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스포츠 교육 열풍
부모의 마음은 다 똑같다
최근 한 미국인 친구와 한국 사회와 미국 사회의 문화 및 제도 차이로 인해 공교육 및 사교육의 목적과 방향이 달라지는 것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친구와 이야기를 하면서 깊이 느낀 것은, 인종을 불문하고 자녀에게 좋은 습관, 더 나은 교육, 더 밝은 미래를 주려는 어버이의 마음은 같다는 점이었다. 자녀가 뛰어난 재원으로 인정받고, 좋은 대학에 진학하고 사회적으로 인정받기를 바라는 마음 또한 한국인과 미국인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자녀교육에 접근하는 방식은 두 문화가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미국인 엄마들과 애프터 스쿨 액티비티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 보면, 십중 팔구는 스포츠 교육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축구, 수영, 아이스하키, 풋볼과 같은 스포츠에 3-4 살 때부터 입문시키는 것은 물론, 자녀의 스포츠 교육 및 활동 장비 마련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자녀가 특정 스포츠에 열정과 두각을 보인다 싶은 순간부터는, 주말 없이 매일 이어지는 길고 혹독한 훈련 속으로 자녀를 밀어 넣는 것을 주저하지 않으며, 넓은 땅이라 비행기 타고 찾아가야 하는 훈련과 경기를 다 쫓아다니며 자녀를 관리해 주는 인내와 희생을 기꺼이 감수하는 맹모도 울고 갈 미국 부모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최근 행해진 모 스포츠 마케팅 기관이 행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6세-17세 사이의 미국 아동 및 청소년의 과반 수 이상이 어떤 형태로든 스포츠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고 한다. 미국의 고등학교들이 스포츠 시설 및 교육에 쏟는 비용과 관심, 엄청난 열기의 스포츠 교육은, 체육시간도 줄여 입시공부를 시키는 한국의 고등학교 분위기와는 극렬하게 대조적인 현상이다. 이 차이는 한국 교육은 고등 교육과 대학 진학에 대한 큰 압박감으로 학문 중심의 교육이 더욱 강조되고, 미국은 사회 문화와 제도 모두가 운동 성과를 학습 성취 못지않게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는 점을 들어 설명할 수 있다. 미국 제도 및 사회 문화가 왜 스포츠 교육을 학문 교육만큼이나 중요하게 여기게 되었는지, 그 근본 원인과 영향을 좀 더 자세히 관찰해 보자.
미국의 개척정신문화는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미국의 개척 시대를 상상해 보라. 개척해야 할 땅이 광대하게 펼쳐진 이곳에서 환영받던 사람은 오랜 여정과 고된 노동에도 지치지 않고 황무지에서도 살아남을 생활력 강하고 건장하고 힘센 사람들이었다. 유럽인들이 북미 땅에 자리 잡고 국가를 건립한 역사가 고작 250여 년에 그치고, 초기 서부 개척 시대가 지금으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시간인 만큼 건장한 신체의 가치는 여전히 미국 문화 안에 살아있다. 아무리 공부를 잘해도 공부만 하는 신체 허약한 학생들은 인기가 없다. 여러 인종들 가운데 상대적으로 왜소한 신체 조건을 가진 웬만한 아시아계 남학생들이 인기와 거리가 먼 학창 시절을 보내게 되는 비애가 여기서 비롯된다. 신체능력이 뒷받침하지 않으면 가치를 인정받기 힘든 특이한 문화를 가진 곳, 바로 이곳 미국에서 극심한 스포츠 교육열은 당연한 현상이지 않을까?
또한, 미국의 건국이념이 처음부터 강하게 '개인주의'를 지향하고 있었던 만큼, 교육에 있어서도 다양성 및 각 개인 개성 발굴과 성장을 강조하는 측면이 있다. 미국의 스포츠 교육은 그 다양성과 개성을 중시하는 교육 문화의 한 단면이라 할 수 있다. 다양한 스포츠에 참여해 봄으로써 자녀들은 자신의 신체 특기와 장점을 발견하고 자기 계발에 전력을 다해볼 수 있다. 물론 한국의 학교들도 스포츠팀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스포츠팀이 스포츠에 두각을 드러내는 선별된 영재를 운동선수로 키우는 프로그램 느낌이라면, 미국의 스포츠 교육은, 어릴 때부터 다양한 스포츠를 마음껏 시도해 보고, 단계별로 성장하고, 자신에게 맞는 스포츠를 찾아 집중할 수 있게 유도해 가는 풍부한 프로그램으로 체계화된 체육 커리큘럼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미국인이 가지고 있는 두려움, 비만을 이해하라
전통적으로 한국사회는 공립학교를 통해 5대 영양소를 골고루 먹되 흰밥보다는 잡곡밥을 먹는 것이 건강에 좋다는 건강교육을 해왔고, 그 결과로 어린 시절부터 한국인들이 건강한 음식을 골고루 섭취하려 평생 노력하게 되는 것처럼 미국 사회 또한 미국인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Social Studies 및 Health과목 시간을 통해 교육하는 것들이 있다. 그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이슈가 비만에 관한 것이다. 학생들은 비만이 미국인들의 건강을 얼마나 위협하고 있는지, 특히 소아 비만이 아이들에게 미치는 정신적 악영향이 어떠한지 교육을 받는다. 이러한 교육 결과 미국인들은 하루에 1-2 시간 운동하는 것이 심장병 고혈압 등의 병을 예방하고, 뼈와 근육, 관절의 건강유지를 도울 뿐 아니라 적정 체중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필수적인 일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실천하려고 노력하며, 그것이 아이들에게도 필요한 습관이라고 생각하므로 어릴 때부터 여러 스포츠를 접하게 하여, 자신에게 맞는 운동을 찾고, 운동습관을 잡아주려는 경향이 있다.
