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트온 Dec 03. 2023

낮춰주는 예의, 맞춰주는 예의

사람을 대하는 기본자세 차이 

낮춰주는 예의 


나는 뼛속까지 '평등주의자'라고 한국에서부터 스스로를 그렇게 여겼고, 지금도 그 생각엔 변함이 없다. 나이, 학벌, 직업, 재산... 이 세상이 어떤 기준을 들이대건 상관없이 모든 사람이 동등한 생명의 가치를 가지고,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신의 행복을 추구할 동등한 권리를 가진다고 생각한다. 


나의 이런 사고방식은 선배건 후배건, 상사건 부하건, 어른이건 아이건, 같은 온도로 존중하는 태도로 나타났고, 이러한 태도는 대부분 집단에서, 아랫사람들을 쉽게 누르고 휘두를 수 있도록 '군기'를 잡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20세기말 대한민국 권위자들에겐, 질서를 역류시키는 심히 불편한 정신상태로 느껴지기 십상이었다. 나는 수직 구조 집단 안에 섞어 들어갈 수 없는 종류의 사람이었고, 내내 보편적 서열 문화 속에 제대로 정착하지 못하고 부유하는 먼지처럼 떠돌았다. 이미 그렇게 온몸으로 '평등'을 외치게끔 만들어진 뜨거운 내면을 가진 나는, 그런 부조화 부적응이 괴롭다고 해서 집단을 위해 나를 고칠 도리도 없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생각이 내면으로 흐르는 경향이 크고 귀가 약한 나는 음성 정보 만으로는 말을 잘 알아들을 수 없었으므로, 대화에 집중하기 위해 반드시 상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아야 했다. 나의 눈빛마저 그 시절 그들에게 얼마나 건방지고 도전적으로 느껴졌을지!


그럼에도, 나는 미국에 와서 연구소 생활을 하며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노인이나 권위자 앞에서 지나치게 순종적이고 예의 바르다. 
사람 앞에서 항상 저자세를 취하는 경향이 있다.

 

한국인들은 내가 윗사람에게 지나치게 당당하고 아랫사람들을 지나치게 존중해서 거슬린다고 하고, 미국인들은 내가 권위자 연장자 앞에서 지나치게 예의 바르고 저자세라 지적하니, 이런 기가 찰 노릇이 있나! 내 두 번째 미국인 상사는, 이런 말도 했다. 


"넌 그래도 다른 한국인들보다는 조금 더 다가가기 쉬워. 전에 다른 곳에서 만났던 어떤 한국인은 절대 눈을 마주치지 않아서 정말 함께 대화하기 힘들었거든."


이 말을 해 주었던 미국인 상사에게, 눈을 맞추지 않고 내리깔고 있는 한국 사람에게 어떤 느낌이 드는지 물었더니, 뭔가 숨기는 게 있어 거짓말을 하고 있거나, 내 말을 듣지 않고 딴생각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그나마 눈을 똑바로 쳐다보아야만 정확히 소통할 수 있는 나의 핸디캡이 이렇게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문화가 다 있구나 싶었다.  


나는 내 모습을 한국인과 미국인이라는 두 종류 제삼자의 눈으로 점검해 보았다. 나는 확실히 한국 문화 속에서 자라며 수직 서열주의 영향아래 잔뼈가 굵었으며, '나를 먼저 낮추어 주는 예의'에 나도 모르게 길들여져 있다는 피할 수 없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진 1: 더 높은 서열 앞에서 몸으로 저자세를 취하는 낮은 서열들


아무리 각 인간이 동등한 가치와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믿어도, 연장자 혹은 상사에게 먼저 몸이 저자세가 되고, 상석을 권하고, 처음부터 대등하게 대화를 나누기보다 먼저 조용히 경청하는 습관은 어릴 때부터 뼛속까지 박혀 있었던 것이었다. 미국 회사에서 일하며 비즈니스 관계에서 악수를 할 때도, 머리까지 살짝 숙이는 목례를 동반하는 내 뿌리 깊은 습관을 막을 수 없었다. 내가 미처 자각하지 못하고 무의식적으로 하고 있었던 습관적 행동들까지, 미국인들은 귀신같이 알아보고 이질감을 느끼며 지적하는 것이었다. 


