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리섬의 해변은 ‘핑크 비치’로 잘 알려져 있다. 어떻게 이 해변이 핑크빛을 띠게 되었는지는 조사해보지 않아서 모른다. 바다색은 옥색, 에머랄드, 연초록 등으로 황홀하게 아름다운데 파도의 하얀 거품이 닿는 해변에는 연분홍 모래가 펼쳐져 있는 것이 사람들의 눈길을 끌어 작은 이 섬이 그토록 유명해졌나 보다. 나는 어린 시절 바닷가에서 자라서 해변을 많이 감상하며 컸는데, 기억 속의 바다와는 달리 길리의 해변은 마치 몽롱한 꿈속에 나오던 바다 같다. 어려서 읽었던 시집에서 모래톱을 묘사한 시구를 가장 좋아해 여전히 외우고 있을 정도로 바다는 내 유년시절의 중요한 일부이다. 고향에서 바라보던 바다는 아침 햇살에 반짝이고 항상 사람들로 북적대며 그 위로 갈매기가 날고 있는 매우 다정하면서도 인간적인 바다였다. 하지만 길리의 바다는 영화 속에 나올 듯이 조용하고 황홀하다. 세계 곳곳의 휴양지가 아름다운 해변을 자랑하지만 길리의 모래톱이 유난히 특별해서일까. 나는 길리섬이 흡사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무지개 같다고 느꼈다. 남색 밤하늘, 옥색 바다, 핑크빛 해변, 갈색 거북, 노란 코코넛과 보랏빛 붉은빛의 거리 간판들...
길리 해변 가까운 바다의 물은 매우 얕고, 오후 바다는 그 얕은 물마저도 흔적을 찾을 수 없이 빠져버린다. 아직 11시경 밖에 안되었는데도 발목에 찰랑거리는 물을 건너 한참 멀리까지 이르러도 여전히 해변의 바닷물은 허벅지에도 닿지 않는다. 정말이지 수영을 하려면 참치 잡는 먼 바다로 나가야하나 보다. 얕은 바닷물 덕에 나는 마치 바다에 돗자리를 깔아놓은 마냥 앉아서 편하게 놀 수 있었다. 제일 좋았던 점은 그날 그날‘오늘 마음에 드는 바다’를 찾아서 그냥 그 자리에 주저앉으면 된다는 것. 가깝고도 먼 거리에 돛단배가 떠다니는 수평선이 보이고, 눈에 계속 담아도 아깝지 않은 비취색의 바다가 겨드랑이 사이를 뚫고 흐른다. 하늘은 옅은 푸른색으로 그냥 맑다. 수천년 전부터 계속 이 자리를 흘렀을 바다...그 세월의 영속성을 곱씹어보며 하늘을 향해 고개를 쳐들다 힘을 빼고 그 자리에 퍽 드러누우면, 머리카락이 젖고 몸이 둥둥 뜬다. 섬에서 나는 그렇게 바다에 풍선처럼 둥둥 떠다니는 것으로 몇 날 며칠을 보냈다. 때론 호기롭게 수영을 하기도 했지만 아마도 길리섬은 수영과 어울리는 곳은 아니었던 듯 하늘과 태양은 내게 잠시 멈춤을 명했다. 바다는 잔잔하게 흐르며 구름 같은 침대를 만들어주었고, 찰나였지만 온 바다를 차지한 듯 나는 달콤한 꿈을 꾸며 그 침대 위에서 잠을 청하기만 하면 되었다.
여름의 한복판이었지만 길리섬의 태양은 예상처럼 뜨겁게 작열하는 태양이 아니었다. 오히려 한여름 해운대 바다에서 만났던 태양이 훨씬 더 이글이글 타올랐던 것 같다. 길리섬에 비치는 햇살은 뜨끈한 온열 마사지 같이 몸을 따뜻하게 데워주어서 그 아래 누워있으면 힐링이 저절로 되었다. 하지만 그렇게 개운하게 놀고 나서 저녁이 되어 방으로 돌아와서 보면 햇빛에 노출한 얼굴과 발등이 까마귀처럼 익어있어 당황스러운 날들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한국에서는 아무리 해변 더위에 뛰놀아도 이 정도인 적이 없었는데! 길리의 햇살이 따뜻하지만 뜨겁게 느껴지지 않았던 이유는 진종일 물속에 몸을 담그고 있었기 때문일 뿐, 적도의 태양 빛은 훨씬 더 강렬하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았다. 결과적으로 나는 태닝샵 연간 회원권이 부럽지 않을 정도로 신체 일부를 까맣게 태운 상태로 귀국하게 되었다. 그때의 그을린 흔적도 거의 다 사라져버린 이 여름, 여전히 한국의 날씨가 더 덥게 느껴지는 이유는 아마 공기 중 습도로 인해 찌는 듯한 이놈의 열기 때문이겠지....그리워라 발리, 그리워라 길리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