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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미작가 Apr 27. 2022

난임병원 졸업 후 임신 정규 트랙에 안착

태교일기 [32w1d] 딱풀이에게 보내는 6번째 편지 (D-45)

하지만 올해가 다 가도록
마지막 달력을 넘기도록
너는 결국 오질 않고 새해만 밝아서
기뻐하는 사람들 속에서 나만 울었어
내게 1월 1일은 없다고
내 달력은 끝이 아니라고
32일이라고 33일이라고
니가 올 때까지 나에겐 아직
12월이라고

딱풀아, 이 곡은 별이라는 가수가 부른 <12월 32일>이라는 노래야. 가사에서 올해가 가기 전에 꼭 돌아오겠다고 했던 연인이 돌아올 때까지 내게 1월 1일은 없다며 울부짖는 이의 간절함이 느껴지는 것 같지?

임신 11주를 기다리는 엄마의 마음이 매번 그랬어. 건강한 심장 소리를 들을 때까지, 젤리 곰 같은 태아의 움직임이 보일  때까지 임신 10주를 계속 부여잡고 싶었어. 엄마의 간절함과 달리 때로는 7~8주에서, 때로는 9주나 10주에서 태아는 자신의 릴레이를 중단했고, 심장소리는 희미해졌어. 함께 뛰던 팀플레이는 10주를 넘기지 못하고 끝나버렸고, 결국 혼자 맞이한 11주에 엄마는 진료실이 아닌 차가운 수술실로 향해야 했었지.

딱풀아, 너와 함께 엄마는 도돌이표처럼 반복하던 '마의 고비', 임신 10주를 드디어 넘기고 진짜 11주 차를 맞이했어. 의사선생님은 11주 차를 끝으로 난임병원을 졸업하고 일반 산부인과로 옮겨도 된다고 하셨어. 자연 임신을 해도 받아주지 않던 일반 산부인과에 드디어 갈 수 있다니, 엄마는 참지 못하고 또 왈칵 눈물을 쏟아냈어. 사실 이 눈물 속에는 감동뿐만 아니라 그만큼의 부끄러움도 있었어.

의사와 병원을 탓하며 이곳저곳 난임병원을 전전하던 시간들, 거리에서 배가 불룩한 임산부들을 볼 때면 이유도 없이 화가 났던 순간들, 친구나 동생들의 임신 소식에 진심으로 축하해 주지 못했던 옹졸한 마음들, 하다 하다 유산에마저 익숙해지는 나라는 사람에 대한 환멸. 이 모든 수치심 끝에 드디어 난임 병원 졸업이라는 환희가 있을 줄이야. 과연 내가 이 기쁨을 온전히 느낄 자격이 있을까 하는 부끄러움이 뜨거운 감동에 뒤엉켜 눈물이 되었어.




임신 12주에서 27주 사이는 임신 10개월의 기간 중 가장 안정된 시기라고 해서 임신 황금기라고도 불리는 기간이야. 엄마는 11주 차에 난임병원을 졸업하고 황금기가 시작되는 12주 차에 일반 분만병원으로 옮겨 첫 진료를 보았어. 정밀 초음파로 만난 너는 두 손으로 얼굴을 모두 가리고 있었지만 그 귀여움은 전혀 가려지지 않고 드러났어.


정밀 초음파로 확인한 목투명대에도 이상이 없고 모두 너무 좋다는 의사선생님의 활기찬 목소리가 아직도 기억나. 그렇게 너와 나는 평범한 태아와 산모로 임신 정규 트랙에 멋지게 함께 오른 거야. 우리가 남은 기간도 아름다운 팀플레이를 보여줄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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