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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돌고래씨 Jan 21. 2022

별똥별과 얼음땡

 그림책 [나의 아버지]


   그림책 [나의 아버지]는 [나의 엄마]와 짝꿍 책이다. 초판일 또한 제목과 딱 들어맞는 오월 팔일이다.

엄마 책은 샛노랑, 아버지 책은 샛빨강이다. 책에 손을 갖다 대는 것만으로도 둥근 얼굴들이 떠오른다.   

   

  그림책의 이야기는 표지에서부터 시작된다. 나의 엄마는 나이 든 엄마와 나란히 서서 손을 잡고 있는 딸의 모습이 표지에 그려져 있다. 나이 든 엄마가 그려진 세로형 띠지를 벗겨내면 그 아래 모습을 숨기고 있던 어린 여자 아이가 늙은 엄마의 자리를 대신한다. 이번엔 어린 딸과 엄마가 나란히 서서 손을 잡고 있다.      


  [나의 아버지]는  커다란 사람의 몸을 오려내고 그 안에 작은 아이를 겹쳐 그려놓았다. 보는 관점에 따라 그림은 달리 보인다. 다 자란 어른의 몸에 어릴 적 아이가 여전히 살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아버지가 아이를 온몸으로 든든하게 지켜주는 것처럼도 보인다.    


  

   그림책 속 아버지들은 아이들에게 가르쳐주고 싶은 것들이 많다. 아이들은 아버지에게 매미처럼 달라붙어 어떻게 자전거를 타는지, 수영을 잘할 수 있을지, 연을 날리는 법, 물수제비 멋지게 뜨는 법을 배운다. 어느새 모든 것에 능숙해진 아이들은 더 이상 아빠를 부르지 않는다. 아빠가 여전히 그 자리에서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뒤돌아 확인하지 않는다.     

 

  [나의 엄마]는 ‘엄마’라는 단어 하나만으로 이루어진 책이다. 단어 하나에 담긴 세계가 이렇게 클 줄은 미처 몰랐다. 단 두 글자로 책과 마음을 빈틈없이 채워나간다. 이에 반해 나의 아버지는 자꾸만 멈춰 서서 빈 공간을 더듬게 만든다.


  아빠와의 시간은 어렸던 그 시절, 정지된 사진 속에서만 투명하게 반짝인다. 별똥별과 불꽃놀이의 속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아빠와의 시간에 무한정 얼음땡을 외치고 싶다.    


툭 건드리고 ‘얼음땡’

툭 건드리고 ‘얼음땡’     


  화요일엔 아빠와 함께 부산을 다녀왔다. 우리가 가는 부산엔 자갈치 시장도 국제시장도 없다. 네모나고 새하얀 건물들 속으로 잠시 들어갔다 쏙 빠져나온다. 도서관 생활자인 나처럼, 아빠는 병원 생활자이다. 창원에 있는 작은 동네 의원부터 상급병원까지 모든 병원을 섭렵하며 수시로 몸과 소통하는 편이다. 각 병원의 주차장 명당부터 시작해, 병원별 분위기, 최신 의료기기 분포도, 간호사들의 성향, 의사들의 근황, 오후 진료를 오전에 끝마치는 비법, 보호자 없이 수면내시경을 찍는 방법 등 모든 것에 정통하다.  

    

  처음 아빠를 따라 대학병원을 갔을 때, 슈퍼맨처럼 날아다니며 각기 다른 과에서 진료예약과 수납을 하는 모습을 보고 놀란 기억이 있다. 각 병동의 위치와 분과별 도면도를 입체적으로 그려낸다. 그러한 이유로 이따금씩 나의 병원행에서도 아빠의 역할은 빛난다. 일상을 시냇물처럼 졸졸거리며 살다가 병원 문을 열고 들어간다.


  나의 몸이 해부학적인 요소들로 분해될 때면 정신이 퍼뜩 든다. 낯선 천장을 보고 하염없이 누워 기다린다. 가장 연약한 자세로. 식겁할만한 주삿바늘이 내 몸으로 들어오는 것을 초음파 영상을 통해 생생하게 지켜본다. 일상과 비일상에 경계에 놓인 순간들. 피부과를 시작으로 산부인과, 유방외과까지 시경계를 넘은 병원행은 차라리 나들이라 생각하자.


  대학 병원에서 더 효과적인 건선 치료를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피부과 의사의 말을 들었다. 여자라서 가지고 있는 것들에 대한 정기검사와 추적검사의 예약 일자는 꾸준히 갱신된다.


  혼자서도 괜찮을 테고, 남편의 휴가를 써도 무리는 없겠지만. 다섯 살 꼬마처럼 겁이 나는 결정적인 순간에는 아빠에게 전화한다.

  “아빠, 병원 같이 갈 수 있어?”

아빠와 함께라면 무엇이든 그렇게 심각하거나 무겁지만은 않다. 오고 가는 길 내내 귀를 틀어막고 싶은 아빠의 잔소리는 산처럼 우뚝하고,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볕은 너무 노곤해서 정신을 차리고 있을 수 없지만, 아빠의 그 말만 들으면 세상을 너무나 잘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은 피곤한 안도감이 밀려온다. 그러면 무엇이든 괜찮아진다.      


  그와 함께 하는 시간들이 과거에만 멈춰 있지 않으면 좋겠다. 우리의 시간은 언제나 현재 진행형이길 바란다. 어쩌면 함께하는 시간이 별똥별과 불꽃놀이 같다고 생각하니 이 나이를 먹고도 수시로 아빠를 불러대고 비벼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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