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력을 키운다는 의미
창의력을 키운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슨 뜻일까?
어떤 상황에서도 창의적인 사고력을 발휘하여 문제를 잘 해결하고 자신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과 유익을 주는 답을 찾아갈 수 있도록 생각의 습관, 사고의 회로를 형성하는 일이라고 창의력 학자들이 설명한다.
특이하게도, 인간의 뇌 회로의 발달은 태아기에 유전자에 의한 영향보다, 출생 후 환경적 영향을 더 크게 받는다. 동물의 새끼는 엄마 뱃속에서 뇌가 거의 완성돼 나오는 반면, 인간의 아기는 미완성의 뇌를 갖고 태어난다. 따라서, 동물의 새끼는 태어나자마자 완전한 개체로 활동할 수 있는 반면, 아기는 출생 후에도 태아 상태와 똑같은 속도로 뇌가 성장한다. 태어난 아기가 갖고 있는 뇌세포, 뉴런의 수는 약 1천억 개. 어른이 되어 줄어들기 시작하는 20대까지 같은 뉴런 수를 유지한다. 신기하게도, 태어날 때 350그램 정도에 지나지 않던 뇌는 생후 1년이 되면 거의 1000그램에 이르게 된다. 자라면서 뇌는 점점 더 커져간다. 뇌세포의 숫자는 고정되어 있지만 뉴런과 뉴런 사이를 잇는 회로가 발달하기 때문에 뇌가 커지는 것이다. 이 회로가 복잡해지고 정교해질수록, 뇌의 부피와 밀도가 증가하고, 지능과 감정이 발달한다.
현대 과학이 인간의 뇌 발달 과정을 추정한 결과의 의하면, 출생 첫해에 뇌세포 간의 회로망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며, 3세가 될 때까지 일생을 통해 가장 활발하게 만들어진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두뇌 회로 밀도가 가장 높아지는 것은 10살 즈음이며, 사춘기에 접어드는 12세 전후가 되면 회로의 수가 점점 줄어들기 시작하고 뇌의 발달은 어느 정도 끝나게 된다고 신경학자들은 결론 내린다. 이는 다시 말하자면, 사춘기가 시작되기 전의 양육 환경이 어른이 되어서 인격과 사고방식, 업무능력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이야기다. 이는 마치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처럼 모든 신체적 습관과 마찬가지로 사고의 습관도 어릴 때 형성된 것이 인생 전체를 좌우할 영향력을 가진다는 뜻이다.
이렇게 중요한 유아기, 아동기의 양육/가정교육을 왜 심각하게들 생각하지 않는 것일까?
현대의 부모들은 하루 종일 무언가로 바쁘다. 그 결과 아이와 대화는커녕 눈길을 줄 시간도 늘 부족하다. 이런 부모들에게 돈만 주면 어린 자녀를 맡아 보육은 물론, 조기교육, 재능교육까지 확실히 시켜 주겠다는 각종 교육 기관들은 구세주인 것만 같다. 자신의 커리어 때문에 아이 돌보기가 힘든 직장인들에게뿐 아니라, 아이가 집에선 그냥 먹고 자고 놀고 하는 일 외에 달리 하는 게 없어 살짝 불안한데, 뭘 더 가르쳐 주고 그동안 부모는 자신의 시간을 가지는 것이 가능하다니, 전업 주부에게도 기관에 아이를 맡기는 일은 너무나 유혹적인 제안이다.
유아와 그 부모를 향한 더 큰 유혹은, 아이와 함께 있는 모든 순간에 시도 때도 없이 틈타고 진입하는 현대 기술의 결정체들이다. 아이를 즐겁게 해 주면서, 교육적 효과도 거둘 수 있다는 애니메이션, 게임, 스마트폰 교육 앱들은 정말 구미가 당기지 않을 수 없다. 여기저기서 각종 태블릿 패드와 스마트폰을 들고 있는 아이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물론 게임이나 티브이 시청, 스마트 폰 앱을 통해서도 여러 가지 교육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겠다. 또한 그 시간이 육아에 지친 엄마가 쉴 수 있는 유일한 기회라는 것도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구체적이고 확실한 가이드 없이 스스로 조절 능력이 없는 아이들의 그러한 미디어 사용을 방관한다면, 부작용의 폐해를 피할 수 없다. 여러 악영향 중에서, 가장 큰 부작용을 꼽으라면, 세상에 그것보다 더 빨리 더 큰 재미를 얻을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아이들이 몸으로 깨닫게 된다는 점일 것이다. 아직 건강과 식습관의 중요성을 모르는 아이들이, 집에서 음식을 해 먹는 것보다, 패스트푸드점에서 햄버거 세트를 시켜 먹는 것이 훨씬 맛있고 싸고 편리하다고 인식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세상에서 가장 손쉬운 재미를 얻는 대신, 아이 스스로 적성 탐색할 기회, 다양한 경험과 자극을 통해 창의적 사고력을 키울 기회, 보다 의미 있고 발전적인 즐거움을 아는 기회를 빼앗기게 되는 것이다.
