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직적 사고 vs. 수평적 사고
극과 극으로 다른 마인드 차이
모든 사람이 각각 생긴 모습만큼 천차만별의 마인드로 살아가지만, 한국 사람이면 누구나 어느 정도 익숙한 마인드도 있다. 그것은 한국 전통 사고방식이 뿌리내려 형성된 사고방식이다. 미국에서 자라는 한인 아이들 마음에 뿌리내리는 마인드는 한인 부모로부터 오는 것만이 아니라 미국 문화 또한 큰 영향을 끼친다.
문제는 두 문화, 두 마인드의 차이가 극과 극으로 다르다는 사실이다. 한국사람과 미국 사람의 마인드 차이를 여러 가지를 들어 설명할 수 있겠으나 그중 굵직한 줄기 하나를 뽑으라면 나는 가장 먼저 수직적 문화와 수평적 문화 차이를 말하고 싶다.
수직적 문화는 군대문화나 한국의 유교문화, 혹은 인도 카스트 계급 문화처럼, 사람마다 급이 있고, 높은 사람은 섬기고 존대하며 낮은 사람은 하대하고 부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문화다. 인도나 한국과 같은 나라의 언어를 살펴보면 상대방의 나이나 지위, 사회적 계급의 높낮이에 따라 존대하고 하대하는 언어 표현이 종류도 다양하게 발달해 있다.
반면 수평적 사고방식이란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는 평등주의를 바탕으로 모든 사람이 행복을 추구하고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문화를 말한다. 미국의 수평 문화는 그 문화를 담고 있는 미국식 영어를 들여다보면 확연하게 느낄 수 있다. 얼마나 사적인가 공적인가 그 상황과 분위기에 따라 형식이 조금 달라지는 것 외에 존중이라는 측면에 있어서는 상대가 누구든지 달라지는 것 없이 참 공평하다.
서구식 수평적 사고 - 계몽주의에서 평등주의까지
서구 사회 특유의 수평적 사고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17-18세기에 걸쳐 '계몽주의'가 유럽의 정신을 압도했던 '계몽시대', 즉 '이성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미신보다는 이성을, 믿음보다는 과학을'이라는 슬로건으로 대표되는 계몽주의는 인간의 이성과 합리성, 인간 개인의 권리를 강조하는 이념 운동으로서, 사람들로 하여금, 군주제부터 종교 권력까지 지금까지 그냥 맹목적으로 받아들이고 따랐던 것들을 다시 뒤집어 생각해 보라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며, 개인의 기본적인 권리와 평등한 기회 부여를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이러한 사상은 개인의 자유와 평등을 중요시하는 자유주의와 사회주의의 발달로 이어졌다.
특히 미국에서 '자유와 평등'의 가치는 미국이라는 국가 시스템을 형성하는 기본 이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어마어마하다. 미국 건국이념의 결정체라 할 수 있는 1776년 미국 독립 선언서는 '생명, 자유, 행복 추구권'을 포함한 모든 개인에게 동등하게 부여되는 권리와 기회를 선언한 바 있는데, 이는 유럽에서 시작된 계몽주의에 뿌리를 둔 미국식 평등주의 원리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고 미국이라는 나라가 시작부터 '평등'이 완성된 나라는 결코 아니다. 미국은 노예제도라는 모순을 안고 있었고, 인종 차별, 성차별 문제등 다양한 불평등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20세기 중반, 시민권 운동과 인권 운동의 촉발로, 미국 내에서의 평등에 대한 시민 인식이 더욱 깨어나 발전하면서, 더 넓고 다양한 영역에서 더 많은 평등과 기회를 요구하는 투쟁이 계속되어 왔다. 그 결과 '평등 추구'는 국가 전체의 더욱 중요한 이념이 되었고, 나라 문화 구석구석 불평등 문제가 도사리는 곳은 없는지 사람들이 예민하게 촉각을 곤두세우고 살아간다는 느낌마저 든다.
