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주의 vs. 집단주의
함께 살기 힘든 개인주의와 집단주의
수직 문화와 수평 문화 차이와 함께, 미국과 한국 두 문화의 근본적인 생각 차이 중 하나는 개인주의와 집단주의다. 이 두 가지 사고체계는 두 나라 간 큰 문화 차이를 만들어낸다. 수평 문화와 수직 문화라는 차이도 여기서부터 시작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개인주의가 모든 개인에게 권리가 부여되는 수평 문화를, 집단주의가 집단 체계를 순조롭게 유지할 수직 문화를 낳을 수밖에 없는 것이 당연해 보인다.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한국 전통문화를 따르는 한인 가정에서 자라며 어느 정도 어른 공경 문화를 비롯해 수직 문화를 경험할 만큼 경험했다 자부하며 한국에서 살아보기를 선택한 교포 2, 3세들이 한국에서 가장 먼저 강하게 부딪치는 장애물이 개인주의 집단주의 사이의 거리감이라고 한다.
집단이 향하는 방향을 우선으로 살피지 않고 개인의 권리를 주장하는 순간 이방인, 개인주의자가 되고 만다. 정해진 근무시간만큼 일하고, 나머지 저녁 시간을 오롯이 자신을 위해 보내고 싶어 하는 걸 들키는 순간, 수당 없는 야근이나 상사 개인 심부름은 부당하다고 외치며 나서는 순간, 회의 중에 상사 의견에 자유롭게 당당히 반대 의견을 제시하는 순간, 미국에서 자라 그런지 눈치 없고 책임감도 부족하고 '지 밖에 모르는' 미쿡놈 편견에 갇혀 버리기 쉽다.
반면, 한국에서 예의 바르고 성격 좋고 사회생활 잘하기로 소문난 사람이 미국에 오면, 자신의 몸에 뿌리내린 집단주의 사고 문화가 곳곳에서 장애물로 작용한다. 자신의 권리를 위해 할 말을 할 줄 모르는 사람으로 인식되는 순간, 부조리를 느끼지 못하거나 묵과하는 인간이라 인식되는 순간, 어떤 자리 누구와의 미팅에서건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지 못하고 묵묵히 듣는 역할만 하는 존재로 이미지가 굳어지는 순간, 뭔가 함께 하기에 지나치게 수동적인 인간, 미국이 중요시하는 개인 권리를 지키고 누릴 줄 모르는 '문화적으로 너무 이질적인 이방인' 되고 만다.
개인주의와 집단주의가 태어난 배경
서구 개인주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16세기에 일어난 프로테스탄트 개혁부터 짚어볼 필요가 있다. 마틴 루터를 비롯한 종교개혁 선구자들은, 그전까지 가톨릭 종교지도자를 통해서만 성경을 들을 수 있고, 그 집단에 이익을 주는 존재가 되어야만 천국에 갈 수 있다는 틀을 벗어나, 개인 종교 자유와 신과 개인의 직접적인 소통과 관계, 개인적 신앙생활을 강조했는데, 이는 당시 르네상스 인문주의자들의 영향을 받은 신학 접근 방식으로, 이 개혁 정신이 개인주의 성장의 싹을 틔웠다.
이 개인주의라는 싹에 햇볕과 충분한 비와 기름진 거름을 더한 것은 17-18세기 유럽 계몽주의 운동이었다. 계몽주의는 사람의 이성을 중요시하고, 이성을 통해 세계를 이해하고 개선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상이다. 이는 곧 각 개인이 자신의 이성을 사용하여 독립적으로 생각하고 판단 행동할 수 있는 존재로서 존중받아야 마땅하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이런 각각의 개인들이 평등한 기회 또한 누려야 한다고 다음 단계로 이어진 생각이 지난 글에서 다루었던 '평등주의'다.
