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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쟤쟤 Apr 24. 2023

이걸 보러 멕시코에 온 거야

과나후아토(2) - 삐삘라 전망대에서 본 과나후아토 정경과 야경

과나후아토에서 보낸 동화 같은 하루: 과나후아토(1) - 골목골목에서 즐기는 마리아치 투어



영화 코코를 보며 울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확실한 건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 중 울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Remember me'만 들으면 눈에서 물이 나오는 나는 영화 코코. 그 배경인 과나후아토에 가기만을 벼르고 있었고, 그중 삐삘라(pipila)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과나후아토 야경을 고대하고 있었다. 


영화 코코(Coco)에 나온 거리 모습(왼쪽)과 주인공이 할머니 코코를 위해 부르는 <Remember me>



D+5


어제 몸을 많이 움직여서 그런지 꿀잠을 자고 아침에 일어났다. 오늘 아침은 로컬처럼 시장에서 아침을 먹기로 해서 이달고 시장(Mercado Hidalgo) 옆에 있는 작은 시장에 갔다. 어느 때처럼 입구부터 사장님이 호객행위를 하고 있었고, 우리는 그중 한 곳을 골라 들어갔다.


내가 먹은 건 우에보스 알 구스토(Huevos al gusto)로, 멕시코 사람들이 아침식사로 먹는 흔한 음식이다. Huevos al gusto를 직역하면 "네가 원하는 대로 요리한 계란" 정도인데, 스크램블, 오믈렛, 계란프라이 등 여러 옵션 중 한 가지를 선택하면 또르띠야 위에 얹어서 살사소스에 버무려서 준다. 배가 안 찰 것 같아도 은근 든든하다.

우리가 들어갔던 시장 안 식당과 Huevos al gusto


그렇게 아침을 먹고 10시 즈음 관광을 시작했다. 사실 과나후아토는 역사적 명소가 있거나 한 건 아니어서 2박이면 도시 전체를 돌아보는데 충분하다. 그럼에도 매력적인 이유는 특색 있는 거리, 여유로운 사람들과 공원 한복판에서 들려오는 노랫소리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디에고 리베라 박물관(디에고 리베라는 8살 때까지 과나후아토에 살았다)을 들리고 여러 골목을 돌아다니고 배가 출출해져 타코를 먹으러 왔다. 멕시코에서 타코는 마치 백반집 느낌이라 집집마다 밥색깔도 다르고, 살사소스도 달라서 먹는 맛이 있다. 이번에 간 집은 동행인 수빈이가 대학교 동기에게 추천받아 가게 된 곳인데, 파인애플이 들어간 노란색 살사소스가 특이했다. 


또한, 이 집은 멕시코 전통음료 오르차타(Horchata) 맛집이다. 오르차타는 우리나라로 치면 아침햇살에 시나몬을 좀 탄 맛인데, 집집마다 제조법도 달라서 음식점마다 비교해 가며 먹는 맛이 쏠쏠했다. 이 집의 오르차타는 찐하고 고소해서 진짜 내 취향이었다. 이름이 기억이 안 나서 아쉬울 정도. 


센트로 근처의 타코집. 파인애플 살사소스와 오르차타가 맛있었다. 2번째 사진은 한 입 먹고 아차! 하고 찍은거라 타코가 저렇게 나왔다.


점심을 든든히 먹은 후, 우리는 전통시장인 이달고 시장을 구경하다가 삐삘라 전망대로 향했다. 과나후아토는 멕시코 대부분의 도시가 그러하듯이, 해발 2000m에 있는 도시이며 거리에서부터 산 중턱까지 오색의 집으로 빼곡하다. 전망대로 올라가는 방법은 2가지가 있는데, 걸어서 올라가는 것과 케이블카인 푸니쿨라(Funicular)를 타고 가는 법이다. 이 당시 과나후아토의 오후 날씨는 섭씨 28도였기 때문에 우리는 푸니쿨라를 타러 갔다. 이용료는 왕복 60페소(4,200원)로 관광지 물가치고 나름 저렴했다.


푸니쿨라 티켓과 푸니쿨라 철로. 급경사로 5분정도 올라가면 삐삘라 전망대가 나온다.


올라가면서 점점 작아지는 집들을 보니, 기대감이 샘솟았다. 그렇게 삐삘라 전망대 초입에 도착했고, 우리는 빠른 걸음으로 전망대로 향했다. 그렇게 올라가 도시 전망을 보고 할 말을 잃었다. 그리고 옆에 있는 친구에게 얘기했다. "난 이걸 보러 멕시코에 온 거야."


삐삘라 전망대에서 바라본 과나후아토. 아무리 카메라 셔터를 눌러도 실물을 따라가지 못한다.


그렇게 우리는 전망대 앞에서 미친 듯이 카메라 셔터를 눌렀고, 해 질 녘에 다시 와서 보기로 다짐하며 내려갔다. 내려갈 때는 걸어서 내려갔는데, 골목골목 형형색색의 집들이 볼 만하니 추천한다. 해 질 녘까지 시간을 때우기 위해 조그마한 광장 근처에 있는 카페로 들어갔다. 2층 발코니에 앉아 창밖을 보니, 푸른 하늘과 큰 나무가 보이고 주변에 음악 소리가 들려왔다. 샹그리아를 마시며 광장의 사람들을 구경하니 마치 별세계에 온 듯한 느낌을 받았다.


카페에서 시킨 샹그리아와 발코니로 보이는 풍경.


그렇게 해질녘이 되었고, 우리는 전망대에 또 가기 위해 페니쿨라를 탔다. 그렇게 오후 5시부터 7시 반까지 전망대 명당자리에 앉아 하염없이 풍경을 바라보았다. 주변에 정말 많은 관광객들이 있었지만, 도시 정경을 바라볼 때만큼은 나 혼자 저들과 똑 떨어진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일몰시간이 지나자 건물에 불이 켜지기 시작했고, 해가 완전히 지자 과나후아토는 반딧불이 같은 빛들로 가득 차게 되었다.


내가 생각하던, 코코에서 재현한 바로 그 야경이 맞았다. 야경을 보고 있자니, 내 인생에서 이런 광경을 볼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해졌다. 그러면서 최근 휴직을 결심하게 된 일련의 사건과 휴직, 그리고 멕시코로 여행지를 정하게 된 기억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그동안 힘들었던 시간들이 다 이 순간 이 감정을 느끼게 하기 위함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 정도로, 야경을 보는 그 순간은 혼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떤 감정에 휩싸여 있었다.


삐삘라 전망대에서 찍은 과나후아토 정경. 타임랩스를 찍었으나 용량관계 상 사진으로 대체한다.


우리는 삐삘라 전망의 야경을 클리어한 후 우리는 전망대를 내려와 저녁식사를 했고, 몽글몽글한 감성에 젖은 채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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