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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치유 컴패니언 Jan 14. 2023

내 안의 멋을 기르는 유전자 스위치 켜기

                        변화하려면 마음을 열고 자신의 내적 경험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베셀 반 데어 콜크(Bessel Van Der Kolk)-     


‘멋있다’라는 말은 듣기만 해도 뿌듯한 기분이 든다. 사전에는 ‘매력이나 품격이나 운치를 자아내는 상태에 있거나 참된 요소를 바탕으로 가진 상태’라고 설명되어 있다. 사람들은 연예인의 몸 밖에 드러난 치장이나 자세를 보고도 ‘멋있다’라는 말을 한다. 그 멋의 느낌은 오래가지 않고 일시적이다. 오히려 자주 보면 싫증이 난다. 반면에 어떤 사람의 내면에서 풍겨 나오는 멋은 사라지지 않는다. 보면 볼수록 더 가까이하고 싶은 멋이다. 편안하고 따뜻하고 친절하고 즐겁고 기대고 싶은 멋이다. 이 멋은 그 사람이 드러내려고 애써서 되는 게 아니다. 저절로 그 사람의 내면에 숙성된 마음에서 은근히 피어오르는 것이다. 점잖은 척, 공감하는 척, 무엇이든 수용하는 척하면서 기교를 부릴 수는 있다. 그런다고 해서 멋짐의 향기는 나지 않는다.  

    

내면의 멋은 자신이 가꾼 것만큼만 드러나기 때문이다. 나이 50에는 자신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현재 상태를 최대한 유지해야 한다. 돈을 벌어야 하고 자신의 건강도 챙겨야 한다. 부모님 부양, 자녀 교육, 취직, 결혼도 책임져야 한다. 일터에서 위·아래와 양옆의 사람들과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방패와 창을 들고 겨눈다. 자신의 에너지와 주의(attention)는 온통 바깥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쓰인다. 자신의 몸은 야생에서 살아남기 위한 비상 상태로 긴장되어 있다. 자신의 얼굴에는 투쟁과 도피의 긴장감이 드러난다. 자신은 억지로 안 그런 척 가면을 쓴다. 얼굴에 주름살을 펴기 위해 영양제를 바른다. 자신의 머리카락의 굵기가 가늘어지고 한 묶음씩 빠지는 머리카락을 보면서 울적한 마음이 올라온다. 예전의 자신의 멋짐이 하나둘 사라지는 것이 안타깝다.          


사람들은 나이 50이 되면 ‘잃는 것’이 많다. 그중에서도 자신의 겉모습은 나이가 들수록 힘과 에너지, 목소리, 피부, 머리 스타일이 바뀌어 간다. 자신의 멋이라고 여기던 것들이 하나둘씩 사라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 60 이전에 삶을 마감하던 시대에는 바뀐 자신의 겉모습을 오래도록 보지 않아도 되었다. 수명이 늘어나면서 예전 사람들이 경험하지 않았던 자신의 겉모습을 보게 되는 것이다. 최근의 연구들은 사람이 주어진 환경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생존의 기간이 달라진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자신의 생존 기간이 늘어난다는 것은 주어진 환경에 자신이 적절하게 잘 대처하기 때문이다. 이는 자신이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를 적절하게 켜고 끄는 일을 잘한다는 의미다.    

       

50 이후 남은 자신의 삶이 건강하고, 즐겁고, 평안 하려면 환경에 잘 적응 해야 한다.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통제할 수 없는 것은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기꺼이 받아들인다는 것은 포기한다는 것이 아니다.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열정을 갖되, 지나치게 매달리지 않아야 한다는 뜻이다. 자신이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 자신의 마음에서 올라오는 생각, 감정, 욕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친절하게 받아주고, 안아주기를 반복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마음속에서 상실의 마음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순간이 온다. 자신이 그 상실의 경험을 있는 그대로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이 주어진 환경에 잘 적응하는 것이다. 내면의 멋은 그럴 때 드러나기 시작한다.   