다양한 문화 언어적 배경을 가진 이민자들로 구성된 나라인 미국이 다문화주의 다양성을 강조하는 문화를 채택하고 있는 것도 그 중심에는 '평등주의' 원칙이 있고, 대다수 미국인들은 이 원칙이 사회 통합 촉진에 기여하며, 모든 시민이 동등한 기회를 가지고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을 때, 사회는 더욱 안정되고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룰 수 있을 거라 믿는다. 또한, 이 '평등주의' 원칙은 어떤 출신 국가 종교 인종 문화 배경을 가진 사람도 다양성을 존중받고 법 앞에서 동등하게 대우받고 평등한 기회 권리를 가지는데 법적 근거가 된다. 미국에서는 인종, 성별, 장애에 대한 차별 금지 법률들이 시행되고 있고, 사회적 불평등에 대해 대응하는 정책들이 개발 시행되고 있는 등, 평등주의가 법률로 잘 정립되어 있고 끊임없이 진화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한국식 수직적 사고
한국의 조선시대식 계급 체제는 무너진 지 오래고, 유교 문화도 그 빛이 바래고 있으나 사람들의 사고방식 속에 남아 있는 수직문화의 잔재는 아직도 그 뿌리가 깊다. 일제 강점기를 거치고 대한민국이 건립되고 서양문화의 큰 영향을 받으며 현대화를 이루는 동안 한국 문화가 여러 가지 면에서 크게 변화했으나, 아직 수직적 사고방식은 우리 문화 안에 무시할 수 없는 축을 이루고 있다.
식민지가 되어 비굴했던 일본 압제의 시간, 동족상잔의 상처로 얼룩진 한국전쟁, 전쟁 직후 가난을 이겨내야 했던 시절, 무서운 각하 눈치 보며 숨죽여야 했던 군부독재의 시간, 그리고 끊임없는 한반도의 정치적 긴장과 경제적 위기의 순간들을 거쳐 오면서, 한국 사람들의 몸에 밴 수직적 사고방식은 더 교육받고 더 안정적인 자리로 올라서야 한다는 교육열로, 선진국 반열에 한국의 이름을 올리겠다는 국가의 의지로, 국가경제를 위해서 시키면 시키는 대로 몸 바치는 노동력과 조직력으로 빛을 발하기도 하였다.
쓰나미처럼 밀려들어오는 서구 문화의 영향과, 최첨단 미래로 가는 고속의 사회 변화 속에서도, 수직적 사고를 과감히 깨고 나올 수 없었던 또 한 가지 이유는, 공산주의를 정치 이념으로 내세운 북한과 전쟁을 치르고 이후 기나긴 시간 동안 긴장 속 적대 관계를 이어오면서, '평등'이라는 가치는 공산주의자나 그와 유사한 좌파 사회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기존의 사회시스템과 안정된 사고 문화를 위협하는 위험한 사고로 인식되고 쉽게 혐오가 조장되는 경향이 있어, 당당하고 자신 있게 차별을 문제 삼고 평등을 주장해 나가기 쉽지 않은 사회 분위기도 한몫하는 것 같다.
더 발전적인 방향으로 진화해 나아가지 못하고 고인 물 안에서 부패해 버린 수직적 사고가, 재벌갑질, 상사 갑질, 손님 갑질 등의 형태로 상대를 모욕하고, 보는 사람의 미간을 찌푸리게 하는 냄새나는 서열주의 차별주의를 종종 드러내곤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갑질 일화들을 목격하며, 나는 이 정도까지 수직적 사고에 찌들진 않았어라고들 생각하곤 한다.
수직적 사고가 수평적 사고와 만날 때
자신을 전통에 맞서는 평등주의자나 자유주의자로 여기는 한국인도 평등주의 수평 문화의 본고장인 미국으로 건너오게 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수직적 사고가 깊게 밴 자신의 실체를 발견하게 되고야 만다. 수직적 수평적 이 두 가지 사고방식의 가장 큰 차이는 나보다 어린 사람, 혹은 못하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을 상대할 때 적나라하게 나타난다. 예를 들어, 영유아를 대하는 부모들을 관찰해 보라. 미국인 부모들의 경우 어린아이도 인격체로 대하며 함부로 아이의 손에 쥐어져 있는 것을 뺏는 일도 없고, 신체를 억압하여 행동을 제지하는 일도 없다. 매사에 말로 설득하며, 개인의 의사를 존중하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수직문화 속에서 나고 자란 한인 부모들의 입장에서는 아이들의 의사나 감정, 신체를 존중하는 것이 어렵다. 이민 초기 역사에서, 이 사고 문화 차이를 이해하지 못해 아이에게 손찌검을 하다가 혹은 얼마나 자랐는지 확인한다며 주요 부위를 만지다가 학교에서 퇴출당한 한국인 교사와 아이 일기장을 읽고 고발당해 체포되었던 한인 아버지, 할아버지들이 너무나 많았다고 한다. 물론 누구 못지않게 자식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이 크고 아이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사람들은 많다. 하지만, 많은 경우 아이의 의사를 부모의 기대가 억압하고 있으며,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을 하면 차분하게 말로 대화를 이어가기보다 윽박지르거나 몸이 아이를 먼저 제지하는 경향이 있다. 한국인 부모의 행동은 아이가 존중해야 할 하나의 개별적 인격이라는 생각보다, 수직문화 안에서 가장 하위 서열이며, 내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나의 일부분이라는 수직적 사고에 뿌리를 둔 무의식이 행동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나의 분신 혹은 소유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이가 나의 자존심도 되고 미래도 된다. 내 아이가 다른 아이들보다 못하다고 생각되면 내 자존심이 상처 입고, 아이가 기대하는 대학에 가지 못하고 번듯한 커리어를 이루지 못하면 내 미래가 무너져 내린 듯 억장이 무너진다.
