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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krsnrn Oct 14. 2020

불충분한 언어로

너의 때에 나는 없었다. 오랜만에 밀려오는 죄의식에 아침부터 불안에 떨었고 그 흔적을 되짚어보다 너의 메일 주소까지 닿았다. 10년전의 몽롱함을 그대로 지닌듯한 너의 은유를 보고 확신했다. 그 은유에는 나를 의미하는 듯한 단어들은 없었고, 내가 눈앞의 너를 마주했던 때처럼 너는 나와 다른 세계를 살고 있었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였다. 그 세계에는 내가 낄 틈이 없어보였다.

글자들을 읽어내려가며 눈 바로 앞에서 관찰했던 너의 모습과 분위기들이 되살아났다. 아니 살아났기보다는 그저 내 기억속에 멈춰있던 이미지들을 잠시 재생시킨 것 뿐이지만. 그 글자들은 내 머릿속의 그것들을 어떤 단어로, 어떤 이미지로 정의하려했다. 피부가 맞닿을 수 있었던 때에는 정지된 텍스트가 아니어도 비언어적인 것으로 확인할 수 있는 무언가가 남아있었는데 이렇게 본 너는 나에게서 더 멀어보였다. 내가 모르는 꽃의 이름들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그때처럼 나는 너를 보고있으면 너를 자꾸만 알고싶었다. 너는 알까. 나의 때에 너는 선명히 남아있다는 것을. 너는 내게 하나의 때로 남아있다는 것을. 지금도 종종 너를 떠올리면 그때의 마음도 고스란히 따라 떠오른다는 것을. 너의 1막 1장의 한줄, 단어하나라도 내가 남아있기를 바라고 있는 것을. 아니 막이 시작하기 전의 찰나의 순간이라도. 나의 눈동자 색을 확인하며 기뻐하다 곧 실망해버리던 너를 보며 따라 실망했던 것처럼, 네 앞에서는 이렇게 나의 마음을 자꾸 덜어내는 습관이 있다는 것을.



여기 있지만 닿을 수 없다. 닿고자 하는 손짓을, 손가락의 뻗음을, 나는 어느 때에 어떤 눈빛으로 어느 목소리로 건네야할지 모르겠기 때문이다. 너에게 닿기를 원하는 건지 조차도 사실 나는 아리송하다. 

약 1년전, 전에 살던 곳에서 멀리서 내쪽을 향해 걸어오던 너를 우연히 발견했을때. 가깝게 스쳤던 거리가 무색하게 너에게 들릴만큼 크지 못했던 내 목소리는 그때 이후로 아직까지 내 목구멍 언저리에 응어리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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