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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다빈 Jan 15. 2020

깨 부시고 싶어!

폭주하며 써내려 가는 글

사진 출처: 빈지노(Beenzino)의 앨범<Break> 커버.
난 자유롭고 싶어
지금 전투력 수치 111퍼
입고 싶은 옷 입고 싶어
길거리로 가서 시선을 끌고 싶어
내가 보기 싫은 **들의 지펄
닫아버리고 내 걸 열어주고 싶어
그래
할말은 하고 살고 싶어
그래
그래서 내게 욕을 하나 싶어
신경 꺼
난 사랑하고 싶어
너도 나라도 아니고 날 말야
다른 나라라도 날아가고 싶어
일이라도 때려 쳐버리고 말야


일을 하기 싫어
기계처럼 일만 하며
고장 나기 싫어
Yeah
난 그러고 싶어
그게 나쁘던 좋던 말야
그게 나쁘던 좋던 만약
내가 재벌이고 싶으면 말야
그게 돼버리고 싶단 말야
난 그냥 돼버리고 싶어
주제파악이고 뭐고 shut up
And let me be who I am
그게 다야
내 주제라는 게 있다면 화약처럼
난 그냥 깨 부시고 싶어
깨 부시고 싶어

빈지노의 <Break> 가사 중.



수박 헬맷을 쓴 마네킹이 그려진 앨범커버와 둔탁하고 빠른 리듬으로 시작되는 전주.

가사의 절반은 '깨' , '깨 부시고 싶어' 로 이루어진 다소 폭력적인 느낌의 이 곡은 몇 년 전 처음 들었을 때부터 나의 내면 깊숙한 곳을 건드렸다. 이후 스트레스가 가슴께까지 쌓여 숨쉬기 힘들 때마다 비상구급함에 넣어 둔 알약을 꺼내 먹듯 찾아 듣곤 했다. 곡을 재생 중일 때만은 일탈하는 기분이 들어 속이 시원했기 때문이다. 마치 폭주족의  오토바이를 타고 광야를 달리는 기분이랄까.

딱 요즘 같은 때, 이 노래가 생각난다.


필자는 요즘 일생 일대의 고비를 만났다고 할 수 있을 만큼 고역의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동시에 어떤 선택의 기로에 서 있기도 하다.

가까스로 부서 이동을 했으나 나의 발령 부서를 들은 회사 사람들은 축하보단 위로와 걱정의 말을 먼저 건네어 왔다.

야근도 주말출근도 많은 격무 부서라서 그렇단다. 일과 내 삶을 철저하게 분리하는 나에게는 그것도 비극이었지만, 그보다 인수인계는 개나 줬는지 일 년치의 방대한 업무 설명을 단 1시간만에 끝낸다는 게 더한 참극으로 다가왔다.

전임자는 내가 알아들을 수도 없는 용어로 인수인계서에 적힌 내용들을 빠르고 무미건조하게 읊어댔을 뿐, 그의 모든 말들은 밑 빠진 독에 붓는 쌀포대의 무수한 쌀알들처럼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왔다가 순식간에 쏟아져 나갔다.

이게 무슨 인수인계냐고 따져 묻고 싶었지만 그 분도 새로운 부서로 발령이 났으니 쫓기듯 바쁜 건 나와 같을 게 뻔했기에 그러지 못 했다. 나는 이것이 비단 개인의 문제가 아님을 안다.

자발적 선택이 좀처럼 주어지지 않는 이 조직에선 정년퇴직 때까지 이런 세태가 반복될 것이다.

결국 원하든 원치않든 이 자리에 앉게 된 나는 전년도와 전전년도에 전임자들이 처리했던 문서를 쓰레기통 뒤지듯 뒤지며 생소한 용어들을 눈에 발라야 했고 모든 공문서가 그렇듯 전개없이 형식적인 줄글들을 억지로 이해하려 애쓰며 머릿속에 욱여넣기 바빴다.

허나 일 하나도 제대로 처리할 수 없는 이런 와중에도 문서함엔 빠른 시일 내 해결해야 할 문서들이 눈처럼 쌓여만 갔다.

바쁜 분위기라 옆 사람에게 물어보는 것도 한두번을 넘어서니 슬슬 눈치가 보였고 나는 심장이 터질듯한 갑갑함을 느꼈다. 나도 모르게 조그만 욕지거리가 나왔다.


그냥 두손 두발 다 들고 항복을 외치고 싶다.

차라리 러시아어로 된 소설책을 번역하라면 더 쉬울 것 같다. 러시아어는 학원에 가면 하나부터 가르쳐 주잖아?

이렇듯 지금의 나는 기본적인 체계도 없고, 나 자신도 없는 곳에서 꾸역꾸역 버티는 중이다.


사실 삼 년 전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후에도 목표를 이뤘단 성취감 외엔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애초에 이 일에 나의 적성에 맞을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최악은 아니겠지라고 착각했을 뿐, 자유 성향의 나에겐 맞지 않을 옷이란 걸 충분히 인지하지 못 했다.

어디까지 버틸 수 있나 거진 삼 년 간을 인내 해 왔으나 역시 안 맞는 옷을 오래 입고있을 순 없는 것 같다.

빈지노의 가사처럼 ( 'let me be who I am') 이제 나는 내가 되고 싶다.

마음껏 나의 역량을 발휘하고 내가 가진 자양분으로 사람과 세상을 더 풍요로이 하는 데에 이바지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조만간에 그럴 수 있기를 , 그럴 맘적 준비가 되기만을 바라며 열심히 나를 찾는 작업에 매진해야 겠다.

일단 오늘은 <Break-beenzino>좀 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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