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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미작가 Apr 28. 2022

난임 디스토피아, 난임 부부가 직면한 진짜 어려움

태교일기 [32w2d] 딱풀이에게 보내는 7번째 편지 (D-44)


군대를 다녀온 남자들이 언제라도 군대 이야기, 특히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만 나오면 눈을 반짝인다더니, 엄마는 난임과 관련된 기사나 글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편이야. 지금은 이렇게 건강한 딱풀이 너를 품고 있으면서도 말이야. 난임은 보편적 복지의 범주에 들기에는 여전히 소수가 느끼는 고충이었고, 그래서인지 엄마가 느끼기에 난임에 대한 전문 서적이나 근본적인 대책은 늘 부족해 보였어. 그러던 중 기사를 쓴 기자도 난임 부부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심도 있는 기사를 만났어.


'난임 디스토피아'라는 단어를 앞세웠던 그 기사에 따르면, 출생아 8명 중 1명 이상이 인공수정이나 체외수정 시술(시험관 시술)로 태어날 만큼 난임은 이제 흔한 풍경이 되었어. 이런 추세에 따라 정부의 난임 정책 지원규모는 계속 커지고 있다는데 엄마는 왜 늘 충분하다고 느끼지 못했을까?


출처: 경향신문


기자가 지적한 것처럼 정부의 난임 정책이 일정한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시술에만 조명을 비추고 있기 때문일 거야. 그렇다 보니 당연하게도 회사의 난임 복지 역시 난임 시술에만 집중되어 있었어. 딱풀이 너도 차차 알게 되겠지만, 기업이 추구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는 이익 창출이야. 좋다고 소문난 복지정책의 목적 역시 직원들이 더 많은 성과를 창출하게끔 돕는 것이고, 그 외는 정부에서 정한 규제를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그치고 있는 게 현실이야.

엄마가 18년째 몸담고 있는 회사는 국내에서 복지 수준이 높은 편에 속하는데도, 난임 시술 확인서가 있어야 난임 휴직이 가능했어. 그나마도 1번의 시술 당 2개월까지만 쉴 수 있었지. 그렇다 보니 휴직을 계속 이어가려면, 난임 시술 실패 후 몸을 추스를 충분한 시간적 여유 없이 또 다음 시술 예약을 잡아야만 했어. 그 결과, 실패 횟수가 늘어갈 때마다 엄마의 건강은 눈에 띄게 나빠져갔고, 경도 이상의 우울증이 깊어져만 갔어. 엄마는 다행히 책을 읽고 글을 쓰며 그 어두운 터널을 용케 지나왔지만, 지금도 많은 예비 산모들이 자괴감이나 자멸감과 싸우고 있을 거야. 경제적 부담도 회피할 수 없는 현실일 테고.

그럼 '아이가 있는 가정'이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난임 시술 외 다른 방법은 없을까? 그리도 간절하게 아이를 키우고 싶다면 입양을 하면 되지 않냐고 반문할 수도 있을 거야. 맞는 지적이야. 왜 다른 선택지가 있는데도 이를 외면한 채 난임 시술에만 매달리는 부부들이 대부분까? 그들은 아마도 이런 고민을 깊게 해 볼 기회조차 갖지 못하지 않았을까? 현재의 국가 정책과 제도가 다른 기회의 문을 닫고 난임 시술에만 집중하고 있으니, 그들 역시 유일하게 열린 문으로 나서기 위해 애를 쓰고 있는 게 아닐까?

1년간의 난임 휴직이 수포로 돌아가고 복직 후 운 좋게 된 자연임신마저 유산으로 끝난 후 엄마 아빠는 입양을 선택지에 올리고 알아본 적이 있었어. 그러나 쉽지 않았어. 입양 기관 선택부터가 난관이었어. 대한민국의 입양 시스템은 일정한 기준 없이 여러 민간단체에 의해 파편화되어 있는 듯했어. 대부분 종교단체에서 운영하고 있었는데, 요구하는 조건이 조금씩 서로 달라 어느 기관을 믿고 선택해야 할지 혼란스러웠어. 입양에 대해 알아보면 알아볼수록 실행은 민간단체에서 하더라도 이들의 관리 감독은 국가에서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합리적 의구심이 들었어. 왜 이런 부분은 국가의 저출산 정책 범주에 들지 못할까?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돈만 쏟아붓는 각종 정책들을 볼 때면, 엄마는 요즘도 한숨이 나와. 정책을 만들고 발표했던 이들 중 임신과 난임 그리고 육아의 과정을 조금이라도 이해하는 이들이 있기는 할까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야. 저출산이 향후 경제와 국력에까지 영향을 미칠 거라는데, 아이를 가지고 싶어 애끓는 이들을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인가 싶기도 해.


엄마는 운이 좋게도 건강한 너와 만나는 행운을 가지게 되었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이 여전히 많겠지. 그래서 엄마는 지금 선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만큼의 목소리를 내보려고 해. 엄마에게는 그 수단이 바로 글이야. 엄마가 글을 쓴다고 어떤 문제가 당장 해결되거나 눈에 보이는 효과는 없겠지만,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징검다리를 위한 작은 돌 하나는 놓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 딱풀이도 응원해 줄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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