        

자신에게 다가온 상황 그 자체를 통제할 수 없더라도 그 상황을 어떻게 다룰지는 통제할 수 있다. 자신이 통제할 수 있다는 말은 자신이 하는 선택에 책임(responsibility)을 진다는 것이다. 책임진다는 것은 맡은 역할을 해내야만 하는 부담이나 짐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에게 다가온 상황을 신중하게 숙고(熟考)해서 가장 적절하게 대응하는(response) 능력(ability)이 있다는 말이다. 자신의 멋은 바로 이런 책임에서 나온다. 사람들은 자신의 삶에서 주어진 환경을 탓하고 잃어버린 것에 대해 분노하고 절망에 빠지기도 한다. 이런 시간에 자신의 내면의 멋을 기를 수 있다. 내면의 멋은 자신이 지금 처한 혹은 가진 조건과 상관없이 기를 수 있다.      

내면의 멋을 기르면 그것을 잃어버릴 염려도 없다. 누가 그것을 가져가지도 못한다. 내면의 멋은 겉으로 드러내는 가면이 아니라 저절로 올라오는 아름다운 향기이다. 겉모습의 멋을 부리기 위해 온 신경을 곤두세울 필요도 없다. 누가 자신에 대해 어떤 평가를 하는지 귀를 쫑긋거릴 필요도 없다. 남의 평판에 자신을 맡기지 않는다. 남들과 멈출 줄 모르는 비교 경쟁에서 벗어날 수 있다. 내면의 멋을 기르면 남의 인정과 칭찬, 그리고 관심에 목말라하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 자신 내면의 지금 이 순간의 경험과 실시간으로 소통하기 때문에 외롭지도 않다.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이 강해진다. 언제나 든든함을 느낀다.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은 자존감이 높다는 말이다. 자신이 삶의 주인으로 흔들림 없이 살 수 있다.   

        

나이 50은 내면의 멋을 길러나가야 하는 시기다. 어떤 사람들은 남들보다 한 발짝이라도 더 앞서는 것이 행복으로 가는 길인 줄 착각하고 있다. 시험을 치르고, 외모에 신경 쓰면서 돈과 권력과 지위의 달콤함에 젖어 허우적거리기도 한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자신과 주위 환경과 조건들이 바뀐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신의 행복을 절대적으로 보장할 것 같았던 지금까지의 외적인 성취도 환경과 조건이 변하면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자신의 내면과 밖의 환경을 어떻게 바라보고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자신의 삶의 방향을 바꿀 수 있다. 자기 자신이 만족하고 즐기는 삶과 늘 채우지 못해 허덕이는 삶, 불행한 삶을 선택할 수 있다. 내면의 멋을 기른다는 것은 지금 이 순간 자신의 앞에 다가온 환경과 내면의 경험을 피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후성유전학에서는 노화를 포함해서 건강, 질병에 유전자 자체보다 더 많이 관여하는 후성 유전체를 연구한다. 후성유전체는 유전자를 활성화 또는 비활성화시키는 역할을 하는 스위치를 조절한다. 유전자는 활성화되어야(스위치가 켜져야) 제 기능을 하고 활성화되지 않으면 제 기능을 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이 취약한 유전자를 많이 물려받았더라도 자신의 취약한 유전자의 스위치가 꺼지면 자신은 해로운 영향을 받지 않는다. 반면에 어떤 사람이 건강한 유전자를 많이 가지고 있더라도 건강한 유전자의 스위치가 켜지지 않으면 그 혜택을 볼 수 없다. 후성유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한 개인의 생리·심리·환경적 요인이라고 한다. 자신이 자신의 후성유전체에 긍정적 영향을 주는 방법은 자신의 건강한 생활 양식과 심리적 건강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매 순간 자신 앞에 찾아오는 삶의 과제를 만난다. 자신이 심리적 건강 상태를 유지하려면 그 과제를 직면해야 한다.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경험(감각, 생각, 감정, 욕구)을 분명하게 알아차리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이 지금 이 순간 내면의 경험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작업은 후성유전체에 영향을 준다. 자신의 몸과 마음에 생리적·심리적 유연함과 평안함을 가져온다. 내면은 평화로움과 호기심, 그리고 평정심으로 채워진다. 이것이 자기 자신의 ‘내면에서 빛나는 멋’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의 내면에 잠자는 유전자를 깨워 내면의 멋을 기를 수 있다. 내면의 멋을 채울수록 자신의 외면의 멋도 새롭게 볼 수 있는 마음의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  