계몽주의 사상가들은 각 개인이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권리와 자유가 있으며, 이는 보호되고 존중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 내용이 바로 개인주의의 핵심이며, 개인주의를 추구하는 것이 유럽과 미국 사회가 전통 군주제 혹은 중앙집권적 독재 정부를 거부하고 반대하며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길에 중요한 사상적 목표가 되었다. 유럽과 미국 사회는 그렇게 끝없이 개인주의를 고수하고 성장시켜 꽃 피우고 열매 맺으며 나아갔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동양 문화인 한국에서는 집단의 일원으로서의 역할과 의무가 강조된다. 한국은 오랜 농경 사회 역사를 가지고 있고, 그만큼 상호 의존적인 집단생활이 중요시되어 왔다. 그 결과로 인해 집단 일원으로서의 역할과 그에 따른 규범에 대한 강조가 뿌리 깊고, 이 뿌리는 현재의 삶까지 이어지고 있다. 따라서 한국 사회에서는 개인의 의무와 역할이 집단의 목표를 이루는 방향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럽다.
이러한 문화적인 차이로 미국에서는 개인의 권리와 자유가 강조되고, 이로 인해 독립성과 자율성이 존중되는 사회 구조가 형성된 반면, 한국에서는 집단 일원으로서 개인 역할과 의무가 강조되어, 집단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한 협력과 조화가 중요시되는 사회 구조가 지속되어 왔다. 두 나라의 문화 차이는 이러한 오랜 역사 속에 뿌리가 깊은 경제 사회적, 종교적 배경에서 비롯된 것이며, 이는 각 나라의 경제, 정치, 사회 구조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쯤에서 다시 살펴봐야 할 우리에게 다가온 개인주의의 의미
개인주의의 참 의미를 따져 본다면, 서구 개인주의는 한국에서 말하는 민주주의에 가까운 개념이다. 개개인의 행복과 권리를 위해 대통령도 어겨서는 안 되는 법을 제정하고 실행하는 법치주의 사회가 개인주의 사회이며, 개개인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힘을 가지도록 장려하는 지극히 개인주의적 장치가 투표 제도다.
또한 '자본주의'라는 개념도 개인의 경제 활동 자유, 개인 경제권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계몽주의가 낳은 개인주의를 추구하는 사상이념이다. 특히 18세기와 19세기에 유럽에서는 산업화와 근대화가 진행되고, 인쇄 기술 발달로 인한 독서 보편화 및 교육 기회가 넓어지면서, 이로 인해 개인의 경제적 자유와 기회가 늘어났고, 개인이 자신의 노력과 능력에 따라 성공할 수 있는 기회가 확대되었다. 이러한 이야기는 영국 출신 작가 찰스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에서 비참한 처지이던 대장장이 처조카가 후원자를 얻어 '신사'의 꿈을 품고 런던으로 상경해 '신사' 수업을 받는 이야기나, 모파상의 '벨아미'에서 무식한 시골 농부 출신 조르주가 군 복무를 마치고 파리에 상경해 친구의 도움과 여성에게 매력 어필하는 자신의 외모를 십분 활용해, 당대 엄청난 파워를 가진 전문직이었던 신문기자가 되고. 신문사 갑부 사장 사위가 되기에 이르는 이야기를 통해, 당시 영국 프랑스 같은 유럽 사회에서 개인 수완으로 더 높은 자리에 오르고 신분을 바꾸는 것이 가능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한국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한국 해방 한국 전쟁 후 '미국이 권하는 대로' 민주주의를 고수하는 자본주의 사회라는 옷을 입었고, 이 자본주의 사회는 개인의 생존권, 자유, 행복 추구권을 보장하고자 하는 '개인주의 사상' 위에 서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 누가 입혀주는 의복을 먼저 입고, 의복의 유래와 기능이 무엇인지 후에 깨달아가고 있는 셈이다. 국가 시스템이 전통 한국 사고 문화와 거리가 먼 사상을 먼저 받아들였고, 국민들은 서서히 이질적이지만 국가 건립의 근본 사상이 된 개인주의 사상에 녹아들어 가야 한다는 이야기다.
문제는 한국은 아직 농경 사회 문화 속에서 잔뼈가 굵은 뼛속까지 집단주의 문화로 무장된 몸이라는 것이다. 집단주의 전통 사고와 상충하는 개인주의 사상은 어딘지 모르게 우리 사회 문화 속으로 녹아들지 못하고 둥둥 뜬 기름처럼 겉돌고 있는 느낌이다.
개인주의 사상은 모두가 평등하고 모두에게 실력을 바탕으로 동등한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고 하지만, 내 몸에 익숙한 집단주의는 일단 '우리 사람'부터 챙긴다. 실력과 상관없이 우리 사람인지 아닌지를 확인하고 특혜를 주고 이끌어주는 게 더 중요하다.
