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로 우리 딱풀이는 32주 차에 진입했어. 지난주보다 더 자랐을 네가 이제는 공간이 비좁게 느껴지는지 팔다리를 수시로 쭉쭉 뻗어대고 있고, 그때마다 엄마는 통증에 흠칫 놀라면서 한편으로 안도감을 느껴. 딱풀이가 엄마의 자궁에 자리를 잡고 조금씩 자라나던 지난 가을과 겨울을 보내며 네가 보내는 이런 신호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몰라.
엄마는 너를 품고 많은 임산부들이 괴로워한다는 입덧이나 울렁거림을 크게 느끼지 못했어. 간혹 새벽에 배가 고프다 못해 속이 쓰려서 깨는 날도 있었지만 그 역시 자주는 아니었어. 주위에서는 입덧이 없는 게 복이라고 말했지만, 엄마에게는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어. 평온하고 무탈한 하루를 보낸 날이면 오히려 더 걱정이 되었어. 몸에서 보내는 신호가 약할수록 임신 유지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닌가 싶어 불안이 엄습했어. 차라리 다른 사람들처럼 헛구역질이라도 했으면 싶었지.
임신 막바지에 이르러 네가 보내는 신호가 강해질수록 엄마는 딱풀이가 태어나 살아갈 세상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 같아. 그중 하나가 환경과 기후 이슈에 대한 것이야. 딱풀이가 엄마 뱃속에 머무는 지금도 코로나19라는 전염병으로 아픈 사람들이 많아. 특히 코로나 확진 산모는 병상 확보가 어려워 분만 병원을 찾아 헤매다 구급차에서 출산하는 경우도 있다고 해. 엄마는 혹시나 내가 코로나에 감염되어 이런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까, 네게 어떤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으로 외출도 사람들과의 만남도 자제하는 중이야.
매일 마스크를 챙기는 것이 일상이 되었지만, 아기 용품을 파는 상점에서 마주친 작은 마스크는 낯선 충격이었어. 그 작은 마스크를 쓸 너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야. 그럼 코로나만 조심하면 될까? 과학자나 전문가들은 또 다른 종류의 전염병이 계속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어. 어쩌다 네가 태어나 살아갈 지구가 각종 전염병의 창궐을 걱정하는 지경에 이르렀을까? 엄마 아빠를 포함한 어른들이 지구를 무분별하게 사용했기 때문이겠지. 그래서 엄마는 미안함과 채무감을 동시에 느끼는 것 같아.
지난 4월 22일은 '지구의 날'이었어. 1969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원유 유출 사고의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 1970년 4월 22일 미국에서 개최된 기념행사에서 유래된 날이야. 전 세계 여러 단체들이 지구의 날을 기념하기 위해 저녁 8시부터 10분 동안 소등을 하고 지구의 소중함을 느끼는 시간을 가지는 실천에 앞장섰고, 엄마도 이 행사에 동참했어. 전등을 끄고 초를 켠 채 너와 이야기를 나눴는데, 엄마의 목소리를 딱풀이가 들었을까?
누군가는 이런 행사가 실제 효과는 없고 보여주기 식 쇼에 불과하다고 비난하기도 해. 그들의 주장도 일리는 있어. 단 10분의 소등으로 아픈 지구를 단번에 회복시킬 수는 없겠지. 그러나 엄마는 작은 실천들이 모여 큰 물결이 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해. 그리고 딱풀이도 이런 작은 실천을 외면하지 않고 기꺼이 동참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해. 더 나아가 파도타기의 물결을 처음 일으킬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이라면 더 좋을 것 같아. 네가 일으킨 파도가 닥쳤을 때 엄마도 기쁜 마음으로 함께 뛰어넘어 볼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