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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여행기_2. 태양이 눈부신 나라들

호주에서 이탈리아까지

나는 왜 굳이 이탈리아까지 커피여행을 떠났을까?


호주 워킹홀리데이 비자가 이제 3개월 밖에 안 남았다. 귀국하기 전까지 어쨌든 돈을 벌어야 했다. 그날 벌어서 그날 쓰는 하루살이 같은 삶을 살고 있던 시절이었다. 운 좋게 한인이 운영하는 작은 카페에서 면접을 보게 되었다. 생존이 걸린 문제이기에, 비자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하지 않았다. 아니다, 아예 6개월 이상 남았다고 거짓말을 했었나... 고작 3개월의 비자가 남은 아르바이트생을 누가 써 주겠는가? 그렇게 생존의 문제 앞에서 한점 부끄럼 없이 당당했다.


사장님은 이미 큰 비스트로 식당을 그의 아내와 함께 경영하고 있었다. 낮에는 카페일을 저녁엔 비스트로 일을 한다고 했다. 이미 식당일이 많았기에 카페는 아내에게 졸라서 겨우 운영하는 거라고 했다. 그는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십에서 일궈낸 2등 수상을 늘 자랑스러워하였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대단하지만 당시에는 큰 관심은 없었다. 나는 커피에 문외환이었다. 즐겨 마시던 커피는 초코시럽이 넉넉하게 들어가 카페모카가 전부였다. 가끔 코코아 가루를 듬뿍 뿌려 저어 먹는 편의점 1달러 커피를 즐겨 마셨다.


하루하루 지각 안 하고 무사히 주급 받는데 여념이 없던 소시민에게 그는 지치지 않고 커피에 대한 열정을 전파했다. 바리스타 챔피언십에서 10분을 조금 넘기는 짧은 시간 이내에 열 잔이 넘는 라테아트를 만들기 위한 일사불란한 동작을 직접 보여 주기도 했다. 그의 동선은 가히 전문가답게 효율적이었다.


"사장님, 핫초코 한잔 타 먹어도 되니요?"


그는 곁눈질로 성의 없이 핫초코가 담긴 통을 보더니 심드렁하게 한 마디 했다.


"먹던가..."


그리고 이해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말한다.


"도대체 저걸 무슨 맛으로 먹지?"


커피광 사장님에게 있어서 핫초코 따윈 카페로서 어쩔 수 없이 맞춘 구색에 불과했다. 달콤한 코코아 가루가 초라해졌다.


가끔 사장님이 마시고 싶은 게 있냐고 물어오면, 종종 차이라테를 주문했다. 계피향이 좋았다. 그럴 때마다 그는 어김없이 으흐흐 웃으며, 당최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음료를 만들어 준다. 커피 말고 다른 걸 시킬 때마다, 정말 호탕하게 웃었다. 친구가 카페에 방문해서 핫초코를 시켰던 날, 그는 카페가 떠나가라 웃었다. 그 상황엔 이미 이골이 났기에 덩달아 피식 웃으며 모카라테라도 제발 먹어달라 권했다.


"모카라테? 으흐흐흐히히히~"


결과는 큰 차이는 없었지만, 그래도 에스프레소가 들어가는 음료가 아닌가?

그렇게 친구는 핫초코 대신 모카라테를 먹었다.



한번 트럭이 덮친 사고가 있었던 길 모퉁이에 있던 그 카페에는 어쩐 일인지 손님이 별로 없었다. 사장님 말로는 그 사고 이후로 점점 불어나던 손님이 뚝 끊겼다고 했다. 결국 그는 카페를 다른 사람에게 넘기는 작업을 진행 중이었다. 새로 오게 될 주인이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원두 수입처부터 몇 백 미터 가량 떨어져 있는 성황리에 영업 중인 경쟁 카페의 탐색까지 도와주었다. 물론 경쟁카페를 몰래 탐색하는 일은 내 몫이었다. 탐색이래 봤자 그 가게에서 라테 몇 잔을 데이크아웃해오는 게 전부였다. 이탈리아에서 직접 건너온 원두 판매자들이 카페를 드나들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끝이 없는 커피 테이스팅의 세계가...


오늘도 그는 예술적인 라테아트를 곁들인 커피 한잔을 건네준다. 마셔본다. 그와 눈이 마주친다. 그의 눈이 기대감으로 초롱초롱 빛난다. 부담스럽다. 잘 모르겠다는 말이 목구멍을 넘지 못한다. 아무 말이라도 해본다.


"음... 커피에서 과일맛이 나네요. 향도 신선하고, 목 넘김도 부드러워서 좋아요."


이런 아무 말이 통하기나 할까, 슬쩍 눈치를 본다. 당황스럽다. 그는 굉장히 만족한 표정이다. 덩달아 아무 말에 조금씩 자신감을 얻는다. 어차피 이탈리아에서 직접 가져온 원두니까 맛있겠지, 맛있다는 말을 다양하고 풍부하게 표현하기로 한다. 카페 인수가 완료될 때까지, 수십 잔의 커피를 테이스팅 하고 아무 말로 다채롭고 풍성하게 표현했다.


커피 테이스팅이 미각 데이터에 차곡차곡 적립되어 가던 어느 날, 정말 느껴졌다. 달콤한 과일향과 기분 좋은 적당한 산미, 그리고 신선한 원두의 생생한 맛!


그 이후로 커피쟁이가 되어 버렸다. 그의 지칠 줄 모르는 열정에 결국 동화되어 버렸다.


"난 정말 이탈리아로 가서 커피 한잔을 마셔보고 싶어. 진짜 다음에 꼭 이탈리아에 갈 거야. 그게 내 꿈이야."


허공을 보며 꿈을 꾸듯 말하는 그 말이, 머릿속 한편에 강렬하게 남아 있었다. 그 후로 10년이 넘은 어느 날, 그토록 간절했던 그 말을 대신 수행이라도 하듯 이탈리아로 커피여행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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