미국은 6월 중순부터 8월 말 9월 초까지 여름 방학이 한국보다 긴 편인데, 여름방학 동안, 한인 부모는 아이가 공부하는 습관을 잃어버리고 나태해질까 걱정하고, 다음 학년 공부를 예습시켜 주거나, 주요 과목 실력을 키워주는 학원 캠프 활동을 하게 하는 반면, 미국인 부모는 아이가 운동을 하지 않고 가만히 집에 있는 것을 불안하게 여기고, 하루 종일 운동 프로그램으로 짜인 캠프에 등록하는 경향이 있다. 잘 짜인 운동 프래그램은 보통, 훌륭한 스포츠 시설을 갖춘 미국의 이름 있는 사립학교들이 운영하는 경우가 많아, 그 비용을 감당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렇다고 형편이 빠듯한 사람들이 자녀를 운동시킬 길이 없는 것은 아니다. 주나 도시에서 자체로 운영하는 스포츠 교육 프로그램이나, YMCA 같은 비영리 운동 기관 단체에서 보다 저렴한 운동 캠프를 운영하여, 방학 동안 가능한 많은 학생들이 원하는 만큼 운동을 열심히 하며 여름을 보낼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어, 부지런히 서둘러 방법을 찾다 보면, 자녀를 열심히 운동시킬 길은 다양하게 찾을 수 있다.
미국인들은 대학입시를 향한 첫걸음이 운동이라고 믿는다
미국인들은 운동을 잘하는 것이 어떤 자리에서건 사람을 돋보이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열심히 연습하고, 팀원들과 협력하고, 리더십을 발휘하고, 경쟁에서 이기려고 끈질기게 노력하는 스포츠의 세계를 경험하고, 그 안에서 우수한 운동선수가 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팔방미인 (well-rounded) 임을 증명한다고 생각하고, 비슷한 성적의 수많은 지원자 중 돋보이게 만들어 줄 것이라 믿는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고교 스포츠 팀에서 활동을 한 학생들이 그렇지 않은 학생들보다 대학 진학률이 더 높고, 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는 예가 많이 있다. 또한 운동이 아이들의 학습 태도 및 집중력에도 영향을 미치는 바가 있어, 스포츠 활동을 하는 아이들이 더 좋은 시험 결과를 낸다는 연구 결과도 스포츠의 가치를 드높이고 있다. 그런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아이들 사이에서도 운동을 잘하는 어린이나 청소년이 인기가 많다. 한국의 경우 학창 시절 뛰어나게 공부를 잘하고 명문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이 인정받고 성공하기 쉽다는 사회분위기의 영향으로 어린이들 사이에서도 공부를 잘하는 친구가 동경의 대상으로 인기가 많은 것과 같은 이치다.