한국에서 만났던 선배 상사 연장자들은, 나의 이런 몸에 밴 예절 습관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고, 머릿속까지 수직 질서가 잡혀, 그들과 같은 방식으로 군림하며 아랫사람 위계질서까지 잡아, 전체 질서를 균일하게 유지해 주기까지 나아가기를 원했지만, 나는 결코 사람을 '급' 나누어 차별하여 대하는 수준까지는 이를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맞춰주는 예의 


나 같은 사람이 자연스럽게 흡수되어 살아갈 수 있는 문화 나라는 정말 없는 것일까? 나는 없다고 결론 내렸다. 내가 나고 자란 땅이 내가 가장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는 나라일 텐데, 거기서 적응 못한 내가 다른 문화권에서 자연스러울 길은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냥 나와 내가 정하는 질서만이 존재하는 내 세상을 만들어 갈 옵션밖에 없었다. 나는 내 정체성을 한국인이라고도 미국인이라고도 굳이 정리하지 않고, 어느 전통 관습도 애써 흉내 내거나 따르지 않고, 나는 '나'일뿐이라고만 생각하며, 내 페이스 대로 나에게 맞는 길을 따라 걷기만 했다. 다행히 미국은 다양한 문화권에서 오는 다양한 사람들이 많으니, 내가 굳이 그런 주제의 대화를 꺼내지 않는 한, 상대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한, 자신과 다르다고, 다른 방식으로 살아간다고, 그걸 적극적으로 지적하는 사람은 없었다. 한국 사람은 한국 사람대로, 저 사람은 미국에 오래 살아 저러려니 하는 것 같았다.  


다만 나는 나를 이리도 다르게 재단하는 한국과 미국의 사고 문화 차이가 무엇인지를 알아내고 싶었다. 왜 이렇게 한쪽은 지나치게 수직적이고, 다른 한쪽은 지나치게 수평적인지 궁금했다. 한국 역사를 되짚어 보고, 유럽과 미국인들 사고 역사의 흐름을 이해하기 위해, 역사서 철학서를 읽고, 18-19세기 시대 사상 문화 일상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고전 소설을 탐독해 나갔다. 


마침내, 많은 시간이 흐르고 나는 하나의 답을 찾아냈다. '봉건제'가 무너지고 '시민계급'이 성장한 방식, 그 거대한 차이가 미국과 한국 문화 사이에 떡하니 버티고 있는 걸 발견했다. 그 차이를 이끌어간 주원인 한가운데 '아메리카 신대륙 발견'이라는 깃발이 꽂혀 펄럭거리고 있었다. 


1492년 아메리카 신대륙의 발견은, 여러 가지 경제 사회 문화적 의미가 있지만, 유럽 사람들에게 많은 문제를 해결하는 돌파구와 탈출구를 만들어준 의미가 컸다. 15세기 유럽은 전체 인구의 30-40퍼센트를 죽음으로 몰고 간 흑사병의 여파에서 조금씩 회복하며, 사회적으로 몹시 불안정한 시기를 보내고 있던 중이었다. 게다가, 1453년 오스만 제국이 동로마제국을 무너뜨리고, 수많은 상인들에게 부를 축적할 기회를 제공했던 아시아 제국들과의 무역로를 차단해 버리자, 유럽 상인들은 아시아와의 새로운 무역로를 찾아 나서야만 하는 상황에 봉착했다. 그런 필요에 의해 '인도'로 가는 직항을 찾기 위한 콜럼버스 항해가 시작되었고, 그 탐험 끝에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한 것이었다. '발견'이라는 단어를 빨간색으로 표기한 이유는 아메리카 원주민이 이룬 사회 문화를 무시하는 단어라고 생각되어 쓰고 싶지 않지만, 널리 알려진 보편적인 표현이라 내가 다른 단어를 만들어 붙일 수 없어 속상한 심정을 표현한 것이다. 반면, 미국과 유럽은 각각 미국 건국 역사를 미화할 필요에 의해, 유럽이 남의 나라 침략 학살을 감행한 범죄를 저질렀다는 혐의를 피해고 당시 미국땅 소유권을 정당화하기 위해, 마치 새 나라를 세울 터전으로 삼기 좋은 주인 없는 부동산을 '소유해 낸' 성취인양, 전 유럽인을 행복하게 해 줄 보물 창고를 찾은 양, 매년 손뼉 치며 기념하고 '발견(discover)'이라는 표현을 고수하고 있다.     


사진 2: 콜럼버스 일행이 신대륙에 도착한 순간


정복한 땅의 자원과 노동력을 마구 착취하는 식민지 열풍 및 유럽 열강 간의 땅따먹기 전쟁 폭풍 속에서, 비록 유럽에 뿌리를 두고 있긴 해도,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 땅을 개척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유럽인이 아닌 아메리칸이라 여기기 시작했고, 미국 생활에 맞는 미국식 새로운 문화를 자신들이 지향해야 할 자신들만의 문화로 여기기 시작했다. 마침내 유럽이라는 낡은 전통과 악습, 여왕의 지배에서 벗어나 새로운 독립국가를 건설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이젠 왕도 없고 계급도 없고, 모두가 '평등' 하고, 모두가 새 나라의 주인이라는 자유 평등 정신이 충만한 상태였다. 


