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하면서 생각한 리더십, 회사생활 소회를 몇 가지 적어봤습니다.
등산을 좋아하는 아내와 ‘감악산’에 다녀왔습니다.
이 산은 파주와 양주에 걸쳐 있는 해발 675m의 산입니다.
‘악’ 자가 들어간 산이니 만큼 제 기준에서는 만만한 산이 아닙니다. 폭포 주차장으로 올라가는 등산로는 경사도 높고 돌짝으로 되어 있어 힘이 많이 들어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산은 매력적입니다.
출렁다리를 지나 운계 폭포에서 땀을 식힌 후 정상 전망대에서 탁 트인 전망을 보고 있노라면 묵은 스트레스가 싹 씻겨 내려갑니다.
운계폭포를 지나 하염없이 돌무더기를 올라가다 보면 숨이 턱턱 막히고 땀은 송골송골 맺힙니다.
사점에 달한 순간 보이는 벤치는 그 어느 귀인보다 반갑죠. 시원한 산바람을 맞으며 땀을 식히고 가져온 귤도 먹으며 아내랑 이것저것 이야기 나누며 쉬려 했는데, 날파리, 모기가 아직 꽤 있습니다. 귤냄새를 맡아서인지, 제 땀냄새를 맡아서인지 눈앞에서 이것들이 계속 서성거립니다.
‘내 피는 고지혈증이 있어서 꽤 헤비할텐데..’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여하튼 거슬리는 것은 어쩔 수 없네요.
가지고 갔던 손수건으로 소림무술에서 나온 여러 신공들을 선보입니다.
적절한 손목 스냅과 강력한 스매싱으로 날파리들을 쳐내면서 회사생활이 떠오릅니다.
(아래 내용은 지금 현재 상태를 비관하며 적은 것은 아니니 오해 없으시길..)
팀 성과가 높으면 그걸 시기하는 옆팀들이 있습니다.
숟가락을 조용히 얹으려는 팀도 있고, 자기가 관여하지 않았어도, 동일 부문에 있다는 이유로 자기들 보고자료에 슬그머니 우리 팀 업적을 몇 자 적어놓기도 하죠.
마치 자기들이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거나 협업한 것처럼 말입니다.
밤새 만든 자료를 너무 당연하게 달라는 사람들도 있죠. 상당히 거슬립니다.
회사랑 백여 킬로 떨어진 산에서 왜 그런 사람들이 생각났는지 모르겠지만,
여튼 그들과 이 날벌레들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 기분은 생각하지 않고 자기 생존을 위해서 달려드는...
그러나, 그 행동은 그들이 한낱 날벌레라서 한 행동임을 생각해 봅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죠.. 그저 날벌레입니다.
거기에 머물러 버리면 나만 힘들어진다는 생각도 들어 다시 갈길을 가기로 했습니다.
지금까지 올라온 산의 모습도 너무 아름답습니다.
실은, 이 산은 올해 봄에 한 번 다녀왔습니다.
이사 온 지 얼마 안 되어서 파주에 갈만한 곳을 검색하니 꼭 이 산이 있더군요.
아내와 이 정도면 갈만한데?라는 생각에 러닝화를 신고 다녀왔더랬죠.
오기로 어떻게든 정상에 올라오긴 했습니다만, 돌무더기로 이루어진 등산로는 올라갈 때와 내려갈 때 모두 상당히 고통스러웠습니다.
그 흔한 수건 한 장 안 가져와서 땀도 많이 났었고요.
그래서, 이번에는 발목까지 올라오는 등산화 (무거워서 이건 좀 실패), 손수건, 아이스커피, 귤, 사탕 등등 나름대로 준비를 했습니다.
준비를 하고 갔더니 확실히 봄에 왔을 때랑은 느낌이 다르더군요.
힘들 때마다 커피도 마시고, 생수도 마시고, 귤도 까먹으니 훨씬 마음이 편합니다.
회사 생활을 하다 보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데요.
무계획이 계획이라는 사람도 있고, 너무 쓸데없는 거 까지 고민해서 속도를 못 내는 사람도 있고,
필요한 고민은 하지 않고, 필요하지 않은 고민만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보다 더 문제는 아무 생각이 없고, 위에서 하라고만 하는 사람입니다. 이걸 생각해 보면, 준비하지 않는 사람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준비해야 할 것이 많죠.
