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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쟤쟤 Apr 25. 2023

(개)고생 끝에 낙이 온다

똘란똥꼬 - 8시간 이동 끝에 도착한 온천 휴양지



이번 멕시코 여행에서 내가 가진 마음가짐은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건 돈으로 해결하자.'였다. 중남미는 온갖 변수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내가 계획했던 것처럼 될 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게 마음 편하기 때문이다. 나는 멕시코 여행 중 몸이 힘들면 돈으로 해결하고자 노력했고, 이후 칸쿤에서 숙소 사기를 당하더라도 '그래.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게 어디야.' 하며 다른 숙소를 잡았다.


그러나 멕시코 여행에서 돈을 써서도 피할 수 없었던 사건이 2가지 있었는데, 첫 번째 사건은 멕시코 자연 온천 휴양지 똘란똥꼬(Tolantongo, 멕시코는 된소리 발음이 디폴트니 글자표기가 이상하더라도 이해 바란다.) 출발 전날에 일어났다.


D+7


과나후아토에서의 3박 4일을 성공적으로 보낸 후, 우리는 똘란똥꼬에 가기 전 경유지인 케레타로(Querétaro)로 향했다. 멕시코의 온천 휴양지 똘란똥꼬는 가는 길이 굉장히 고생스러운데, 과나후아토에서는 약 8시간을 이동해야 도착할 수 있는 무지막지한 곳이다. 그러나 똘란똥꼬는 멕시코 여행의 하이라이트로 꼽을만큼 추천이 자자했기에, 우리는 똘란똥꼬를 위해 그 전날부터 미리 근처 도시로 이동해 있었다.


*참고: 과나후아토에서 똘란똥꼬로 이동하는 법 

- 과나후아토-케레따로(primera plus): 3시간

- 케레타로-익스미낄판(futura): 3시간 반

- 익스미낄판-똘란똥꼬(콜렉티보 혹은 똘란똥꼬 운영버스): 1시간 반~2시간


나는 케레타로를 무척이나 고대하고 있었는데, 이유는 다름 아닌 한식당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식당 이름은 김식당으로 분식집이었다. '한식섭취 쿨타임'이 찬 나는 케레타로행 버스에서 뭘 먹을지 계속 고민하고 있을 정도로 한식이 고팠다. 그렇게 도착한 한식당에서 나는 라면과 짜파게티, 김밥을 시켰고 추가로 한국에서 안 판다는 사과소주를 시켜 오랜만에 음주도 했다. 맛은 한국에 비할 수 없지만 한식이 있는 게 어디인가. 나는 소주잔 대신 맥주잔에 소주를 마시며 폭풍흡입을 했다. 


지금 생각해도 감격스러운 한식 쓰리샷이다.


그리고 숙소에 행복하게 온 후 사건이 터졌다. 나는 크로스핏도 할 정도로 체력에는 자신이 있으나, 한 가지 신체적 결함이 있다면 정상인에 비해 매우 안 좋은 소화능력이다. 나와 멕시코 여행 동행을 했던 모든 사람들이 나보고 적게 먹는다고 많이 먹을 것을 권유했지만, 나는 신체적 한계로 어쩔 수 없이 조금 먹는 것이다. 하필이면 이 날 오랜만에 과식을 했는지 배가 심상치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못해야 장염이었고, 난 화장실 안에서 '다시는 과식하지 않으리라'라고 거듭 다짐했다.


다행히도 한국에서 챙겨 온 진통제와 지사제를 먹자 조금이나마 괜찮아졌고, 옆에서 동행친구 수빈이가 "언니 진짜 개복치구나"라고 말하는 걸 들으며 잠을 취했다.



D+8


다음날 나는 비몽사몽 한 상태로 새벽 3시에 일어났다. 똘란똥꼬 안에 있는 호텔은 예약이 안 되고 당일 선착순으로 손님을 받기 때문에, 똘란똥꼬가 열리는 시간에 맞춰서 가기 위해서는 새벽 4시에 출발해야 했다.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했던 나는 수영복을 입었고, 거울을 보니 군살이 싹 빠져 퀭해있었다. '아, 이렇게 다이어트를 하고 싶지는 않았는데'라는 생각을 하며 짐을 챙겼고, 우리는 케레타로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하필이면 이 날 멕시코는 유례없이 추운 날이었는데, 특히나 수영복 위에 경량패딩을 입은 후 밑에는 샌들을 신은 이상한 옷차림으로 새벽 5시 버스를 타니 그렇게 추울 수가 없었다. 고생스러운 3시간 반이 지난 후 익스미낄빤이라는 시골마을에 도착했는데, 아뿔싸 버스가 오지 않았다. 아직 버스가 오지 않아 1시간을 밖에서 기다려야 한다는 주민의 말을 듣고, 이전까지 멕시코 어학연수로 예산을 아껴야 했던 수빈이마저 택시를 타자고 나에게 제안을 했다. 


그렇게 우리는 주변의 택시아저씨에게 가격을 물었고, 아저씨는 600페소(약 42,000원)이라고 말했다. 그때 나온 마법의 단어,


"estudiambre(가난한 학생이에요)"


이 고마운 단어로 인해 우리는 550페소로 택시비를 깎아 똘란똥꼬로 이동했다. 


