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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리틀 Sep 23. 2022

내가 다시 술을 마시면 개다, 개

멍멍 왈왈왈

내가 술을 마시는 날은 일 년에 두 번이 있을까 말까 하다. 회식에 가도 한잔 이상은 절대 마시지 않고, 평생 친구와 술을 마신 것도 한 손안에 꼽는다. 애초에 약속을 자주 잡지도 않거니와 친구들도 나를 술친구로는 적절치 않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사실 나도 술자리를 좋아했다. 가끔 집 가는 길에 가벼운 술 한잔이 생각날 때도 있다. 그런데도 술 생각이 들면 요즘 말로 '뇌에 힘 딱 주고' 참는다. 술을 안 마시는 것보다 술을 한잔만 마시기가 어려운 것을 알기에 그냥 집으로 발걸음을 돌린다.


내 인생에 손꼽힐만한 모든 문제들은 술에 취했을 때 일어났다. 취했을 때에는 감정이 예민해지고 행동은 제어되지 않는다. 본능에 충실해지며 한마디로 내 몸이 내 몸이 아니다. 부끄럽지만 나는 주사가 있다. 술에 취하면 어느 순간 필름이 끊겨 술을 더 들이붓고, 책임지지 못할 행동들을 하곤 했다. 두어 번 이런 실수를 하고 나니 술이 싫어졌다. 술 냄새조차도 싫다.


술을 마신 다음날 찾아오는 숙취는 정말 괴롭다. 숙취와 함께 어젯밤의 행동으로 부끄러워하며 보내는 다음 날이 아깝다. 필름이 끊긴 나는 내가 어제 무슨 말을 했는지, 무슨 짓을 했는지를 걱정해야 한다. 같이 술 먹은 동료에게 실수한 건 없는지를 묻고 그 사람의 표정을 살핀다. 속은 쓰리고, 배는 나오고, 피부는 건조하고, 기분은 찝찝한 이 모든 것들을 떠올리면 술 생각은 저절로 사라진다.


술자리가 파하고 난 뒤 공허한 느낌도 싫어한다. 잡히지도 않는 택시를 부르다 술냄새가 벤 사람들과 함께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집에 들어가 한 소리 들을 걱정은 덤이다.


술값은 꽤 비싸다. 소주값이 5000원이니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취한 나는 보통 종잡을 수 없는 행동을 한다. 취중의 내가 돈이 안 드는 행동만 골라해줬으면 싶지만 그러기는 쉽지 않다. 집에 돌아갈 택시비며, 술 마시다 잃어버린 내 팩트, 또 어느 날처럼 깨 먹은 자동차 앞유리값까지. 술은 생각보다 돈이 많이 드는 취미다.


난 언제나 예측 가능한 삶을 살고 싶다. 내 삶이 내가 예측 가능한 범위 내에 있어줬으면 한다. 맨 정신으로는 어떻게든 해보겠지만 취중의 나를 상대할 자신은 없다.


술. 술로 인해 인생이 망가진 사람도 얼마나 많을까. 음주로 인한 심신 미약을 주장하는 9시 뉴스 속 누군가도. 만취 상태로 발을 헛디뎠다 불구가 된 사람도. 멀리 나가보지 않고 술이 일찌감치 싫어진 나에게 감사한 요즘이다. 술만 멀리해도 인생의 리스크가 50%는 줄어들 것이다.


마지막은 탈무드의 말을 빌려야겠다.


여성이 술을 한 잔 마시는 것은 매우 좋은 일이다.
두 잔 마시면 그녀는 품위를 떨어뜨린다.
석 잔째는 부도덕해지고,
넉 잔째는 자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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