많은 부모들이 자녀가 청소년기가 되어서야, 대화를 해야겠다고, 성품 교육을 시켜보겠다고 멘토를 찾고 상담사를 찾는다. 청소년기까지 기다려서는 안 된다. 아이들의 두뇌발달 과정을 이해한다면, 유아기와 초등기가 얼마나 중요한 시기인지 이해했을 것이다. 아이들의 두뇌 발달은 돈을 주고 남에게 맡길 만한 일이 아니다. 정서적으로 안정된 환경에서 부모와 친밀한 관계를 맺는 것보다 아이의 전인적 지능적 발달에 더 뛰어난 효과가 있다고 증명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아이들 두뇌발달에 좋다는 클래식 음악과 창의적인 시각적 자극을 조합한 외국 특정회사의 디비디 세트는, 한때, 엄마들이 임신과 동시에 집집마다 거금을 투자해 들여놓던 영재교육 자료였으나, 부모와의 교류보다 아이의 두뇌를 더 발달시킨다는 것을 결국 증명하지 못해 소송에 패한 바 있다.
아이가 자라 학교 갈 시기가 되면, 이것저것 가르치고 각종 지식과 기술을 주입해 취학 준비, 선행학습을 시켜 주겠다는 학원과 레슨 교사들이 손짓한다. 억지로 학원에 가고, 레슨을 받고, 하라는 공부를 할 때마다 잠시 게임을 하게 해 주면 아이들이 말을 잘 들을 거라는 요령을 이웃 엄마가 귀띔해준다. 이렇게 여러 학원과 과외활동을 전전시키는 것이 아이들에게 많은 기회와 경험을 주는 것이고, 필요한 일이라고 서로가 서로를 설득한다. 한국은 한국대로 어릴 때 받은 성적이 평생 주홍글씨처럼 따라다니는 그 무서운 학벌주의 때문에, 미국은 미국대로 영어와 미국 문화를 완벽히 모른다는 이민자의 자격지심 때문에 과도한 불안심리의 작용으로 부모들은 교육 중독증 환자처럼 다른 아이들이 뭘 하나 살피고 염탐하며, 자녀들을 이학원 저 레슨으로 하루 종일 돌리기 시작한다.
직시해야 할 문제는 이러한 교육기관들이나 레슨 교사나 게임 개발자들은 장기적 안목을 가지고 큰 나무로 자랄 기반을 다듬어 주는, 진정한 아동 교육의 본질적 의미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는 점이다. 땅을 파고 거름을 주고 나무가 크게 잘 자랄 환경을 조성해 주기보다, 최대한 많은 학생들을 좁은 교실에 모아, 누군가 씹어 준 삼키기만 하면 되는 지식을 투입한다. 즉각적인 결과물로 부모들의 환심을 사고 고객을 잃지 않는 것이 이윤을 남기고 비즈니스를 살리는 길이기 때문이다.
인스턴트 열매를 맺느라 이미 뇌가 지칠 대로 지쳐버린 아이들은 집에 가면 게임을 하겠다는 의지만 있을 뿐,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열정 따위는 잃어버린 지 오래다. 또한, 부모의 교육비 지출이 클수록, 자녀교육을 위한 희생이 클수록, 부모는 그만큼 결과를 내지 못하는 자녀에 대해 쉽게 원망하고 과하게 격분하게 된다. 이것은 자녀에게 죄책감과 부담으로 작용하게 되고, 부모와 자녀관계는 심각한 손상을 입게 된다. 그것은 결국 자녀교육, 자녀 두뇌 발달에 결코 좋은 영향을 주지 않는다.
이 아이들의 청소년이 된 모습을 상상해 보았는가? 부모의 말을 더 이상 듣지 않는 덩치는 어른만 한 아이들. 하루 종일 게임할 방법을 찾는 것 외엔 좋아하는 일에 대한 관심도 의욕도 잃어버린 아이들. 현실감각도 절제 능력도 없이 각종 영상매체에 끌려다닌다. 슬프게도 많은 현대의 청소년들이 이런 모습이다. 아이를 잘 키워보려는 노력이 오히려, 진짜 중요한 것을 잃어버리고 자녀를 우울증과 미디어 중독의 길로 이끌지 않는가 생각해 볼 일이다.
자녀를 이런 모습으로 몰아가지 않기 위해서는 아이들이 청소년기에 이르기 전에 반드시 발달되고 교육되어야 할 것들이 있다. 다음 칼럼에서 두뇌발달 과정을 고려한 유아기와 아동기의 교육에 대해 더 자세히 다루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