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은 미국이 싫다고 하셨어
그룹 지오디의 데뷔곡 '어머님께' 곡 중 랩가사 중에 '어머님은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라는 대목은 누구나 한 번 들으면 울컥하는 감정과 함께 영원히 기억할 수밖에 없는 명문장이다. 이 문장이 의미하는 바가 단순한 어머니의 음식 기호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 문장은 지오디 멤버 박준형의 어려웠던 20세기 미국 이민 생활이 고스란히 살아 숨 쉬는 실화 역사 다큐멘터리이며, 가족 모두가 원하는 것을 선택할 수 없는 가슴 아픈 현실과, 그 찢어지게 가난한 형편 속에서 아들이라도 먹고 싶은 거 한 번 먹게 해 주려는 어머니의 희생이 뜨거운 눈물을 부르는 애절한 사랑노래다.
연재 브런치북 제목을 <어머님은 미국이 싫다고 하셨어>라고 지은 가장 첫 번째 이유는, '어머님은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라는 문장이 불러오는 서러운 상황과 울컥거리는 뜨거운 감정들이 바로 여기, 미국에서 한국을 바라보는 이민자의 마음에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어서였다. "미국 살아보니 어때? 미국이 더 좋아, 한국이 더 좋아?"라는 말에 결코 단순 명쾌한 답을 줄 수 없는 복잡한 사연과 감정이 얽히고설켜 만들어지는 게 타국 생활자 심리임을 그 느낌이라도 전하고 싶었다.
여기서 '어머님'은 성인이 되어 말도 문화도 낯선 곳에서 적응하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모든 사람들을 상징한다. 아무 준비 없이 맨몸 맨손으로 와서 그 두터운 언어문화 인종 차별 장벽과 맞서 싸우며 스스를 지키고 가족과 커뮤니티를 일궈낸 1세대 이민 전사들이 바로 그 '어머님'이라 할 수 있는 분들이며, 나 또한 밖에 나가면 누군가의 입에서 '어머님' 소리가 그리 어색하지 않게 흘러나오게 만드는 청소년 아들 둘을 둔 엄마로서, 이 미국 문화 속 한국인 이야기에서 제삼자 관찰자로만 있을 수 없는 존재다.
미국 언어문화와 한국 언어문화 간의 사회적 거리는 극단적으로 멀고, '징하게도' 멀다. 그래서 한국문화 속에서 나고 자라 잔뼈가 굵은 사람이 아무리 영어를 배우고 서구 문화를 익혀도 그 새로운 언어와 문화는 좀처럼 내 것으로 흡수되지 않는다. 미국살이 몇십 년이 지나도 여전히 영어는 내 머릿속에서 살기 싫어하고 삐죽삐죽 빠져나가려 발버둥 치는 미꾸라지 같으며, 미국인들과 문화적 동질감을 느끼는 자연스러운 만남은 쉽게 성사되지 않는다.
내가 뭐에 씌어서 미국 와서 이 서러운 고생을 하는가 싶고, 정말 이 상황이 '싫어서' 도망쳐 버리고 싶을 때도 많지만, 한 달 벌어 한 달 먹고사는 앞가림 겨우 하며 바쁘게 살아가다 보면, 어느새 시간은 훌쩍 지나 '미나리'가 척박한 환경에서도 땅을 정복해 나가듯, 내 영혼은 이 낯선 땅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고, 어느새 여기가 내 집 내 동네라 느끼고 있다.
더 이상은 내가 사는 이곳이 아무리 단점이 많아도 '싫다'라고 말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내가 매일 먹는 밥이 가끔 질릴 수는 있어도, 밥이 내가 되고 내가 밥이 되어 버린 관계에서 '밥이 싫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미국 생활자에게도 같은 일이 벌어진다. 미국에 오래 살다 보면 미국이 내가 되고 내가 미국이 되어 버린다. 모든 재료가 한데 어우러진 짜장면 소스, 짬뽕 국물이 되어 버린다.
이제부턴 다른 도리가 없다. 태어난 김에 열심히 사는 것처럼, 이왕 이렇게 외국에 뿌리내린 김에 열심히 타국살이를 해야 한다. 영어를 끝없이 익히고 모르는 문화를 끝까지 파헤치고 이해해 내야 하는 나에게 주어진 숙제를 받아들이며 감내하는 쪽으로 마음먹는다. '평생 여행자', '영어 학습자'이자 '문화 탐구자'라고 스스로의 정체성을 정의해 주고, 고대 유물을 찾아 헤매는 인디아나 존스처럼,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내 속을 시원하게 뚫어줄 '이해'를 찾아다니기로 길을 정해 버린다.
이왕 이렇게 살아가는 김에, 내 나름의 경험과 연구와 분석을 기록하고, 그 글을 필요한 누군가에게 전하기로 마음먹고 연재 브런치북 <어머님은 미국이 싫다고 하셨어>을 시작한다. 이 책이 누군가의 마음에 다가가 '이해'와 '공감'이라는 필요한 자양분이 되어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