노후자금, 건강, 자녀교육 등등 거기에 갑자기 부모님이 아프다던지, 가정에 큰 일에 생길 수도 있습니다.
회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에이스 직원이 갑자기 그만둔다거나, 사업이 휘청거린다거나,
저같이 교육팀에 있으면 윗분 한 분이 바뀌면 회사 교육에 대한 성향이 완전히 바뀔 수 있습니다.
(예전에 한 임원은 인사팀이 불필요하니까 없애겠다고 했던 적도 있고, 교육이 뭐가 필요하냐고 한 분도 있었죠)
준비가 없으면 불안합니다.
물론 지금은 답이 안 나오는 상황일 수 있습니다. 너무 잘 되고 있거나, 너무 안 되어서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 있을 수 있죠.
업무적으로 준비할게 안 보이는 상황이라면 건강이나 다른, 지금까지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한 부분을 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완벽한 거 같지만, 항상 돌아보면 챙겨야 할 부분이 발생하곤 하는데, 그걸 돌아보는 게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산에 가면 아빠가 앞서가고 엄마가 뒤에서 아이들과 같이 올라오는 집들이 꽤 있습니다만, 저희는 반대입니다.
체력 좋은 아들이 앞서 나가고 엄마가 그 뒤를 따라가고 가장 저질체력인 저는 제일 뒤에서 갑니다.
사춘기 딸은 아예 안 가고요 ㅠ
와이프랑 둘이 산에 갔으니 와이프는 신났습니다.
바다메기 같이 물컹한 살때문에 고민이라고 항상 그러면서도 산에서는 날다람쥐가 따로 없습니다.
오늘도 자동차 기름 충전되는 것처럼 폭포를 지나니까 아주 날아다닙니다.
‘같이 가자’ 말할 틈도 안 주고 저만큼 앞서나갑니다.
한창 가면 자기는 쉬고 있다가 다시 출발하고 또 제가 따라가면 자기는 쉬고 있다가 출발합니다.
(저를 싫어해서 같이 안 다니는 건 아닌 거 같습니다. 산에 오면 활력을 얻는 산사람이라서 그렇습니다)
저질스러운 제 체력이 원망스럽기도 했지만, 내심 심통도 올라옵니다.
‘좀 같이 가지...’
그러나 절대 말하지 않습니다. 말하면 ‘왜 운동을 하지 않았냐..’, ‘그 뱃살을 좀 빼라’ 등등의 멘트만 돌아올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회사에서 많은 리더가 있죠.
요즘은 제 와이프 같은 리더들은 많이 없는 거 같습니다. 물론 대놓고 독선적인 리더는 많이 없는 거 같지만, 고집과 자기주장을 끝까지 내세우는 리더들은 아직도 꽤 있는 것 같습니다. 보통 이런 분들이 소통을 하지 않으면 부하들의 마음을 몰라주는 리더가 됩니다.
물론 이해는 됩니다. 자기 기준에 따르면 이 남편은 평소에 자기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은 사람이고,
산에 올라가는 다른 평균적인 사람들보다 훨씬 늦은 속도로 올라오는 데다가 땀도 많이 흘리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운동을 더 하고 뱃살을 빼라는 이성적인 조언을 하는 겁니다.
버크만 박사에 따르면 사람은 이성적인 공감과 감성적인 공감을 원한다고 합니다.
어떤 공감을 더 원하는지는 개인차가 있습니다만,
감성적인 공감을 더 원하는 사람이 이성적인 공감(문제를 해결하려는 공감)을 들으면 처음에는 공감을 얻기보다 마음에 상처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이게 접니다)
분명 좋은 리더고, 문제 해결을 확실히 하는 리더인데 주변에 사람이 없는 리더가 이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우선 충분히 들어주고 팔로워 입장을 한번 손으로 적어보면서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생각해 봅니다.
산에 오니 확실히 좋네요.
단풍이 너무 들면 사람도 많고 교통체증도 심해지는데,
그냥 이번주에 가볍게 동네 뒷산이라도 한번 가서 생각도 정리하고 사진도 찍어보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