미국이 영국과의 전쟁에 승리를 거두고 독립을 쟁취해 낸 일은 유럽사회에 제대로 된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의 힘을 보여준' 어마무시한 핵폭탄이 되었고, 뒤이어 프랑스 대혁명과 각종 시민 혁명 발발이 이어지며, 유럽사회에서 봉건제, 절대군주 사회 질서는 점점 힘을 잃고, 자유롭고 평등한 권리를 가지는 시민 계급이 지배하는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각종 정치적 시도가, 자본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국가들을 만들어 갔다. 


따라서 유럽이나 미국에서 '시민'은 그냥 정치인이 다스리는 수동적이고 순종적인 대상인 '백성'이 결코 아니며, 나라를 다스리는 주체, 어느 누구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자유권과 평등권을 확실히 보장받은 강력한 힘을 가진 존재다. 그들은 당당하며, 사람을 만나면 동등하게 맞추어주는 예의를 보이고자 한다. 아주 어린 자녀에게도 동등한 힘이 부여되어 있음을 알려주기 위해, 그들은 무릎을 꿇고 아이와 눈높이를 맞추어 아이가 당당하게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솔직하게 다 표현할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 여성도 어린아이도 노약자도, 동등한 힘과 권리를 가진 사람으로 인정하는 의미로, 도움을 제안할 때도 매우 조심스럽다. 노인도 최대한 할 수 있는 데까지 독립적인 인간으로 동등한 시민으로 존재하고 싶기에, 아무리 몸이 힘들어도 결코 젊은 사람에게 자리 양보를 바라거나 특별 대접해 주기 바라지 않는다. 노약자 취급을 받으면 불같이 화를 내며 거절하는 노인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그보다는 내가 여전히 동등한 시민이라고 느낄 수 있도록 함께 눈 '똑바로' 응시하고 대화하며 맞추어 주는 예의를 더욱 감사하게 생각한다.  


사진 3: 어린이 눈높이에 맞추는 어른들의 모습


반면, 한국은 시민계급 성장이 자본주의 사회를 스스로 만들어간 케이스가 아니다. 일제 강점기 강압에 의해 절대 군주 시대가 치욕적으로 막을 내렸으며, 해방 이후엔 미국의 주도로 미국 사회를 복제하는 방식으로 자본주의 사회 시스템을 만들어 나갔다. 군부독재와 부패 정치 집단에 항거하며 많은 젊은이들이 피를 뿌리며 시민 정신을 고양시키고, 민주화를 이루어냈지만, 아직 수많은 사람들이 그 젊은 피 희생의 가치조차 아직 잘 모르는 듯하다. 연령에 따라 사는 지역에 따라 시민 의식은 0부터 10까지 천차만별 가지각색으로 분포하고 있고, 그런 만큼, 남의 나라 '맞춰주는 예의'를 흉내 낼지, 전통에 따라 '낮춰주는 예의'를 고수할지 아직 확실히 마음먹지 못하고 있는 혼돈의 먹구름이 잔뜩 낀 느낌이다. 



나의 예의 


앞에서도 말했지만, 나는 한국 사람이 봐도 미흡하고 미국 사람이 봐도 어색한 예의를 보이는 입장을 피할 수 없다. 미국에 너무 오래 살았기 때문에 요즘 '먹히는' 한국식 예의가 정확히 어떤지 모르며, 혁명과 전쟁을 치러 가며 '피'의 강물 위에 서 있는 유럽과 미국의 시민 정신을 내가 100% 이해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나의 예의범절 전략은 그저 '모두를 존중'할 뿐이다. '착한 아이 욕망'이 키운 호구 습관에다 저자세 자기 비하 버릇까지 있는 탓에 나를 존중하기가 가장 어려운 형편이지만, 나는 '나' 또한 다른 타인을 대할 때와 동등한 수준으로 존중해 낼 수 있기 위해, 오늘도 내가 할 수 있는 '예의'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미지 출처>

대문 사진: Pixabay (by adamr)  

사진 1: JTBC 사극 <인수대비>의 한 장면  

사진 2: https://lithub.com/we-all-know-columbus-didnt-discover-america-so-how-did-he-become-a-symbol-of-its-founding/

사진 3: Pixabay (by RonPorter)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