개인주의는 모두가 평등하니 모두가 자유롭게 의견을 말하고 토론을 하라고 하지만, 내가 속한 조직은 집단 안정성과 질서를 위해 수직 서열을 중요시하므로, 학생은 교사나 교수, 상사가 말할 때 일단은 묵묵히 눈치 보며 분위기를 따라야 한다. 이 집단 안에서 윗 서열의 힘은 크고, 그들의 눈 밖에 나면 집단 밖으로 퇴출될 위험이 있다.
개인주의는 개인 각자가 행복할 권리, 안전할 권리를 챙겨도 된다고 하지만, 집단의 이익을 우선해서 내 권리를 주장하는 순간, 개인은 이기적인 인간, 모난 정, 눈치 없는 독불장군, 모두가 혐오하고 조롱할만한 대상이 되고 만다.
개인주의는 개인 각자의 속도대로, 소소하고 느려도 행복하게 살아도 된다고 개인 성장 과정 자체가 의미 있다고 외부 기준, 타인의 시선은 중요하지 않다고 하지만, 내가 속한 집단들은 집단의 명예를 위해 학위와 자격증 같은 결과가 너무나 중요하고, 우리 집단 체면이 중요하므로 학위를 잘 보이는 데 붙여 놓고, 명품으로 고급스럽게 잘 치장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다.
가정부터 학교, 회사 집단까지 한국 사회 구석구석 집단주의 전통문화가 굳건히 자리를 잡고 있다 보니, 실생활 속에서 개인주의는 좀처럼 매력적인 사상 가치관으로 자리 잡기 힘들다. 하지만 도시 수도권으로 갈수록, 젊은 세대일수록 더욱 개인주의화 되고 있다는 느낌도 든다. 요즘은 회사에서 직위를 뺀 영어 닉네임으로 부르며 나이 서열을 따지기보다 수평적으로 서로를 존중하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의견과 아이디어를 존중하고자 하는 분위기의 회사들도 생겨나고 있는 추세이며,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의 보편화로 각 개인이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개인주의 문화가 팽창하고 있다. 또한, 학교 같은 집단 시스템에 의존하기보다, 각 개인이 자신의 경험과 경력을 더 개발하고 강화하는 일에 더 적극적이고 주도적이 되어가고 있으며, 개인 창업과 스타트업 문화가 활성화되고 있다는 점이나, 다양한 가치관과 생활 스타일을 존중하려는 흐름, 학생이 주도하는 학습 환경을 조성하려는 교육 시스템의 변화 물결등이 요즘 한국 젊은이들이 개인의 창의성과 독립성, 자신만의 가치관 같은 개인주의적 가치들을 더욱 중요시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국 사회 문화도 확실히 점점 개인주의를 향해, 혹은 집단주의와 개인주의를 조화롭게 절충하는 방향을 향해 변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반면 미국은 건국이념 자체가 개인의 권리와 자유를 중시하는 강한 개인주의로 시작했고, 개인의 독립, 창의성, 기업가 정신을 존중하는 사회로서, 개인의 성공과 자유, 균등한 기회를 지지하는 분위기가 전 세계 누구나 한 번쯤 미국으로 건너가 성공해보고 싶은 '아메리칸드림'을 만들었다. 실제로, 죽었다 깨어나도 바뀔 일 없는 타고난 신분으로 자기 조국에서는 핍박받는 처지이거나, 자기로선 성공을 꿈도꿀 수 없겠다 절망한 많은 사람들이 성공과 자유를 꿈꾸며 미국으로 건너가 야생의 땅에서 새로운 삶을 개척하였다. 그 과정에서 실패하고 병들고 비참하게 죽은 사람들도 많았지만, 마침내 자신이 꿈꾸던 성공적인 삶을 이룬 자수성가 스토리도 넘치게 많다. 내 주변 사람 중에도, 미국에 거의 빈손으로 건너와, 처음에 자리 잡기까지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쉴 새 없이 일하며 고생을 했지만, 근면과 성실로 버텨 현재 억만장자가 되어 풍족한 생활을 하게 되었다는 성공담을 자랑하는 한국인들이 상당수 있다.