한국인 부모에게 자녀가 이런 의미라는 것을 반 미국인이 된 자녀는 이해할 수 없다.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식 교육을 받은 아이는 자신이 존중받아야 할 개별적인 존재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자녀가 가진 평등주의와 개인주의는 부모가 가진 수직 주의, 집단주의와 늘 부딪치게 된다. 서로를 이해하기 어렵고, 시간이 지날수록 갈등의 골은 깊어진다. 주변에 자살을 시도했다는, 혹은 마약에 빠져있다는 한인 아이들의 이야기가 끊임없이 들려온다. 남의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너무나 많은 미국 내 한인 가정이 겪고 있는 고통이다.
부모에게 최악의 위협, 제 목숨을 걸고 고통을 호소하는 아이들의 마음은 어떨까. 얼마나 이해받지 못한다고 느꼈기에, 얼마나 이해할 수 없었기에, 그렇게 절망적이라고 느꼈을까. 한국에서 살아보지도 않은 아이들을 변하라고 할 수 있을까. 이런 아이들에게 수직 사고, 집단주의 사고를 하는 부모에게 맞추라고 윽박지르는 것은 너무 가혹한 일이 아닐까.
그나마 더 성숙한 성인인 부모가 이해하고 변해가야 하는 수밖에 없다. 그래야 자녀가 한국문화를, 한국사람을, 나아가 스스로를 혐오하지 않고, 부모라는 안전한 지붕 아래 인종 차별과 외모 비하에 긁힌 마음을 보호받으며 편안히 숨 쉬고 산다. 미국에서 자식을 키우며 사는 부모는 자신의 행동을 되돌아 성찰해 보지 않을 수 없다. 내가 하는 생각과 행동들이 어떤 문화, 어떤 마인드, 어떤 가치관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지, 내 방식을 고집하는 것이 얼마만큼의 가치가 있는지 따져보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익숙한 한국식 문화와 자녀에게 익숙한 미국식 사고방식을 조율 융합해 나가면서, 제3의 퓨전 문화를 창조하며 살아가는 한국계 미국인 교포가 되어간다.
박쥐처럼 이 나라 저 나라 혜택을 다 누리며 오가는 미국 교포에 대한 혐오의 목소리가 높은 것도 알고 있지만, 그 또한 그 먼 거리를 자주 쉽게 오갈 수 있는 상황을 갖춘 사람들의 이야기일 뿐이다. 대부분은 한국에 있는 그리운 부모님 친지 얼굴 보러 몇 년에 한 번 다녀오는 비용에도 부담을 느끼며, 미국에서 가정생활, 자녀와의 관계마저 쉽지 않은 복잡하고 어려운 사고 문화의 정글을 힘겹게 끊임없이 헤쳐나가야 하는 운명에 처한 내 앞가림이 절박한 사람들이다.
내 방식을 버리고, 새로운 생각의 습관을 형성하는 일이 얼마나 힘든 도전인지. 내 무의식적 자아의 틀을 마련한 기존의 사고방식/문화를 깨고, 새로운 문화, 새로운 사고방식을 건강하게 접합시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럽도록 어려운지. 하지만 자녀를 위해 자신을 바짝 낮추고 '한국인의 의지'를 발휘하여 그 어려운 일을 해내고 자녀와 좋은 관계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마음을 열고 자녀가 하는 말을 들을 수 있기 위해서. 내 자녀의 행복과 성공적인 삶을 위해, 아이의 마인드를,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고 지지할 수 있으려고 발버둥 치는 것이다.
미국 문화가 한국과 비교해서 많이 다르다는 점, 그 큰 원인이 사고방식, 마인드의 차이에 기인한다는 것을 아는 것이 한국인으로 빚어진 나를 이해하고, 같은 한국인들 사이에 형성된 세대 차, 지역 차를 이해하고, 한국과 밀접한 우방 관계가 있는 나라 미국 문화 영향들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두 나라 사고방식을 비교해 보았다. 이 글에 이어 다음 연재글에서는 같은 주제의 두 번째 글로써 개인주의와 집단주의를 깊이 파고 들어가 볼 예정이다.
<이미지 출처>
사진 1: https://www.associatesbpl.org/2018/07/05/declaration-of-independe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