미국 대학 입시에서 스포츠가 중요한 이유는, 고교 스포츠나 대학 스포츠가 가진 위상 자체가, 한국의 고교 혹은 대학 스포츠보다 훨씬 더 크기 때문인 점도 있다. 미국 대학 스포츠의 경우 NCAA라는 대학 스포츠 연맹이 축구, 농구, 야구, 미식축구 등 다양한 스포츠 분야에 대한 대학 리그 및 토너먼트를 주관하는데, 대학 스포츠는 대중적으로도 큰 인기와 관심을 끄는 만큼, 대학선수들은 프로 선수 못지않은 뛰어난 시설과 스포츠 장비, 최신 기술로 건설된 경기장, 훈련시설 같은 최상의 훈련 조건과 경기 시설을 누린다. 미국에서는 고교 스포츠 또한 독립적으로 운영되며, 학교 커리큘럼과는 별개의 리그 시스템을 가지고 진지하게 운영된다. 고교 스포츠 시설, 훈련, 프로그램에 대한 투자는 한국과 비교해서 엄청난 수준이다. 고교 선수들이 졸업할 때가 되면, 대학 스포츠 관계자들이 뛰어난 선수들을 자신의 대학으로 영입하기 위해 물밑작업을 한다. 그만큼 고교 리그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 학생들이 대학 입학에 유리한 위치를 얻는 경우가 많다. 반면, 한국에서는 체육이 학교 교육 커리큘럼의 일부로서 선택과목으로 책정되어 있고, 주요 과목의 학문적 성취보다는 중요도가 훨씬 떨어지며, 체육을 전공하는 경우가 아닌 한, 스포츠 경험이 대학입시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미국인들은 스포츠를 인성교육의 장으로 여긴다
팀이 함께 싸워 이기기 위해 돕고 전략을 짜고, 이기고 지는 경기 결과가 일으키는 여러 가지 감정을 함께 공유하고 서로를 지지하는 과정에서 아이들이 진정한 우정을 경험하게 된다고 믿으며, 스포츠 팀 활동을 통해 긍정적인 자존감 형성, 리더십, 팀워크, 인내심, 목표의식과 같은 사회생활에 필수적인 인성교육 또한 자연스럽게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또한 사춘기의 에너지를 건전하게 쏟아부을 수 있고 이 나이의 아이들에게 쉽게 찾아올 수 있는 우울증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으로써, 건전하게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사교장으로써 스포츠 활동은 미국인들에게 자녀를 위한 필수 덕목으로 여겨진다.
미국 스포츠 교육이 단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스포츠가 심신의 건강을 도모하고, 여러 면에서 좋은 쪽으로 성장과 발전을 유도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나, 한국의 대학 입시 열풍이 한국 학생들을 많이 힘들게 하는 만큼, 미국의 스포츠 교육 또한 지나치면 학생들에게 심한 경쟁과 압박을 유발할 수 있다. 초등학교부터 많은 스포츠 활동에 참여하는 경우, 아이들은 학업과 스포츠를 병행하기 위해 많은 스트레스를 견뎌야 한다. 이는 신체적, 정신적 스트레스로 이어질 수 있으며, 아동들의 적절한 휴식과 여가 시간을 제한하여 오히려 심신의 건강을 해칠 우려가 있다. 또한 훈련 과정에서 부상을 입고, 오랫동안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 온 운동을 그만두어야 하는 경우도 생길 수 있고, 중도하차해야 하는 경우 받아들이기 힘든 결과가 아이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남기도 한다.
또한, 유행하고 인기 있는 스포츠에 대한 지나친 관심이, 특정 스포츠에만 집중하게 하여, 오히려 다양한 스포츠에 대한 이해나, 다른 분야 활동 경험을 부족하게 만들 수 있다. 특히, 어린이들을 일찍부터 특정 스포츠에 집중 투자하게 하는 경우, 다양한 활동을 경험하거나 자신에게 맞는 운동을 찾는 기회마저 차단할 수 있다. 그런 경우, 자녀가 중도에 자신의 길이 아니라 생각하여 그만두고 싶어도, 지금까지 부모가 쏟아부은 정성과 시간, 비용을 생각할 때, 자신의 길을 과감하게 선택해 나가기 어려운 상황에 처하기도 한다.
스포츠가 낳을 수 있는 심한 경쟁과 성과 중심의 문화는 부정적인 경쟁심을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너무 어린 나이에 스포츠에 입문한 경우, 스포츠에서 이기고 성공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에, 실패의 쓴 잔을 마실 때마다 불안과 부담을 크게 느낄 수 있고, 이는 자아존중감을 위협하고 스트레스를 유발할 수 있다.
공부 잘하고 좋은 대학 가는 것만 중요하고 공부가 다인 줄 아는 아이들이, 학업 결과가 자신의 기대와 어긋날 때, 정신적으로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지나치게 스포츠에 몰두하는 아이들 또한, 결국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할 때, 큰 실패감과 좌절감에서 헤어 나오기 힘들 수 있다.
공부만을 강조하는 세상에 살 건, 스포츠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세상에 살 건, 중요한 건, 사회 분위기에 휩쓸려 균형을 잃고 넘어지지 않도록, 나를,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들을 잘 지켜가며 내 두 발로 굳건히 단단히 잘 서 있는 게 아닐까. 나 자신의 중심과 소신을 잘 지키고, 어떤 결과, 어떤 상황에 처하더라도 다시 일어서서 나아갈 수 있는 힘과 지혜를 기르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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