극단적으로 바라보는 편견은 금물
한 가지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은, 미국은 개인주의, 한국은 집단주의라고 일반화해 버려서는 곤란하다는 점이다. 한국 문화와 미국 문화의 차이를 설명하기 위해, 두 문화 간의 차이가 어디서 오는지 설명을 돕기 위해, 종교 개혁과 계몽주의 시대를 거친 미국과 같은 서구 사회는 개인주의의 영향이 크고, 함께 협력하는 집단을 이루어야만 가능한 농경 사회 역사가 긴 한국과 같은 아시아 사회는 상대적으로 집단주의 문화 영향이 크다라고 했지만, 결코 한국은 이렇고 미국은 이렇다고 단순하게 이분법적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한국 사람이라고 해서 모두가 무조건 집단주의를 추구하는 것은 아닌 것처럼, 미국이라고 해서 모든 미국인이 철저하게 개인주의를 고수하며 독립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특히 미국 군대는 강한 집단 사회를 형성하고 유지하기 위해 수직 서열 체계를 도입하여, 한국과 유사한 집단사회의 특징을 보인다. 또한 미국 내에서도 집단주의적 상호작용과 사고 문화의 이점을 충분히 활용하여 조직을 구축하는 기업과 조직들이 많다.
특히 미국 기업 문화는 팀워크와 협업을 강조하는 경우가 많아, 치밀한 집단 조직을 이루어 협력과 소통을 원활하게 하려고 노력한다. 이는 개인의 성과 못지않게 팀의 성과를 중시하며, 팀원들 간의 상호작용이 개인보다 더 큰 가치를 갖는 집단주의적 경향을 보여준다. 가령, 프로젝트를 함께 수행하는 팀에서 가장 강조하는 큰 목표는 개인의 성장을 넘어서서 팀원들 간에 의견을 나누고 협력하며 해당 프로젝트를 기한까지 완성하는 것이다. 또한 정치적인 측면에서도, 미국에서는 특정 정당이나 단체에 속한 사람들이 공통된 가치관과 목표를 공유하며 결속하여 행동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이런 특수 조직들이 가지는 집단주의적 특성이 전체 미국 문화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며, 여전히 미국에서 개인주의적인 가치관이 지배적인 것은 변함이 없다. 다만 그 모습이 다양한 문화와 가치를 포용하는 다문화 사회로서 미국 내에서는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라 할 수 있겠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어딜 가든 집단주의와 개인주의가 다양한 모습으로 공존하고 있다. 이러한 다양한 가치관이 공존하는 현실은 아마 현대 사회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금까지 겪어온 특수한 역사 정치 경제적인 이유로, 한국은 특히나 작은 땅 위에 복잡 다양한 마인드가 공존하고, 갈래갈래 나뉜 마인드 차이가 심한 세대 차 남녀 차 지역 차를 만들고 있다.
솔직히, 미국에서 살아가는 이방인으로서 끝없이 나와 다른 문화에서 오는 미국인과 소통을 노력해 온 입장에서, 마인드가 너무 다른 사람과 마음 상하는 일 없이 항상 즐겁게 대화를 이어나가기는 어렵다. 나는 상대방의 감정을 편히 하려, 나 자신의 의견을 억제하고 상대의 의견을 지나치게 포용하려는 성향이 있고, 한국 문화를 잘 알고 배려하는 미국인이 아닌 한, 보통 대다수는 자신의 의견을 크게 존중하고 맘껏 주장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성향이 어디서 오는 것이고, 상대가 어디서 오는지를 알면 받아들이고 이해하기가 좀 더 수월해진다.
지금까지 두 편의 글을 통해 한국과 미국의 마인드 차이를 조명하였다. 이 글이 갖가지 마인드가 함께 공존하는 사회에 사는 독자들이 나와 다른 마인드를 쉽게 혐오하고 배척하기보다, 이해하고 존중하여 긍정적인 대화와 소통을 이끌어 내는 일을 수월하게 하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인터넷으로 모두가 연결되는 글로벌 미래엔, 점점 더 한 사회에 공존하는 마인드는 더욱 복잡해질 전망이고, 서로 다른 마인드를 수용하고 혐력하는 노력이 절실히 필요할 거라 예상되기 때문이다. 사람이건 나라건 관계가 쉽게 끊어지기보다, 더욱 원활한 상호 작용을 통해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어 가야 한다고, 그리할 수 있을 거라 믿고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