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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 May 01. 2022

내가 사랑하는 빵

공룡알

 대학 시절의 어느 해 겨울방학이었다. 늦은 사춘기였을까? 우울증이었을까 만사가 심드렁했다. 친구들은 취업을 준비하기 위해 방학인데도 도서관에서 지낸다는데 나는 하고 싶은 것도 없고, 아무도 만나고 싶지도 않고, 전염병의 시대도 아니었건만 자처해서 집콕을 했다. 가끔 비디오 대여소에서 만화책, 소설책, 비디오테이프를 빌리러 가는 것이 유일한 외출이었다.

 

 하루는 만화책을 빌려 나오는데 어디선가 달콤하고 황홀한 냄새가 나는 것이었다. 냄새를 따라가 보니 몇 걸음 옆에 있는 빵집의 오븐 속에서 따끈따끈한 빵들이 막 나오고 있었다. 그중에서 주먹 크기의 노란색 빵이 내 눈길을 끌었다. 매장으로 들어가 노란색 빵을 자세히 살펴보니 바케트의 끝부분을 잘라 속을 파서 삶은 달걀 샐러드로 속을 채운 빵이었다. 게다가 ‘공룡알’이라는 빵의 이름을 보니 피식 웃음이 나며 어떤 맛일까 호기심이 생겨 하나를 집어 들어 계산을 했다.

 

 집에 돌아와 빌려온 만화책을 보며 ‘공룡알’을 한입 깨물었다. 바삭한 바게트와 담백하고 촉촉한 달걀 샐러드의 조합은 읽던 만화책을 덮게 하고 빵에 집중하게 했다. 공룡알 빵 한 개를 음미하며 다 먹고 나니 마술에 걸린 듯 마음이 부드러워지고 든든해졌다. 고소하고 부드러운 빵이 “그동안 힘들었지?”하며 토닥토닥 위로를 건네는 것 같았다. 빵의 첫 위로는 넉넉하고 달콤했다.

 

‘공룡알’으로 나는 빵순이의 세계에 입문하며 집 앞 빵집의 단골손님이 되었다. 용돈을 받는 날이 되면 공룡알과 함께 그동안 가격대가 있어 눈여겨보기만 했던 한입 크기의 초코볼 도넛과 공갈빵까지 샀다. 적적하게 집에만 계시는 할머니가 손녀딸이 사 온 빵을 맛있게 드실 것을 생각하니 불룩한 빵 봉지만큼 마음까지 두둑해져 발걸음을 재촉했다.

 

 장기 집콕을 하려 했지만 ‘공룡알’ 빵을 사기 위해 외출을 해야 했고, 나온 김에 서점에도 들리고, 동네에 놀러 온다는 친구 얼굴도 보고 바깥에서 일을 보며 조금씩 집에 있는 시간이 줄어들면서 집콕이 중단되었다. 영화와 책 속 이야기에서 벗어나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라며 용기를 건네 준 작은 빵에게 새삼 고마운 마음이 든다.


  코로나의 기간 동안 자의 반 타의 반  집콕을 하다 보니 점점 나가는 게 귀찮아지고 관계 맺음이 어려워졌다.   작고 귀여운 빵으로 은둔의 생활을 종료하고 빵을 찾아다니며 일상의 활기를 찾아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그리운 공룡알빵을 생각하며 바게트 빵과 속재료를 사러 집밖으로 나가야겠다.

 “빵과 함께라면 씩씩하게 나갈 수 있지!”

공룡알 Ⓒ안녕 리봉짱


대문사진 ; pixabay Ⓒromaconceptovisu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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