해야 했고 도매시장에서 물건 값을 물어봤을 뿐인데 아무렇지도 않게 내 얼굴을 보며 “讨厌 타오이앤, 증오스럽다”라는 말을 들을 때면 수차례 거울을 보고 연습했던 중국어 욕을 찰지게 받아쳐야 했다.


 사람 사는 곳은 어딜 가나 다 똑같았다. 다양한 사람들이 공존했다. 별일 아닌 일에 앙칼지게 대답하거나, 거스름돈을 내던지듯이 줘서 불쾌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버스에서 니하오! 한마디만 했을 뿐인데도 너는 언어 재능을 타고났구나. 어쩜 중국어를 잘하니 하며 특급 칭찬을 해주고, 길을 물어보면 하던 일을 제쳐두고 목적지 가까이까지 데려다주는 친절한 사람들도 있었다.


 어제도 그제도 똑같았던 장소가 어떤 사람을 만났고, 어떤 일들을 겪었는지에 따라서 달라 보인다.


 예기치 못한 일은 언제나 방심한 틈을 타고 찾아왔다. 한국에서 기숙사비를 송금받았던 날이었다. 학교 근처 중국은행에서 인출한 달러를 은행 앞에 대기하고 있던 환전 아저씨에게 인민폐로 환전했다. 기숙사로 들어가기 전에 우다코의 한인 타운에 가서 오랜만에 한국음식을 먹고 집에 돌아가기 위해 택시를 탔다. 택시 운전사가 행여 바가지요금을 씌우지는 않을지 매의 눈으로 관찰했다. 다행히도 쓸데없이 뱅뱅 도는 일 없이 학교 정문 앞에 도착하여 택시비를 지불하고 내렸다. 바깥은 어둑해져 서둘러 6층의 기숙사 방까지 걸어서 올라가느라 숨이 찼다. 방에 들어서는 순간 어딘가 허전한 느낌이 들었다. 아뿔싸!!!!!! 지갑!!!!!! 옷 속에도 가방에도 지갑이 나오지 않았다. 빛의 속도로 기억을 더듬어보니 택시비를 친구와 나눠 낸 후 지갑을 다시 가방에 다시 넣지 않은 것 같다.


 중국에 온 뒤로 정말 계속 조심했었는데 어처구니없게 왜 기숙사비가 든 지갑을 택시에 놓고 내렸을까. 이 정신머리를 어쩌면 좋을까 하며 자책을 했다. 이미 엎질러진 일을 후회해서 무엇하리오. 천만다행으로 내릴 때 받았던 영수증이 있었다. 실오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영수증에 적힌 회사에 전화를 해보았다. 마침 그 회사의 부총경리(부사장)가 내 전화를 받았고, 수소문하여 나를 태웠던 기사와 연락이 닿게 해 줬다. 택시 기사 아저씨는 오늘은 시간이 너무 늦어 내일 우리 학교에 지갑을 돌려주러 오겠다고 했다.


 뛸 듯한 기쁨도 잠시 과연 찾을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생겼다. 분명 지갑은 미끼고 다른 의도가 있지 않을까 하는 수상쩍은 생각이 들었다. 평소 중국과 중국 사람에 대한 흉흉한 이야기들을 많이 들었다. 중국 사람은 믿을 수 없는 사람들이며, 외국인을 보면 등쳐먹을 생각만 하는 사기꾼이니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는 온통 부정적인 소문만을 들었던지라 분실한 지갑을 정말 찾게 될 거라는 기대는 추호도 없었다.


의심 반, 기대 반 다음날 룸메이트와 함께 학교 정문 앞에서 택시 기사 아저씨를 기다렸다. 정말로 택시 기사 아저씨와 전화를 받았던 회사 부총경리가 나타났다. 지갑에 있는 돈이며 지갑이며 고스란히 나의 품으로 돌아왔다. 뜻하지 않게 베풀어주는 그들의 선행에 어안이 벙벙했다. 고맙다고 감사의 표시를 하고 싶어서 사례금을 드리겠다고 했지만 극구 사양하며 오히려 유학생인 우리들에게 중국에서 즐거운 추억을 많이 쌓고 공부 열심히 하라고 격려까지 해주셨다.


 내심 만나는 순간까지도 경계를 놓지않고 중국인에 대해 편견을 갖고 있었던 나로서는 못내 미안한 마음을 떨칠 수 없었다. 큰돈이 든 지갑을 분실하고 다시 찾을 확률은 얼마나 될까? 한 달 외국인 기숙사비면 아마 택시 기사 아저씨의 몇 달 월급은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왜 적극적으로 지갑을 찾도록 도와줬는지 궁금했다. 전화를 받았던 택시 회사의 부총경리는 최근에 어떤 티브이 프로그램에서 한 중국인이 외국인에게 베푼 선행을 보았고, 그것을 인상 깊게 봤던 부총경리가 외국인인 내가 “저는 한국 유학생입니다. 기숙사비가 든 지갑을 귀사의 택시에 놓고 내렸습니다. 제발 도와주세요. "라는 다급한 내 이야기를 듣고 선뜻 자신이 선행을 베풀어야겠다고 생각을 했단다. 나에게 당부하기를 중국에 좋은 사람들이 많으니 고국에 가면 한국 친구들에게도 말해달라고 했고. 선행은 돌고 돌아 또다시 자신에게 오는 것이니 내가 받은 선행을 다른 사람들에게 꼭 베풀라고 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봤다. 내 머리 위의 하늘빛은 어제의 잿빛이 아닌 쪽빛으로 유난히 푸르게 보였다. 순수한 그들의 친절과 선행이 중국에 대한 좋지 않은 편견으로 가득 차 있던 나를 중국에 대한 호감으로 바뀌는 계기가 되어주었다.


 운수 좋은 어떤 하루 이후로 새로운 세상, 중국에서 온기가 느껴졌다. 낯선 땅에서 어제는 아득했고, 오늘은 새로웠고, 내일은 예측 불가능했던 시간이었지만 나는 무사히 잘 지나왔다.

매거진의 이전글 두 남자의 우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