    

나이 50 이후 사람들이 추구하는 삶은 만족과 즐거움, 의미 있는 삶이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의 삶의 균형이 필요하다. 내면의 멋을 기르기 위해 일상생활을 떠난 금욕생활과 수행 생활은 이 책에서 말하는 50 이후의 삶을 안내하는 방향과 다른 차원이다. 사람은 내면의 멋과 함께 외면의 멋도 같이 길러야 한다. 내면의 멋을 기르기 위해 속세와 연(緣)을 끊거나 신앙생활, 봉사활동에 빠져버리는 사람이 있다. 배우자와 자식, 부모, 친구들과 하루아침에 바로 관계를 단절한다. 반면에 외면의 멋에 빠지는 사람들도 있다. 지나치게 돈과 명예, 힘 과시를 위해 물불 가리지 않고 부모 형제, 친구 간의 연(緣)도 모두 끊어버리고 사는 사람이다. 지금까지 자신을 위해 옆에서 지켜준 사람들에 대한 눈곱만큼의 미안함과 고마움을 느끼지도 못하는 감정 불감증 환자이다.           

내면의 멋은 누구나 기를 수 있다. 내면의 멋을 기르는 것은 나이가 들면서 상실하는 허전함과 불안함, 두려움을 메꾸기 위함만이 아니다. 자신의 삶을 좀 더 풍요롭고 평화롭고 여유롭게 꾸미고 싶기 때문이다. 50 이후를 준비하면서 돈도 필요하다. 소일거리도 찾고 건강도 잘 챙기고 있어야 한다. 배우자와 가족, 친구들과의 관계도 돈독히 해나가야 한다. 외롭고 쓸쓸한 노후를 맞이하지 않기 위해서다. 50 이전까지는 외면의 멋을 찾기 위해 달려왔다면, 이제부터는 내면의 멋을 길러 삶의 균형을 잡아야 할 시기이다. 자신의 내면에서 올라오는 매 순간의 경험과 온전하게 소통할 수 있다면 내면의 멋은 저절로 길러져 향기가 더 짙어질 것이다. 내면의 멋은 자신과 소중한 사람, 그리고 세상을 향한 행복 호르몬이다.   

        

(Tip!) 내면의 멋을 기르는 유전자 스위치를 켜는 법

매 순간 내·외부에서 다양한 자극이 온다. 이럴 때 자신도 모르게 자동반응(reaction)을 하게 된다. 내면의 멋을 기르는 유전자에 스위치를 켜기 위해서는 숙고 반응(response)을 해야 하다. 숙고 반응을 위해서는 먼저 의도(intention)를 내어 자동반응을 하려는 순간을 알아차리고 ‘멈춤’을 해야 한다. 이 멈춤은 자동반응을 하지 않기 위한 심리적 거리두기이다. 손뼉치기, 손목에 고무줄 튕기기, 꼬집기, 기지개 켜기, 발가락 꼼지락 하기 등의 감각 자극을 사용할 수도 있다. 다음은 지금 이 순간 자신의 내면에서 무엇이 일어나는지, 어떤 경험이 일어나는지 관찰한다. 불쾌한 자극과 경험에 저항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let-in). 유쾌한 자극이나 경험을 붙잡지 않고 흘려보내면서 놓아준다(let-go). 매 순간 명료하고(clear) 개방된, 활짝 열린 상태인 있는 그대로 존재한다(let-be). 지금 이 순간에 자신이 어떤 대응을 할 것인가는 평정심과 여유로움으로 당당하게 선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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