똘란똥꼬로 향하는 길. 옆은 낭떠러지다.


그렇게 도착한 똘란똥꼬는 너무 추웠다. 새벽 4시에 출발한 우리는 숙소를 잡기 위해 호텔 리셉션 앞에 줄을 섰고, 1,100페소에 1박 숙박을 결제했다. 이제 놀기 위해 똘란똥꼬의 포토스팟인 포지타스(positas)로 향했다.

*똘란똥꼬에 대표적인 장소는 인공온천탕 포지타스(Positas), 천연온천동굴 그루타스(Grutas), 온천강 리오(Rio)가 있다. 동굴에 들어갔다 오면 머리가 다 젖기 때문에 보통 포지타스먼저 가고 버스로 20분 이동해서 그루타스, 리오로 간다.


그렇게 간 포지타스는 절경이었다. 이례적으로 추운 날인만큼 물도 생각보다 차가웠지만 탕 안에서 보이는 경치가 끝내줬다. 이게 신선놀음일까 생각을 하면서, 한 시간 정도 탕에 아무 생각 없이 누워있었다.


포지타스에서 보이는 풍경


그렇게 점심시간까지 누워있다가, 한국인을 한 명 만났다. 그분은 개인 여행사를 운영하는 분으로, 내일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답사차 똘란똥꼬에 왔다고 한다. 그분 왈 자기는 자기는 똘란똥꼬 잘 모르니, 점심을 사주는 대신 이곳저곳 관광스폿에 데려다 달라고 해서 일일동행을 하기로 했다.


그렇게 포지타스에 나와 근처 청류장으로 가면, 20페소에 다른 온천인 그루타스와 리오로 가는 버스가 나온다. 그렇게 20분 정도 간 후 버스에서 내린 후 10분 정도 걸어가면 그루타스와 리오로 가는 길목이 나온다. 이동시간이 좀 길긴 하지만, 그루타스로 가는 길이 정말 아름다워 지루할 틈이 없다. 




그렇게 그루타스에 도착을 했다. 입구 위에 있는 폭포를 맞으며 동굴로 들어가면 따뜻한 물로 가득 차 수영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동굴 속으로 들어가 수영을 하다 입구 쪽을 보니, 입구에서 보이는 산이 보여 유유자적하기 딱이다. 동굴 안에는 폭포도 있고, 줄을 잡고 더 깊게 들어갈 수도 있는 곳도 있는데 나는 무서워서 들어가지는 못했다. 


그루타스의 입구와 안에서 바라본 바깥 풍경. 고프로만 들고 가서 촬영을 해서 사진이 별로 없다. 
안에서 바라본 바깥 풍경 2


그렇게 나와서 우리는 3번째 장소인 리오(Rio, 강이라는 뜻)에 갔다. 포지타스는 물이 너무 차가웠고 그루타스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리오가 제일 물놀이하기 좋았다. 그렇게 동행분이 내 고프로로 유튜버 놀이를 하며 옆에 있던 멕시코 가족의 호응을 유도하며 물놀이를 즐겼고, 중간중간 돌부리에 부딪혀 무릎 몇 군데가 빨개졌으나 개의치 않고 석양이 질 때까지 계속 놀았다. 물놀이하다가 힘들면 근처 카페에서 피냐 콜라다 한 잔 마시고 다시 들어가서 놀고를 반복하니 벌써 6시가 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6시 막차를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오후 2~3시 즈음에 찍은 리오(1)와 근처 카페에서 먹은 120페소짜리 피냐콜라다(2), 그리고 해질 무렵의 리오(3,4)


그렇게 우리는 숙소로 돌아왔고, 난방이 안 되는 숙소였지만 마침 한국에서 가져온 전기장판이 있었기에 따뜻한 밤을 보낼 수 있었다. (역시 엄마 말은 듣는 게 최고다.)



D+9


어제 했던 물놀이로 매우 피곤했지만, 우리는 사람이 없을 때 수영을 하기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나 수영복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숙소 바로 옆에 있는 포지타스로 갔는데 아니 이럴 수가. 물이 아직 채워진 상태도 아니었다. 그렇게 실망을 하고 조식을 먹고 다시 가니 물이 안 채워져 있어서 포기해야겠다는 마음이 들 무렵, 앞에 있는 사람들이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다.


앞의 사람들을 따라가 보니, 내가 똘란똥꼬 검색하면 가장 첫 번째로 나오던 곳에 도착했다. '바로 이거지'를 마음속으로 외치며 우리는 미친 듯이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이 때는 아침일찍이라 똘란똥꼬 안 호텔에 머무는 사람들만 입장할 수 있어 사람도 거의 없었고, 우리는 전세 낸 것처럼 똘란똥꼬의 마지막을 즐길 수 있었다. 가는 길도 험하고 몸상태도 안 좋았지만, 그럼에도 똘란똥꼬는 나중에 멕시코에 또 간다면 다시 한 번 찾아가고 싶은 곳이다.

*잊지 말자. 포지타스는 안쪽 길로 쭉 들어가야지 진짜 기대하던 광경이 나온다. 


아침일찍 간 똘란똥꼬의 포지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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