깃털 없는 기러기 보르카 -존 버닝햄
영국 동부 해안 근처 늪지에 사는 플럼스터 부부는 둥지를 틀고 알을 낳는다. 부인은 알을 품고 플럼스터 씨는 둥지 근처에서 망을 본다. 대단한 임무를 띈 것 마냥 누구든지 가까이 오면 쉿쉿 소리를 내며 쫓아낸다.
시간이 지나 하나 둘 알들이 깨고 잔털이 뽀얀 새끼 기러기들이 태어난다. 부부는 반짝이는 이름을 아기들에게 지어준다. 프레다, 아치, 제니퍼, 오스왈드, 티모시 그리고 보르카. 모든 기러기들은 부부를 닮아있다. 부리도, 물갈퀴도 날개도, 하지만 어쩐 일인지 보르카에겐 깃털이 하나도 없다.
엄마는 보르카를 위해 얼핏 보면 깃털처럼 보이는 회색 스웨터를 만들어 준다. 다른 형제자매들과 얼추 비슷한 모양새를 갖추지만 처음 수영 연습을 하던 날 보르카는 완전히 좌절한다. 포근했던 스웨터가 물에 흠뻑 젖어버리면서 다른 기러기들의 놀림을 받기 시작한다. 이제는 수영 연습도, 비행 연습도 무리와 함께 하는 어떤 것에서도 투명한 존재가 되어버린다.
심지어 겨울을 나기 위해 온 가족이 하늘로 날아오르는 그 순간에도 보르카는 뒤로 물러선다. 나는 법을 배우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보르카의 부재를 알아차리는 가족은 아무도 없다.
[깃털 없는 기러기 보르카 -존 버닝햄]
남들과 다르다는 것, 같지 않다는 것은 애초에 완성될 수 없는 퍼즐 조각을 가지고 퍼즐을 맞추려고 애쓰는 것이다. 애써 다 맞춰보아도 결국 구멍이 숭숭 나 있고, 다른 어떤 것으로도 채워질 수 없는 결핍이다. 어린 시절 어긋난 기억에서부터 어른이 된 지금까지 숨은 그림 찾기 게임처럼 남들과 다른 점,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은 너무나 두드러지게 보인다. 적어도 나에게는 말이다. 포기하지 않았어도 되었을 것들, 다른 것들로 채워나갔을 수도 있을 것들을 어린 나는 너무 쉽게 놓아버리고 목록에서 지워버렸다.
중학교 졸업 사진을 찍는 날이었다. 건선이 심해져서 어느샌가 교복 치마 대신 체육복 바지를 입고 다녔었다. 증명사진만 찍고 단체 사진 촬영 시간 동안 이리저리로 도망 다녔다. 언젠가 찾아본 졸업 앨범 속 단체사진에는 내가 없다. 익숙한 얼굴들 속에서 내 얼굴만 지우개로 지운 듯하다.
어라, 고등학교 졸업 앨범에는 있다. 친구들과 함께. 그날따라 나를 집요하게 쫓아다니던 친구의 얼굴이 생각났다. 교복 치마를 입지 않아 사진을 찍지 않겠다는 나의 말에 친구는 말했다.
“괜찮아 괜찮아! 두 번째 줄에 서면 되잖아.
같이 찍자”
"아... 그럴 수도 있구나. "
내 앞에선 크고 새까만 구멍이 친구의 말 한마디에 메워졌다. 청포도 사탕처럼 밝은 연두가 되어 입안에서 시큼한 단 맛이 난다. 깜깜한 방은 그저 스위치를 하나 딸깍 눌러서 환한 낮이 된다.
스위치를 누르는 그 작은 손가락의 힘만으로 가능한 일, 딱 그만큼만 용기를 내어 앞으로 나아가는 일.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내 앞에는 크고 작은 구멍들이 가득하다. 어쩌면 뛰어넘을 수도 있을 것도 같고, 딱 한 발자국 차이로 새까만 구멍 아래로 빠져버릴 것도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멍을 폴짝 뛰어보는 대담함, 어쩔 수 없이 빠져버려도 바득바득 기어 나올 수 있는 끈기, 아니면 소리쳐 누군가를 불러보는 용기를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크고 작은 구멍들을 피하느라 너무 애쓰지 말자. 어쩌면 두려움의 크기만큼 구멍은 점점 자라나고 깊어질지도 모른다. 청포도맛 사탕 같은 마음으로 구멍과 마주하기를. 입 안에서 양볼 사이로 굴릴 수 있는 알사탕의 크기만큼, 옆으로 살짝 밀어낼 수 있는 돌덩이만큼만 근심하고 나아갈 수 있기를. 구멍 앞에 한참을 주저앉기보다는 구멍을 지지고 볶는 노련한 우리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