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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트온 Nov 20. 2020

나에게, 베이킹

추억을 굽는 시간

남편은 어릴 때, 미국 엄마들이 아이들에게 간식으로 쿠키를 자주 구워주는 것이 어린 마음에 너무나 부럽고 보기 좋았다고 합니다. 다 큰 어른이 되었지만, 여전히 '쿠키 굽는 날'엔 기분이 많이 들떠 보이는 남편.


미국 생활 초기에, 저는 해 본 적도 없고 장비도 없으니 '베이킹'같은 건 할 수 없다고 생각했었어요. 그랬던 제가 '마음만 먹으면 뭐든 만들 수 있다.'라고 생각을 바꾸자, 눈이 열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열린 눈으로 미국 마트를 꼼꼼히 둘러보니 '반조리' 후 얼린 '냉동식품', 혹은 '미리 재료와 조미료를 섞어 놓은 상태'의 '믹스'들이 얼마나 많은지! 실패 확률을 최소화시켜주고, 노동 시간을 절약해 주는 '반조리'와 '믹스'의 세계로 오시라! '요리. 알. 못.'을 위한 옵션들이 무궁무진하다는 걸 그때 알게 되었습니다. 특히, 그냥 뜯어서 물/오일/우유/달걀과 섞어, 오븐에 넣기만 하면 되는 베이킹 재료들이 한가득, 신세계가 열렸습니다! 


흔한 미국 마트의 '베이킹 믹스' 섹션


그때부터 신나서 '베이킹'을 마음껏 했습니다. 각종 케이크, 각종 쿠키, 아이들과 마음껏 실컷 구워 먹었습니다. 하루가 길어서 지루해질 것 같은 날에도, 아이들과 축하 잔치를 열어야 할 때도, 갑자기 아이들 손님이 들이닥칠 때도,... '인스턴트 베이킹'은 참으로 요긴했고, 우리에게 많은 추억의 시간, 의미 있는 순간을 선물해 주었습니다.


오늘은 '초콜릿 칩 쿠키'를 구웠습니다. 아이들과 며칠 전부터 약속을 했던 일이었습니다. 이번에는 '쿠키 도우' -이미 쿠키 반죽이 되어 있는 것 -를 사 왔습니다. '반조리'를 선택한 약간의 죄책감은 '유기농' 제품을 선택하는 것으로 커버하고. 일단 아이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아이들이 10살이 넘고부터 저는 아이들에게 오븐 사용을 조금씩 하게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엄마가 시키는 대로, 손을 씻고, 내용물을 꺼내서 베이킹 종이 위에 얹고, 오븐을 예열한 후 오븐에 넣었습니다. 막판에, 쿠키 위에 마쉬멜로우도 얹어 보고 싶다고 고집을 부려서, 두 개만 실험을 해 보기로 했습니다.


시중에 파는 쿠키 반죽(좌), 내용물을 자른 것 (중), 오븐에 들어간 쿠키 반죽 (마쉬멜로우를 얹은 굽기 전 상태) (우)


화씨 325도에서 15분간 굽는 동안 가슴이 콩닥콩닥... 드디어 '개봉박두'! 


화씨 325도에서 15분 굽고 난 후의 쿠키.  아직 오븐 안에 있을 때 (좌), 오븐 밖에 꺼내 식힌 후 (우)


다 구워진 쿠키가 오븐에서 탄생하는 이 순간, 달콤한 버터 냄새가 부엌에 진동하는 이 순간을 아이들은 가장 좋아합니다.  

같은 쿠키 다른 음료 (우유와 쿠키 (좌), 레몬차와 쿠키 (우))

제가 '레몬차와 쿠키' 촬영을 하고 있는데, 아이들이 '쿠키엔 우유' 라며, 쿠키 접시를 우유 옆으로 가져다 놓습니다. 그래서 위 두 사진의 쿠키 모델이 같아요. 


아이들은 쿠키를 하나씩만 먹고, 또 먹고 싶은 것을 꾹 참습니다. 제가 이렇게 말했거든요. 


오늘 너희들은 쿠키 두 개 먹을 자유가 있는데, 지금 두 개를 다 먹어도 되고, 지금 그만 먹고 나중에 하나 더 먹어도 되고, 각자 알아서 결정하도록.

라고 했더니, 두 녀석 다 나중에 먹겠다고 결정했어요. 자유 같은 통제, 통제 같은 자유. 교묘하기 짝이 없는 엄마의 통치를 완전히 벗어나려면 더 많이 자라고 더 많이 지혜로워져야 합니다.



*오늘의 실험 결과: 마쉬멜로우를 얹어 구운 초콜릿 칩 쿠키는 매우 맛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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