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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여행기_1. 독일 로컬카페 바리스타입니다.

이탈리아 바리스타 수료증, 그 위대함에 대하여...

독일의 겨울은 우중충하다. 회색빛 음울한 하늘, 을씨년스러운 날씨에 저기 산 꼭대기에 있는 성에서는 드라큘라 백작이 살고 있을 것만 같다. 누군가는 한해중 절반은 흐리고 을씨년스러운 날씨라고 한탄한다. 그렇기에 독일의 봄과 여름의 햇빛은 더욱 찬란하고 아름답다. 어둠이 있기에 밝음은 더 귀하고 소중하다.


햇살이 아름다운 봄의 어느 날이었다. 피아노 레슨을 마치면 가끔씩 들리던 카페가 있었다. 직접 로스팅한 커피콩으로 커피를 만드는 작은 카페이다. 원두가 신선해서 그런지 커피가 항상 맛있다. 독일에는 산미가 있는 커피를 맛보기 힘든데, 그 카페의 커피는 산미 혹은 과일향이 난다. 모처럼 햇빛이 좋은 날, 날씨를 만끽하고 싶어 카페가 있는 쪽으로 산책하며 걸어갔다. 플랫 화이트 한 잔을 주문하고 커피가 나오길 기다린다. 그때, 마침 계산대 앞에 작게 적어놓은 팝업 속 문장이 눈에 선명하게 들어온다.


" Wir suchen Mitarbeiter/in."


"알바 구함"


딱 이거였다. 마침 자주 보던 카페 주인이 커피를 직접 내리고 있었다. 더듬더듬 독일어로 그에게 말을 꺼낸다.


"Suchen Sie Mitarbeiter?" (알바 구하세요?)


그렇다는데 딱히 달가워하는 표정은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떠듬떠듬 독일어 몇 마디 떼는 동양인(딱 봐도 독일어 못할 것 같은)은, 이미 관심밖이었을 테다. 하지만 이제 첫마디 뗐다. 이어서 물어본다.


"Wenn ich hier arbeiten kann, am welchem Tage arbeite ich?"

(일을 할 수 있게 된다면, 무슨 요일에 하나요?)


이 표현이 정확한 표현인지도 그때도 지금도 확신이 없다. 어쨌든 소통은 되고 있다. 그가 대답한다.


"Ab Montag bis Samstag!" (월요일부터 토요일!)


'뭐야, 그럼 일요일 빼고는 다 한다는 거네. '


확 김이 새지만, 수입은 나름 짭짭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김칫국을 드링킹 하며, 심드렁한 그에 앞에 비장의 카드를 자연스럽게 꺼내 보인다. 이름도 찬란한 '이탈리아 바리스타 수료증'이다. 커피의 심장,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일주일 동안 출석하며 받아온 귀하디 귀한 두꺼운 종이로 된 수료증이다. 그것도 무려 코스별로 5장이다. 이 정도면 나름 괜찮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의 반응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방금 전까지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이다. 그는 수료증 한 장 한 장을 넘겨보며, 수업내용에 대해 자세히 묻는다. 아, 단어 하나하나 힘겹게 짜내어서 대답하는데 신기한 일이 생긴다. 부족한 독일어까지 그가 백업을 해주며 인터뷰를 끌어 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방금 전까진 무관심으로 흐릿했던 그의 눈에 선명한 초점이 보인다. 그렇다. 이건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카페 관련 경력이 있는지 이것저것 물어보며, 이력서가 있는지도 물어본다.


'오잉, 이 정도면 그냥 채용될 것 같은데...... 앗싸?!'


그렇게 본인이 몇 시까지 카페에 있는지 알려주며, 이력서를 들고 올 수 있으면 들고 오라고 한다. 이메일로 제출 가능했지만, 아무래도 직접 가는 게 좋을 듯했다. 어찌어찌 그렇게 이력서를 내고 그 후 3주 가까이 애타는 기다림 후에, 정식 면접을 보고 바리스타가 되었다. 바리스타 수료증은 그렇게 자신의 첫 번째 소임을 충실히 다 했다.


그렇다. 나는 언어적인 장벽을 수료증으로 백업했다. 역시 취업을 위해 경력 혹은 학위가 있어야 한다고들 하는데, 내게는 경력과 학벌(바리스타 수료증)이 있었다. 두 개다 있으니, 언어적인 약점이 커버가 된 셈이다.  


그렇게 독일 로컬 카페의 바리스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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